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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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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봉정암에 오르다

  • 입력 2007.09.11
  • 수정 2024.11.23

<비가 내린다. 가는 비가. 가는 실비는 후두득 후드득, 마침내 소나기가 되어 장대처럼 쏟아진다. 이 곳 해발 1,244 고지, 나무도 젖고 돌과 바위도 젖고 마침내 지나는 바람마저 비에 젖어 나뭇가지에 쉬고 있는 설악산 봉정암, 푸른 이끼의 더께가 긴 세월의 역사를 대변하는 부처님사리탑도 속절없이 비에 젖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속산의 적막 속으로 깊게 깊게 잠겨 가고 있다. 나는 비에 젖어 천근만근 늘어지는 육신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한 채, 사리탑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삼배의 예를 올렸다. 그 어떤 감당하기 어려운 신비스러움과 성스러움이 주위를 둘러 샀고 눈물인지 빗물인지 미간을 타고 흘러내리는 알 수 없는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져 발등을 적셨다. 섬득, 스치는 섬광하나. 등줄기가 오싹하여 전율한다. 아! 아!  부처이시여! 나는 무너져 내렸다. 거기 부처님 전에 엎드려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그냥 그렇게 비를 맞고 있어야 했다.>

 

살아생전 꼭 한번은 찾아가 참배해야할 그 곳.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한다. 슬프거나 기쁘거나 인생에 회한이 들면 얼강 망태 하나 둘러메고 봉정암에 휭하니 다녀오라고...  그러나  봉정암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다. 대, 여섯 시간씩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수십번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생을 감내하고 마침내 이제는 다 왔나 생각할 즈음 턱 하니 나타나는 깔딱 고개 하나, 그 마지막 난관의 관문을 두 팔 양다리로 바위틈과 풀뿌리에 매달리며 사지로 기고 기며 젖 먹던 기운마저 소진한 다음에야 비로소 다다르는 곳이 봉정암이다. 그렇게 가기가 힘든 다는 곳을 과연 나도 갈 수 있을까? 망설이고 망설이다 찾아가는 곳. 찾아간다고 마음먹는 자체가 신심이며 대단한 용기이기 때문이다.

 

2007년 8월 18일 12:00 백담사 공양간에서 식사를 하고 드디어 꿈에서 동경만 하고 있던 봉정암에 오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지루하게 이어지던 장맛비도 주춤하여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난 하늘은 더욱 청명한데 처서를 몇 일 남기지 않은 막바지 더위는 30도를 넘나들며 기승을 부린다.

몇 발자국 못 가 이내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럽게 바지 가랑이가 쓰적거린다. 나는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매고 차근차근 급하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산문(山門)입구 소로(小路), 모두가 말이 없다. 지래 겁을 먹어 반신반의하며 길을 나섰던 구도자들은 비로소 걷는 것에 대한 습(習)으로 안도의 한 숨과 주위를 살필 수 있는 틈새의 여유로 땀도 훔치며 이야기도 나누고 1시간 40여분, 영시암에 다다랐다. 감로수로 목을 축이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길을 재촉한다. 이제 이곳을 떠나면 본격적 자기와의 처절한 싸움이 시작된다.

 

수렴동 계곡, 계곡은 깊이를 더할수록 풋풋함과 싱그러움이 배가 되고 미소 잔뜩 머금은 소(沼)의 한기(寒氣)가 가슴 가득 채워져 신선한 충격으로 상쾌함이 더욱 진하게 다가온다. 그 무덥고 찌뿌드드한 기운도 사라지고 성큼성큼 걷는 발걸음들이 가볍고 하늘은 구름이 해를 가려 산을 오르기에 안성맞춤이다. 말없이 풍경을 음미하며 잠시 나를 잊는 것, 도시의 침묵은 사람을 외롭고 불안하게 하지만 깊은 숲길의 침묵은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갈래 길, 오세암을 지나 봉정암에 오르는 길과 바로 봉정암으로 가는 길에서 잠시 멈추어 복장과 신발을 점검하고 바로 봉정암에 이르는 길을 택하여 조심스레 앞으로 나아간다. 잠시 묵시적 침묵이 흐르고 물소리 바람소리 양 옆으로 병풍처럼 둘러 처진 산수화의 개울길,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심호흡을 한다.

상큼한 잡목들의 에테르와 계곡수의 청정한 습기가 가슴 가득 채워져 작은 돌, 큰 돌 혹 바위로 된 협도(狹道)에 발걸음이 가볍다.

 

 

돌과 돌, 나무와 나무로 물과 물로 된 계곡의 속, 이미 사람과 친해진 날 다람쥐들의 호들갑스런 반김과 어쩌다 발길에 밟혀 가슴 아프게 으스러진 들꽃들의 비명, 간혹 사라질 듯 나타나는 문드러진 길 사이 들여다보는 낮은 곳마다 새침 웃음 흘리는 흰 물봉선 무리, 먼저 온 이들의 정적을 깨는 지껄임, 비라도 오려나 이내 속내는 침침하여 카메라 노출이 약하다.

 

아! 여기가 어딘가! 탄성이 절로 다. 협곡 기암괴석으로 아기자기 둘러쳐진 산자락 저 위 졸졸 샘에서 시작 되었을 개울 어느 선녀가 금방 목욕이라도 하였을 너무 맑아 속 끝 바닥까지 들여다보이는 크고 작은 소(沼) 아직은 푸른 당 단풍 한 그루, 물 쪽 웅덩이로 늘어진 가쟁이 그 청록의 비취 잎들 물위에 비춰져 잔잔히 파문으로 출렁이는 물결 따라 일렁거려 예쁜 새아씨 부채춤사위 같다.

  

졸졸, 좔좔, 쏴아, 찔찔 본격적 물골 안 물소리들의 중구남방 애잔한 합창이 동공을 흔들고 허공을 흔들며 자장나무가 힘겹게 지고선 빈 하늘 구름에 까지 닿는다. 모나고 둥근. 길고도 가파른 자지러짐. 시작과 끝도 없는 협곡 물의 비장한 합창. 어느 연로한 음악가의 마지막 혼신의 지휘, 그 비장한 화음에 문득 뼈가 시리다. 몇 사발씩 피를 쏟는 독공수련의 명창처럼 자그마한 폭포의 소리 들릴 듯 끊어질 듯 애절하고 도돌이표 투성이 단조로운 악보 연주는 잡목들 휘감는 한줄기 바람 시새움에 묻히고 너무 서둘러 혼자 와 버린 탓에 뒤 따라 오는 동료들 수다가 간간이 위치를 확인해 온다.

 

티끌 겁, 모래 겁의 세월 켜에서 기암과 단애가 생성되고 그들 안에 나무와 들풀 들 그려 이 거대한 명화로 남았건만 그토록 자연을 담으려 애쓰는 내 안의 나는 아직 이 소로 옆 보라 빛 들꽃조차 제대로 화선지에 옮기지 못하고 지독한 도로(徒勞)에 빠져 허우적인다.

시간의 도로(道路)를 운행하는 내 삶의 경치 어쩜 저 냇물같이 덧없이 흐르는 짓일 진데 어이하리! 산다는 일이란 그렇게 억지로라도 정상까지 올라야 하는 인내와 고행의 연속.

 

 

그래도 가야하는 조금은 지루한 계곡 산행, 길옆 덤불 가랑잎 위 떨어진 다래 몇 알 주워 입 속에 터트린다. 덜 익어 떫은 맛으로 입안 가득 신 침이 고인다. 명경수(明鏡水) 한 웅큼 떠서 입안을 씻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4시간 가량 지속된 물골 안 지루(地壘) 산행 이제 이 황홀한 계곡의 개울은 작별인가, 조금은 지리 했지만 그래도 잘 와 주었는데 지금부터가 봉정암을 오르는 막바지 오르막 깔딱 산자락의 시작이다.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해 앞에서 길을 재촉 한다.

가르마처럼 조붓 말쑥한 산중 가파른 비탈의 시작, 빗방울이 후두득 인다. 빗물의 젖은 진 초록의 수백년 갈참나무 수목들이 청포처럼 싱그럽다. 언제나 그렇듯 산은 매일 와도 올 때마다 새롯새롯 새 정이 묻어나지만, 봉정암 그 성지로 오르는 길은 새로운 정보다는 좋은 풍경의 취함이 너무 길어 사람들을 지치게 하고 언제쯤 이 길은 끝나는가 의구(疑懼)의 지루함이 더 깊다.

 

봉정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길을 묻는다.

'아직 멀었어요?'  '네 조금만 가면 돼요' 늘 대답은 같다.

깔딱의 고개, 두 팔과 양다리로 엉기고 매달리며 마지막 안간임을 다 한다. 빗방울이 굵어 진다. 멀쩡하던 날씨가 흐리고 비가 내린다. 가끔 건자재를 매달은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나타났다 사라진다. 미리 우의를 장만하지 못함을 몸에게 미안해하는데 가볍게 멘 배낭이 물기를 머금어 점점 무게를 느끼게 하고 시간은 거의 오후 4시 반이 넘어 다섯 시에 가깝다.

저 앞 기암괴석 산자락, 공룡능선의 모습은 안개의 젖어 가진 것 모두 버렸다 안았다 어둠으로 둘러 쌓인 묘지 같고 작은 산들 능선마다 안개 막 한 겹 더 휘감겨 보이지 않는 는개비 된다. 공복은 허리춤 더욱 조이게 하고 허기는 목구멍 넘어 턱밑이다. 준비한 김밥 풀어 동막 바위에 풀어놓자 체면이고 뭐고 빗물인지 콧물인지 범벅이 된 김밥 입안에 밀어 넣기 부산이다. 시각과 후각이 고만한 것에 매혹되어 혀의 기쁨은 배가되고 위 홀이 팽만하여 흡족해 온다. 김밥이 이렇게 맛이 좋았나?

 

 

빗줄기는 더욱 드세져 소나기로 내리고 거의 거의 속옷도 젖어간다. 저기가 꼭대기 봉정인데... 빗물의 젖어 잎사귀 늘어트린 억새풀 길, 정수리에 스치는 잎 새가 발목을 잡아 챈다.

굽어보는 저위 산 봉우리, 부치는 힘 안간임으로 드디어 맨 땅. 걷고 기고 안기며 드디어 단아한 봉황의 품에 안겼다. 거의 6시간을 더 걸어서.

 

봉정암, 살아생전 꼭 한번은 찾아와 참배해야 할 이 곳, 부처님 성지에 섰다.

 

갑자기 빗방울이 잦아들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산 허리 골골마다 고물고물 이어지는 부산한 안개 무리의 움직임. 연미풍, 겹겹 산들 능선을 휘감아 얼싸안고 피안의 바다 그 심연속으로 깊게 침잠하며 농익은 애무가 절정에 이른다. 극한 상황 속에서 격정은 고조되고 저 고독한 산 바다에 늪 속, 깊이 깊이 잠수하여 떠 있는 한 개의 섬이 된다. 거기 나 홀로 남아 황홀하다. 아득하다. 아득하여 몽롱하다. 그저 아! 아!

 

몇 分의 시간, 순간의 신비와 조화 그리고 알지 못할 성스러움에서 오는 감동이 이내 산 전체를 덮고 안개는 지척도 분간하기 어렵다.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뿐 누구도 말이 없다. 아니 말이 필요 없다. 그건 소중한 체험의 군더더기 일터이니 결코 잊지 못할  봉정암 정상에서의 체험.

  

봉정암(鳳頂庵).

봉정암은 설악산의 대,소 사암 중 제일 먼저 창건된 백담사 부속 암자다. 소청봉 서북쪽 능선 밑 해발 1,224m에 위치 해 있는데 행정구역상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2리 690번지이다.

사찰에서 전하는 설명과 기록에 의하면 봉정암은 지금으로부터 1350여 년 전, 당나라

청량산(오대산)에서 3.7(21일)기도를 마치고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받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한다. 진신사리 봉안처를 찾아 신라로 돌아온 자장율사는 먼저 금강산에 들렀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를 봉황을 보고 뒤따르기 시작했다. 한 참을 따라가다 한 곳에 이르렀는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 쳐진 곳에서 봉황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바로 이곳이다!” 주위를 둘러 본 자장율사는 도착한 그 곳이 길지(吉地)임을 알고 오층 사리탑을 세워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조그만 암자도 건립했는데 그 곳이 봉정암이었다.

 

 

그 때가 신라 선덕여왕 13년(644), 창건 이후 원효대사 보조지눌 국사 등이 중창을 했고, 환적(幻寂)스님, 등운(騰雲)스님 등이 여러 번 중건을 했는데, 한국전쟁 당시 암자는 모두 소실되고 10여 년 이상 탑만 남아 있던 것을 1960년대 전각을 다시 세우고 1985년 경 대대적인 불사로 새로운 골격을 갖춘 암자가 재 탄생했다.

그러나, 지금의 봉정암은 전임 주지 정념스님(현 낙산사 주지)과 현 주지 혜안스님이 가꾼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봉정암을 천하제일의 기도도량으로 중수하기 위해 정념스님과 혜안스님(당시 총무스님)은 헬기를 동원, 목재와 석재를 날라 아무리 많은 눈비가 내리고 세찬 바람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전각들과 대웅전을 튼튼하게 불사 중건하여 지금의 봉정암을 만들었다. 마침 필자가 방문한 때도 문수전 개축 불사가 한창이라 헬리콥터가 건자재를 운반하는 관계로 부처님 불뇌사리탑이 훼손되지 않게 네 개의 각목에 전신이 밧줄로 묶여 계셨다.

 

불뇌사리탑(佛腦舍利塔)

오층으로 이뤄진 불뇌사리탑에는 부처님의 뇌사리가 봉안돼 있다. 불뇌보탑(佛腦寶塔)이라고도 한다.고려시대 양식을 갖춘 탑에는 기단부가 없다. 대개 일반 탑에는 기단부가 있는데 왜 이 탑에는 기단부가 없을까? 얘기는 의외로 간단하다. 자연으로 된 거대한 암반이 탑을 받치고 있는데 이는 설악산 전체, 아니 우리나라 국토 전체가 기단부가 되어 이 탑을 떠받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불멸(不滅)의 몸’인 부처님 사리가 봉안된 탑을 지탱하기 위하여 설악산 전체가 탑을 보위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불뇌사리탑에는 기단부가 없다.

 

또한 탑이 시작되는 자연암반 위에 조각된 연꽃, 아름답게 피어 있는 연꽃은 바로 밑의 바위 즉, 설악산 전체가 부처님의 의자인 ‘연화대(蓮花臺)’인 것이다. 그러니 그 탑 앞에서 올리는 정성스런 기도가 어찌 영험하지 않고 간절히 발(發)하는 소원도 성취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 국토 전체가 기단부이기에 탑에는 기단부가 없다. 이 탑 앞에서 올리는 정성스런 기도가 어찌 영험하지 않고 간절히 발(發)하는 소원도 성취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봉정암을 찾는 이유.

해발 1244m 설악산에 위치한 봉정암 참배는 매년 5월 중순 경부터 시작된다. 11월부터 다음 해 5월 중순 까지는 참배객들이 봉정암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 기간 동안은 많은 눈과 세찬바람 등으로 사실상 산행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물론 능숙한 등산객은 이 기간 중에도 봉정암을 들러 참배를 하고 대청봉을 오르곤 하지만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5월 중순 이후 날이 풀린 뒤에야 엄두를 내어 참배를 하러 온다. 평소 주말이면 5~600여명이 올라오고 단풍이 드는 10월 초 가을철에는 1천 여명에서 1천오백 여명의 참배객들이 몰려드는데 음식, 식수,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찰측에 어려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란다.

 

식단은 미역국이 담긴 양푼에 밥 한술 그리고 오이 세 쪽이지만 갖은 고초 끝에 도달한 봉정암에서의 식사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일렬로 늘어선 수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다.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숙련된 노하우도 한 몫을 하고 모두가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지키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높은 산중에서 한끼의 따뜻한 끼니를 때울 수 있다는 사실에 고마워하고 부처님께 감사드린다. 산속은 으슬으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기온이 급강하 한다.

옷깃을 여미며 삼삼오오 자판기 앞에 모여들어 공짜로 뽑아 먹는 커피 한 잔, 그 또한 일미이다.

 

저녁식사가 끝난 뒤 바로 대웅전에서 저녁예불이 시작된다. 겨우 엉덩이만 걸칠 수 있는 푸른좌복을 챙겨 많은 사람들이 적멸보궁에 자리를 한다. 보따리 보따리 이고 지고 챙겨 온 소원들을 바리바리 풀어 기도를 한다. 기복(祈福)이건 기도(祈禱)이건 간절히 간절히 올리는 마음의 소원.

 

저녁예불을 끝내고 법당에 남아 기도를 올리거나 피곤한 몸을 쉬러 숙소로 찾아 들지만, 좁은 골짜기에 수많은 인파, 겨우 겨우 숙소에 끼어 들어 새벽예불이 시작되는 3시반 까지는 칼잠을 자야한다. 미명의 시간 새벽예불을 마치고 다시 어제 저녁처럼 아우성으로 아침식사, 그리고 하산 길에 허기를 메우라고 나누어 주는 김말이 주먹밥 하나, 다시 백담사로 내려와야 하는 빼곡한 일정.

 

그렇게 오르기 어렵고 불편한 봉정암을 사람들은 왜 다시 찾으려고 하는 걸까?  

그것은 그 높은 성지에서 부처님을 친견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내면의 욕망을 씻어 내고 새로운 환희와 감동을 느끼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봉정암을 다녀 온 여러 사람들이 그러한 감동을 경험하고 그 신비스러움을 몇 번씩 얘기한다. 허기 끝에 먹은 미역국밥과 무한정 리필되는커피 맛과 뜬눈으로 지새운 새우잠의 추억과 어스름 호젓하게 친견한 불뇌사리탑의 진한 감동을 결코 잊지 못해 사람들은 또 다시 봉정암을 찾게 되는 것이다.

 

서울 마포에 사는 박용춘(53세)씨는 불자로써 평생 소원이 봉정암 참배였는데, 막상 이렇게 어렵게 와 보니 정말 감동과 환희심으로 신심이 절로 난다고 했다. 올 가을에는 집 식구도 데리고 와 제대로 한번 기도를 올려 보리라 다짐 한다고 했다.

 

봉정암 주지 혜안스님.

봉정암에는 아홉 분의 스님들이 주석해 계시는데, 여성 불자들이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그들의 불편함과 일상을 보살펴 주고자 비구니 스님들도 주석해 계신다. 주지 혜안(慧眼))스님을 뵈었다.

1976년에 수계를 받으시고 법납 32년째이시며 봉정암에 5년차 이시다. 조계사 주지 원담스님과 동문이라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풍모에서 수덕한 선(禪)의 친근과 위엄을 느낄 수 있다. 

 

“봉정암에 찾아와 참배 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마음 내기도 어렵고, 모처럼 찾은 봉정암에 와서 아무런 지장 없이 참배객들이 기도를 잘하고 편안하게 있다 돌아가게 해 드리는 것이 저의 소임이며 소원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지금의 봉점암이 있기 까지 어려움과 속히 문수전 불사와 숙사가 완공되어 이 천혜의 기도도량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해 드려야겠다는 바램도 피력하셨다.

 

아침 7시 주먹밥 한 덩이를 받아 들고 하산하는 길, 오를 때 보다 더 힘이 들고 발톱이 상해 가는데, '맨날 무엇 해 달라, 자식 학교 붙게 해 달라, 돈 많이 벌게 해 달라, 잔뜩 속세의 욕심만 봉정암에 부려 놓고 가지 말고, 부처님의 진리대로 살게 해 달라고 소박하게 기도 드리고, 내년에 봉정암에 다시 올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 드리라'는 어제 저녁예불에서 구암스님의 법문 한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그렇다. 누구나 사노라면 때론 지독한 도로(徒勞)속에서 감당 못할 절망으로 맨 벽에 머리를 쥐어 박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다. 무언 가에 쫒기듯 안절부절 마음을 못 잡고 허둥대며 소리내어 엉엉 울어 보고 싶은 날도 있고, 옆에 만만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적당히 시비를 걸어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은 날, 그 어디에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암흑속에서 무력감이 팽배되어 수 만번 자살을 꿈꾸던 날, 당신은 떠나라! 모든 것 다 떨쳐 버리고 봉정암으로 가라. 부처님 불뇌사리탑 앞에 엎드려 엉엉 울며 나를 비워 내는 화려한 자살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진정한 나(自我)를 찾게 될 터이니.>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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