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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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부처님께 복(福)지러 가는 길
불기 2551년 8월 2일 목요일 합천 해인사에 하안거기간 선원대중공양을 다녀왔다.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순응(順應)과 이정(利貞)이 창건하였으며 의상(義湘)대사의 화엄10찰(華嚴十刹) 중 하나로,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더불어 한국의 삼대사찰로 손꼽힌다. 팔만대장경판(八萬?藏經板)을 봉안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며, 대한불교조계종의 종합 수도도량이다.
대중공양(?衆供養)이란 선원에서 정진중인 스님을 위해 선원대중 전체에게 공양을 올린다고 해서 붙여진 말이지만, 선원이외에도 강원이나 그 밖의 곳에서 정진중인 대중에게 공양함을 뜻한다. 모두 복전(福田)이라고 불리는 수행자들을 공양하는 공덕이 한량없기 때문에 생겨난 아름다운 풍속이다.
더위를 식히는 소나기를 맞으며 해인사로 가는 길, 차창 밖으로는 녹음이 우거져 푸르르다.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공양을 한 후 인솔하신 도경스님 집전으로 법당에서 기도를 올렸다. 이어서 해인사 총무국장 도영스님이 "오시느라 수고 하셨다."는 인사말에 이어 인도의 큰 도둑에 대한 법문을 했다.
“티베트 지방에 큰절이 있어 지금도 승려가 500여명에 이르고 10년에 한번 씩 절을 개방한다.
인도 지방에 한 도둑이 있었는데 밤에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곤 하였으나 살기가 힘들어 절의 불상을 훔치기로 하고 가족에게는 멀리 가서 비단 장사를 해서 큰돈을 벌어 돌아오겠다고 하고는 큰 절에 들어가 방장에게는 열심히 불도를 닦겠다고 하여 출가를 승낙 받았다. 도둑은 불상을 훔치기까지 신임을 얻어야 하겠기에 무슨 일이나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했고 불교수행도 열심히 했다.
열심히 살다보니 10년의 세월이 어느새 흘러갔는데 어느 날 방장이 부르더니 그간 일도 잘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으니 주지 소임을 맡기겠다고 하였다. 주지소임을 맡게 된 도둑은 오랜 기간 열심히 살며 수행한 까닭에 불상을 훔치려는 생각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오히려 누가 불상을 훔쳐갈지를 걱정하게 되었다”면서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는 사례로 “오늘 우리는 마음에 너무 욕심이 많다. 탐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은 접어두고 우선 성내는 마음만이라도 이 시간부터 버려라. 불도수행자나 신자 모두 이것을 버려야 한다며 십년 이십년 계속하던 도둑의 마음도 변하듯이 우리 마음도 바뀌게 된다. 마음공부로는 자기 전에 30분과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정도 명상을 통해 화두를 계속 참구하면 성내는 마음을 버릴 수 있다고 하면서 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화를 내면 안된다.”고 재차 강조했다.
일행을 대표해서 관음정 구도부장이 열심히 정진중인 스님들의 대중 공양비를 해인사 총무국장스님에게 전달하였다. 대중 공양비를 전달받은 총무국장스님은 감사인사와 함께 정진중인 스님들을 대신해서 목적에 맞도록 처리하겠다고 답례하였다. 하안거 기간 수행중인 스님들은 소림선원에서 용맹정진 하는 42명의 스님들을 포함하여 200여명의 스님들이 해인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다.
행사를 마친 후 해인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해인사는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장경판전까지 일직선으로 노인 문과 집들을 가운데로 하여 양쪽으로 당우들이 들어서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정형화된 아름다움이 있는 절로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장경판전(藏經版殿)·퇴설당(堆雪堂) · 해행당(解行堂) · 응향각(凝香閣) · 명부전(冥府殿) · 응진전(應眞殿) · 독성각 · 궁현당(窮?堂) · 관음전 · 경학원(經學院) · 보경당 · 사운당(四雲堂) · 범종루 · 진영전 · 화장원 · 소림선원 · 학사대 · 해탈문 · 구광루(九光樓)· 봉황문(鳳皇門) · 일주문(一柱門) 등이 있고, 중요 문화재로는 대장경판(국보 제32호)과 장경판전(국보 제52호), 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인),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반야사 원경왕사비(보물 제128호), 고려각판(국보 제206호와 보물 제734호), 목조희랑대사상(보물 제999호), 해인사 영산회상도(보물 제1273호) 등이 있다.
대적광전(?寂光殿) 현 건물은 1818년에 건립한 것으로 화엄사상을 중심사상으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하여 일곱 불상을 모시고 있다. 법당 오른쪽부터 철조 관세음보살, 목조 문수보살, 목조 비로자나불, 가운데 본존 비로자나불, 목조 지장보살, 목조 보현보살, 철조 법기보살이 차례로 안치되어 있다. 본존 비로자나불은 1769년에 조성되었는데 보현보살상, 문수보살상과 더불어 삼존불로서 고려시대에 가지가 셋인 큰 은행나무 한그루를 가지고 만들었다고 한다.
본래 경상북도 금당사(金塘寺)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이 절이 폐사될 때에 용기사(龍起寺)로 옮겨졌다가 1897년 현재의 위치에 봉안되었으며, 원래부터 있던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지장보살 · 보현보살도 함께 봉안되어 있다.
장경판전(藏經版殿)은 대적광전 뒤에 자리 잡고 있다. 장경판전은 법보사찰 해인사의 위치를 대변해 주는 건물로 1488년 조선 초기에 완성된 목조건물이다. 대적광전의 비로자나 부처님께서 장경판전을 머리에 이고 있는 형상으로 보인다.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해 둔 2개의 판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경판의 보관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걸작으로 인정받은 건물이다. 이 장경각과 고려대장경판은 1995년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고려대장경(高麗?藏經)은 거란 침공을 물리치기 위하여 만들어진 초조대장경(初雕?藏經)이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리자 1236년부터 부처님 위신력으로 몽고의 침공을 물리치려는 발원에서 당시 최우를 중심으로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1251년에 재조대장경(再雕?藏經)을 완성하였다. 1,514종, 6,802권, 81,258판(양면조각)으로 되어있다.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하다가 1398년에 해인사로 옮겼다. 민족의 혼과 호국신앙을 담은 고려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규모성과 세계 최고의 역사성(750여 년)을 자랑하며, 다른 나라 대장경의 연구에 모본이 되는 학술성, 한결같은 서체(구양순체)의 예술성, 인쇄문화의 선진성, 판각기술의 신비성, 대장목록구성의 독창성, 경판 보존상태의 우수성을 지닌 민족의 보배(국보32호)이며 세계문화유산(제264호)이다.
해인사고려각판은 장경판전 건물사이의 양쪽 끝에 있는 동사간전과 서사간전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시대 목판. 모두 54종 2835판으로 구중 28종 2725판은 국보 206호로 나머지 26종 110판은 보물734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말기부터 사찰이나 지방관서에서 새긴 것으로 내용은 주로 금강경 화엄경을 비롯한 불교경전과 고승들의 저술 및 시문집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퇴설당(堆雪堂)은 최근 까지 상선원(上禪院)으로 사용되었는데 지금은 총림 방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1899년 경허대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동수정혜(同修?慧) 결사를 실천한 장소로 역사적인 수행정신을 간직한 건물이다.
명부전은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하며, 지옥중생을 모두 제도하기전에는 성불하지 않겠다는 큰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이
목조로 조성되어 주불로 모셔졌고 그 좌우에 도명보살상과 시왕상을 봉안하였다.
응진전은 나한전이라고도 하며, 처음에는 역대선사의 영정(影幀)을 봉안하였던 곳이다. 1488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현재 건물은 1817년 중건하였고, 내부의 나한상은 1918년 판전 서재(西齋)에서 옮겨 봉안하였다. 응진전 가운데에는 토조(土造)석가여래상이 봉안되어 있다.
오후 2시경 해인사를 떠나 귀경길에 올랐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사홍서원을 모두 함께 염하며, 오늘 선원대중공양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몸은 비록 번잡한 세태 속에 살아가지만 마음만은 구도를 위해 정진중인 스님들과 함께 하리라 발원하며, 오늘의 선원대중공양을 모두 마쳤다.
[주]
해인(涇印)이라는 말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涇印三昧)에서 비롯된 것으로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깊고 넓은 큰 바다에 비유하여 거친 파도 즉 중생의 번뇌망상이 비로소 멈출 때 우주의 갖가지 참된 모습이 그대로 물속에(涇) 비치는(印) 경지를 말한 것으로 부처님 정각의 세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곧 있는 그대로의 세계, 진실된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 객관적인 사상의 세계이니 바로 영원한 진리의 세계이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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