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도솔산 선운사 도솔천 내원궁 성지순례
조계사에서는 지난 9월28(음8.18일) 지장재일을 맞아 지장성지로 재일인 도솔암 내원궁으로 1박2일의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호법국장 은초스님의 지도하에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약45명의 신도들과 함께 조계사에서 오후2시에 출발했다.
벼이삭이 누렇게 익어가는 넓은 황금들녘을 기분 좋게 달려서 오후6시에 무렵에 도솔산 입구에 도착 했다. 도립공원 내 관리사무소 옆을 지나 선운사로 가는 입구에 마치 붉은 비단을 깔아놓은 듯한 아름답고 광활하게 피어있는 꽃무릇(석산) 군락지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도솔암으로 가는 탐방로는 청명하고 맑은 계곡물소리와 끝없이 이어지는 꽃무릇 무리들이 우리들을 반긴다.
꽃무릇은 매년 9월 중순경에 붉은 꽃이 피었다가 진후에 진녹색의 잎이 나와 다음에 5월에 잎이 진후에 꽃이 피고, 꽃이 진후에 잎이 피기 때문에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다는, 일명 상사화(相?花)라고 한다.
도솔암에 도착하니.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 한다. 도솔암은 정확한 창건사실은 알 수 없으나, 사적에는 선운사와 함께 백제 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따르면 신라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도솔산의 한 굴에서 머물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바위가 쪼개지며 그 속에서 미륵 삼존불이 출현하는 꿈을 꾸고 이에 감응하여, 중애사, 선운사, 도솔사 등 여러 사암을 창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백제의 영토였던 이곳에 신라왕이 머물렀을 가능성은 희박하여 창건 사항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미륵삼존의 출현이나 ‘도솔(도?)암이 미륵신앙의 배경 하에 창건된 사찰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도솔암 서편의 거대한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좌상(磨崖佛坐像)(보물제1200호)은 고려 초기의 마애불 계통 불상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는데, 사람들이 이마애불을 ‘미륵불’ 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데서도 도솔암과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잘 말해주고 있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도솔암은, 상도솔암, 하도솔암, 북도솔암등 세 암자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하나, 상도솔암은 지금의 도솔천 내원궁으로서 1511년 지은(智誾) 스님이 중창한 뒤 1694년 1829년에 각각 중수하고 1705년에 중종을 봉안 하였는데, 조선말 이후 내원궁만 남기고 퇴락 하였다고 한다.
하도솔암은 현재 마애불상이 있는 곳으로서 1658년에 해인(涇印0스님이 창건 하였으며, 북도솔암은 지금의 대웅전이 있는 자리로서 1703년 (숙종29)에 최태신이 창건 하였다. 현재는 북도솔암을 중심으로 하나의 암자로 통합된 것이, 도솔암의 전각은 대웅전 나한전 도솔천내원궁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원궁에는 보물제280호인 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藏菩薩座像)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상(磨崖佛像)은 보물제1200호, 나한전과 내원궁은 각각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저녁예불시간에 도솔암주지(지선)스님께서 왜 미륵보살님을 모셔야 할 곳에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는가? 를 지장보살님이 부처님께 연등불 수기를 받으실 때 미륵보살님이 오기 전 50억칠천만년전 까지 성불하지 아니하고 도솔천 내원궁에서 육도중생을 제도하시고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신 그때서야 성불하시겠다는 원을 세우셨기에 현재 도솔천 내원궁에 계신다고 법문했다.
번뇌망상을 다 떨쳐버리고 오직 간절한 소원 한가지씩만 지장보살님께 맡겨놓고 갔다가, 마음속에 꽃피었을 때 다시 내원암을 찾아 올 것을 당부했다.
철야기도를 하기 위해 내원암으로 올라가는 길은 위험하고 가파른 계단인데도 노보살님들은 지장보살님을 만나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올라간다.
아! 도솔천 내원암 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藏普薩座像)(보물제280호).
거대한 천인암위에 지어진 9평 남짓한 암자.
암벽위에 자연스럽게 풀이 돋아나고 나무가 자라서 하나의 작은 동산을 이루고, 절대 내원암 지붕을 덮지 않으며, 내원암 지장보살님께 고개 숙여 예배하는 몇백년은 됨직한 적송 한그루. 그 주위로 일곱그루 소나무가 암자를(보호?) 빙 둘러(칠성대)자라고 있고, 달이 뜨면 만월대, 앞산에 보이는 낙조대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봄이 되면 거대한 마애불상암벽을 중심으로 하얀색, 연분홍, 연보라 꽃이 피어나는 석란들, 부처님오신날 되기 일주일전 부터 피어나서 20일간 피고 지는데, 꽃향기가 마치 “천상에서 내려오는 부처님 향기” 같단다. 흰 눈이 많이 내릴 때면 눈안개가 피어올라 지척에서도 내원궁이 아스라이 보여 “천상의 도솔천내원궁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고, 그곳 보살님은 말한다.
이 천하재일의 성지에서 일념으로 기도하면 못 이룰 것이 없건마는, 어리석은 중생들은 핑계가 많다. 밤이 깊어 갈수록 조계사 신도들의 염불정진 소리만이 고요한 밤하늘을 가른다.
내원궁 뒤편으로 삼신각이 있다.
삼신각안에는 선운사를 창건하신 두 분이 산신님으로 마주앉아 계시는데, 한분은 백제검단스님이고 또 한분은 신라의 의운스님이다. 특이하게 검단스님의 발에 신발이 없는 맨발이다. 그 원인은, 민초들과 항상 같이 어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함이란다.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다음날 새벽4시에 선운사에서 예불을 마친 뒤 아침공양을 끝내고 신도들과 차는 서울로 떠났다.
우리는 어제 못한 취재를 하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운사에는 삼인(三人. ?. 地. 人)의 지장보살님이 계신다.
하늘을 관장하시는 천 지장보살님은 참당암에 모셔져있고, 땅을 관장하시는 지 지장보살님은 도솔천내원궁에 계시고,
사람을 관장하시는 인 지장보살님은 선운사내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처음에는 세분이 다 참당암에 모셔져 있던 것을 각각 따로 따로 모시게 됐다고 한다.
선운사에서 거슬러 참당암으로 가는 길은, 천년의 세월을 무색케 하는 아름드리 참나무들과 계곡으로 흐르는 맑은 물과 잘 어우러진 숲, 비단길처럼 펼쳐지는 상사화의 아름다움, 막 잠에서 깨어난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상쾌한 아침 공기가 정신을 맑게 깨운다. 산 정취에 취해 한 땀 흘릴 때 쯤 참당암이 나왔다.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는 곳이라는 참당암.
그곳에 천년의 세월동안 육도중생을 제도하시는 우아한 자태의 약사여래불상(藥師?來佛像)님이 계셨다.(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으로 볼 때 지장보살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제33호) 참회의 향을 사르고 그곳을 나왔다.
다시 선운사 박물관에 계시는 금동지장보살좌상(金銅地菩藏薩座像)(보물제279호)님 을 뵈러 왔던 길을 되짚어 산길을 내려왔다. 왕복 2시간은 걸린 셈이다.
선운사 박물관에 모셔져 있는 금동지장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에 도난을 당한 일이 있었는데, 이 보살상을 소장한 사람들의 꿈에 수시로 나타나서 ‘나는 본래 전라도 고창 도솔산에 있었다 어서 나를 그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하였지만 이를 무시한 사람들이 병이 들고 가세(家勢)가 점점 기울자 선운사로 모셔갈 것을 부탁하여 도난 당한지 2년 만에 일본히로시마로 가서 모셔오게 되었다고 한다.
'천년의 장인정신이 깃든 조상님들의 공덕과 지혜로움으로, 후손들은 그 은혜로움을 받기가 참으로 죄송할 뿐입니다. 두 손 모아 예를 올립니다.' 다음에는 좀더 넉넉한 마음으로 내원암을 찾을 것을 다짐하며, 1박2일간의 성지순례를 마쳤다.
* 조계사에서는 음력 8월부터 매월 지장재일에 도솔천 내원암에서 철야정진을 합니다. 앞으로 불자님들의 많은 동참 부탁드립니다. 동참비 40,000원 (동참문의 : 신도회 사무처 732-2187)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