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기타

봉정암 십보일배 참회정진

  • 입력 2007.10.15
  • 수정 2024.11.23

별빛이 쏟아지는 밤에 사리탑에 올랐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 앞에 서서 마음을 가다듬고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밤하늘의 아름다움은 까만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이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본다. 은하수의 하얀 빛이 희뿌옇게 쏟아진다. 삼태성이 머리 바로 위에서 빛을 내고 있고, 북두칠성과 곰 자리 별들이 저 만치에서 빛을 내고 있다. 별빛을 타고 나온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반가부좌를 틀고서 명상에 잠겨본다. 좁은 길들이 보이고, 그 길에서 사람들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에 일 배를 올리며 걷는 모습이 보인다. 

 

별 하나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별 둘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별 셋에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일 배, 일 배, 일 배를 올린다.

 

하늘의 별만큼이나 관세음보살을 수없이 되뇌이며 절을 하며 걷고 있다.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여 킬로미터를 십 보에 일 배를 올리며 고행정진을 하게 된 것은 조계사 창건 97주년을 맞이하여 중창불사를 원만회향하고, 불자들의 신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조계사는 1910년에 각황사(覺皇寺)에서부터 비롯되었다. 1937년에는 다시 태고사라 칭하였다. 1954년에 민족불교정화운동의 일환으로 일제시대에 왜색화 된 불교를 척결하고 비구 스님 중심의 한국불교의 전통성 회복이라는 목표로 불교정화운동을 일어나게 되었다. 이 와중에 태고사는 조계종의 이름을 따서 조계사로 개칭하고 한국근대불교의 중심사찰이 된 것이다. 이런 조계사에서 2007년 10월 3일 부터 5일까지 2박 3일로 백담사에서 적멸보궁인 봉정암까지 십보일배 고행정진을 하게 된 것이다. 

 

불자들은 고행을 통해서 자기 마음이 정화되기를 원한다. 수행자에게 있어서 고행은 단비라고 하지 않았는가? 고행은 육체적인 고통을 통해서 자기의 게으름을 극복하여 초심을 잃지 않는 한결 같은 마음과 간절한 마음으로 끊임없이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개인적으로 고행을 통해 참 나를 발견하기 위해 많은 불자들이 모였다. 

 

필자는 2007년 10월 3일 10:00경에 조계사에서 빗방울이 오락가락 하는 가운데 여러 불자들과 같이 백담사를 향하는 두 대의 버스 중 2호차에 올랐다. 오늘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날에는 오늘의 십보일배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쳤다. 가는 차안에서 불자들의 역할에 대해서 실천 불교를 역설하신 불교환경연대의 사무처장인 정우식님을 만났다. 불자들이 사회생활에서의 행동이 옳고 그름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와 그것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 버스는 어느덧 강원도 인제군에 접어들었다.

 

병풍을 두른 듯한 산야에는 안개구름이 피어오르고 언덕배기에 핀 코스모스는 잿빛 하늘과는 달리 산뜻하게 보였다.

 

오후 2시 6분경에 인제군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이곳에서 백담사로 들어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다시 계곡으로 한참을 달려서 백담사에 도착하였다. 이번 행사를 계획하신 기획국장 영공스님이 당초 계획을 바꾸어서 영시암에서 봉정암까지 7.1킬로미터를 십보일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백담사에서 봉정암까지 10여 킬로미터를 십 보 일 배로 하겠다고 했다. 미리 무릎 보호대와 팔꿈치 보호대를 차고 배낭을 단단히 메고 나서 백담사 부처님께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나니 마음의 준비가 다 되었다.

 

 

오후 3시경에 백담사를 출발하여 십보일배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처음해보는 절이라 그런지 조금 쑥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일 배, 일 배를 거듭하면 따라 다리에 묵직한 힘이 들어갈 때에는 쑥스러운 감정은 사라지고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에 일 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오온을 통해서 전달되는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되 뇌였다. 영시암에 도착한 것이 오후 5시 36분경이니 약 2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영시암 주지 도일 스님의 법문이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불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기 위해 찾아보니 원수가 없어, 미워할 원수가 없으니 본래 무일물이라, 마음을 잘 써야 장수할 수가 있다는 스님의 연세가 77세이지만 아직도 건장한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 십보일배를 한 소감으로 우리들의 영공스님은 십보일배의 고행정진을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라는 느낌을 토하시면서 개인의 신심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십보일배를 정확하게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위험한 곳에서 무리하게 십보일배를 하려고 하면 다치게 되어 남에게 피해를 줄 경우도 있으니 자기의 능력에 맞추어 융통성 있게 십보일배를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모든 불자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십보일배를 원만 회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 있었다.

 

영시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10월 4일 아침 예불에 “자기 자리를 잘 찾아서 가야하고 자기 길을 갈 때에는 다 내려놓고 가볍게 가야 한다”는 도일 스님의 법문을 뒤로하고 아침 7시05분경에 영시암에서 봉정암을 향하기 위해 출발선에 모였다.

 

밤새 이슬비가 내리더니 출발에 맞추어서 제법 비가 내렸다. 모두들 우의를 입었다. 이때부터는 걸음이 빠른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각각의 걸음에 맞추어 몇 개의 조를 나누어 십보일배를 하였다.

 

필자는 영공스님의 조에 속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스님의 걸음에 맞추어 나아갔다. 스님의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의 외침은 마음 가득히 신심을 담은 목소리여서 같은 조에 속한 불자들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정진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가끔 내리막길에서는 높은 곳에 손을 얹어 놓기 위해 걸음걸이를 그곳에 맞추기 위해 빨리했다, 느리게 했다가 하기도 했지만 스님의 관세음보살 정진에 맞추어서 모두들 열심히 했다.

 

오전 8시 15분경에 수렴동 계곡을 지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계속 정진했다. 8시 55분경에는 이미 다리가 무거워 들기가 힘들 정도였고, 배낭을 멘 어깨조차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힘든 다리와 아픈 어깨를 뒤로하고 이 고통이 어디서 오는지를 관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오온을 통해서 오는 고통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신을 통일시켜야 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에 나의 온 힘을 쏟아서 그 곳에 집중했다. 무념무상이 될 때까지 관세음보살에 집중했다. “괴로움에도 단계가 있고, 참회하는 것이 인생살이 쉬어가는 것”이라고  한 영공스님의 말씀대로 이 고통을 통해서 신, 구, 의에서 나오는 10악을 참회하는 것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진을 찍어야 할 장소에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지만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11시 30분경에 봉정암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지막 힘을 내야 할 장소인 깔딱 고개에 우리는 도착해 있었다. 네발로 기다시피 하면서 십보일배로 정진하는 수행자들의 거룩한 순간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12시 30분경에 봉정암에 도착하여 많은 신도들의 박수와 “대단 합니다”,  “성불하세요.” 라는 소리를 들으며 사리탑으로 올랐다.

 

불자들이 살아생전 꼭 한번은 올라야 할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곳 봉정암 사리탑 앞에 서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마음에는 이미 기쁨과 환희로 충만하였고, 몸은 날아오를 것 같이 가벼웠다. 기쁨으로 솟아오르는 눈물을 어찌하지 못하는 보살님도 있었다. 이곳은 해발 1200미터가 넘는 곳이다. 10여 킬로미터나 되는 험한 산길을 그냥 걸어도 5시간이 걸리거늘 십 보에 일 배를 하면서 고행정진을 했다는 성취감이 저절로 신심을 키우는 모양이다.

 

10년을 하루같이 하루에 300회 이상을 절 수행을 꾸준히 해왔다는 홍순분(53세, 법성화)님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 고행정진에 제일 연세가 많으신 이필수(76세, 관음행) 불자님은 살아생전에 꼭 한번 봉정암에 참배하고 싶은 소망을 풀었다고 하면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씀이 있었다. “언어장애, 운동장애, 기억장애 등등으로 삶 그자체가 고통인 딸 강수연(14세, 보시행)의 아픈 몸을 오세암과 봉정암에서의 기도로 낫게 했다”는 이은아(41세, 연화심)님은 산 아래에서 8km나 되는 쌀 한 봉지와 오이 다섯 개를 지고서 십 보에 일 배를 한번도 놓치지 않고 하였지만 전혀 고통을 몰랐다는 말씀에 숙연해진다. 그녀의 등은 배낭의 무게로 등이 까진 상태지만 그런 아픔마저도 그녀에겐 아무렇지 않을 정도의 절실함이 있는 모양이다.

 

봉정암 사리탑 앞에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산 아래는 안개로 바다를 이루어 희뿌옇게 보였다. 점심을 주먹밥으로 때운 덕에 약간의 허기를 느꼈다. 해발 1,200미터나 되는 이 곳에서 일상에서 늘 마시는 커피 한잔도 특별한 맛이 있었다. 많은 참배객과 등산객으로 늘 붐비는 봉정암에서는 맑은 공기와 부처님의 향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가 없어 아예 법당에서 밤을 새워 철야하는 불자들이 많았다. 필자도 좁은 방에서 모로 누워 칼잠을 청했지만 답답하기만 하여 밤을 새워 기도하기로 마음먹고 법당으로 나가보았지만 이미 법당은 만원이라 마음을 다잡아 사리탑에 다시 올랐다. 아침부터 내린 이슬비와 산야를 가득 메웠던 안개는 어디로 사라지고 하늘은 수많은 별들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열어 놓았다.

 

10월 5일 아침 7시에 회향하기 위해 사리탑에서 예를 올리기 위해 모였다. 많은 불자들이 하나같이 밝은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머금고는 이런 행사가 계속 이어져서 5대 적멸보궁을 답사했으면 하는 바램과 고행을 통한 수행을 계속 하고 싶다는 말씀이 있었다.

 

조계사 기획국장 영공스님께서는 “불법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극한 신심이 있어야 하며 그것은 고행과 참회로부터 일어난다. 오늘 봉정암 십보일배의 참회정진으로 우린 스스로 각각 환희심과 부처님께로의 열망이 불타오르는 것을 모두 느꼈다. 이것을 계기로 올 12월에 상원사 적멸보궁의 3보 1배 등 전국 5대 보궁과 관음성지/지장성지 등을 고행정진하며 그 지역의 불자들과 연합하여 조계사 총 본산과 지역 불자들의 대 참회정진 한마당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 앞으로 ‘불교 제 모습 찾기’ 운동을 널리 확산하여 전국 불자 참회운동으로 확대시킬 계획이 있다“  고 하셨다.  -- 나무관세음보살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