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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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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아름다운 내소사

  • 입력 2007.12.07
  • 수정 2024.11.22

언제였던가. 부안땅 매창(李梅窓)뜸에 들러 무덤에 술 한잔 올리고, 돌아오는 길, 나는 인형의 집같은 절 하나를 발견하고 한참을 풀 방구리처럼 드나든 적이 있었다.

 

마침 미술공부를 하던 시절이라 그 절, 속살에서 은근히 풍겨 오는 갓난아기의 배내젖향과

맑은 샘 안에 침잠된 황톳빛 같은 그 은근한 색감에 매료되어 아! 냄새도 저런 게 있고 색채도 저런 것이 있구나 감탄을 하며 그 가장 기본적인 미술의 토대를 가슴에 담고 싶어 봄,여름, 가을, 겨울 참 많이도 변산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모항을 지나 내소사엘 다녔었다.

 

나는 소나무를 사랑한다. 한 시절을 산에서 들에서 푸르게 살다가 어느 장인에 숨결로 고고하게 다시 생을 사는 절집에 오래된 목조 건축물, 그 구성원 하나 하나 원목들을 특히 사랑한다. 세월에 더께가 쌓이면 쌓일 수록 단청되지 않은 나무에서는 고고한 빛깔과 천연의 향기가 난다.

 

내소사에 대웅전이 그랬다. 냇물에서 머리를 헹구고 휙 돌아보는 시골 처녀의 맨 얼굴처럼

은근한 내면의 미색은 저도 모르게 발길이 멈추어 멍하니 그냥 바라보고 있게 하고 불현듯,

가슴을 내밀어 꼭 껴안아 주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렇게 예쁜 절이라는 얘기다.

 

대웅전, 크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내소사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291호이다. 대웅보전은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했으며, 40尺×35尺의 정면 3칸, 측면 3칸인 단층 팔작집이다. 기둥 간살은 넓은 편이며 중앙 칸은 더 넓으며, 기둥은 두껍고 낮아 평활하며 모서리 기둥에는 배흘림이, 안기둥에는 민흘림으로 안정감이 있다. 대웅보전의 공포는 외3 출목 내5 출목으로 내외 출목간의 차이가 심한 편이어서,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내부 공간은 높은 천장을 가지게 된다. 외부에서 공포는 살미끝이 심한 앙서형이고 살미에 연봉형의 조각이 새겨져 매우 장식적이고, 내부의 공포 역시 살미끝을 앙서형으로 처리했고 중도리 열주 쪽은 빗 반자를 사면으로 돌리고 그것을 다시 조각하였다.

 

흘림기둥- 내소사의 역사를 묵묵히 전해 주고 있다 

 

정면창호는 2짝-4짝-2짝 구성으로 보다 더 안정감이 있으며 창호에는 정교하게 해바라기꽃, 연꽃, 국화꽃 등의 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그 새긴 모양이 문마다 다르고 섬세하고 아름다워 전설속의 목수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엿볼 수 있다. 수 백년의 세월속에 채색은 다 지워지고 나무결 무늬만 남아있지만 만져 보면 감촉이 참 좋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이광사(조선후기 유명한 서화가)가 쓴 글씨다.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유명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있다. 이 '백의관음보살좌상'은 측면의 기둥 열에서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내부공간을 확보하고 후불벽을 형성하여 벽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은 바위에 앉아 있는 백의를 입은 관음보살을 묘사한 것으로 조선 말기의 작품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색의 ?衣는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관세음보살의 특징을 잘 잡아낸 것으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이 벽화는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 전설이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 보면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음.),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내려오는 전설>

어느날 청민선사는 선우(善愚)라는 시자(侍者)더러 일주문 밖에 나가면 도편수가 오셨을 터이니 모셔 오라 하였다. 시자가 밖으로 나가 보니 과연 웬 사람이 일주문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다음날부터 도편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고 재목을 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도편수는 기둥을 켜는 것도 서까래를 다듬는 것도 아니었고, 거의 삼년의 세월 동안 나무를 토막내어 목침 만한 크기로 만드는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저놈의 도편수 3년을 하루같이 목침만 깎고 있으니 언제 법당을 짓나.'하고 선우는 도편수를 골려줄 생각에 나무 토막 하나를 몰래 감추었다. 마침내 나무깎기를 마친 도편수가 깎아 놓은 나무를 세는데 세고 또 세고 수십 번을 세더니 그만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선사님, 소승은 아직 법당을 지을 인연이 먼가 봅니다.' 청민선사가 물었다.

 

 '무슨 까닭인가?' '재목 하나를 덜 깎았습니다. 이런 주제에 어찌 감히 법당을 짓겠습니까.'

곁에서 듣고 있던 선우가 깜짝 놀라 감추었던 재목 하나를 내놓고 용서를 빌었다. 도편수는 부정 탄 재목 하나를 빼놓고 법당을 지었다. 그래서 내소사 법당 안을 보면 출목 하나가 있어야 할 자리가 빠끔히 비어 있다. 법당을 짓고 나서 단청을 칠하려 화공을 불러와 법당 안을 그리게 했다. 그런데 화공은 법당 안을 그리는 백일 동안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 보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렀다. 장난꾸러기 시자 선우는 이번에도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99일째 되는 날 안을 들여다 보고 말았다. 이 때 법당 안에는 화공은 없고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우는 넋을 잃고 쳐다보는데 순간 황금새는 깜짝 놀란 듯 붓을 떨어뜨리고 후두둑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래서 내소사 법당 안은 양쪽 중도리에 쌍으로 그렸어야 할 용과 선녀의 그림이 왼쪽 것만 그려지고 오른쪽 것은 빈 칸으로 남아 있다. 전하기로 도편수는 호랑이가 화현(化琅)한 대호선사(?虎禪師)였고, 그림을 그린 새는 관음보살의 화현이었다 한다. 새가 날아간 내소사의 뒷산을 관음봉이라 한다

 

 

우리나라에는 이렇듯 곱고 예쁜 절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휭하니 찾아가 천원짜리 지폐하나 던져 놓고 꾸벅 절만 하고 오지 말고, 그 절의 특징과 선사들의 창건 의의, 전설들을 살펴보고 자손이나 후세에 전하여 이러한 문화유산들이 기틀이 되어 미래 불교문화가 꽃피우는 계기가 되도록 서로가 힘써야 할 것이다.

 

한편, 조계사 불교대학 일학년 급우들은 학년말 수련회로 129명이 12월 1일부터 2일까지 1박 2일로 내소사를 다녀왔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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