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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금당선원에 선원대중공양 다녀와

  • 입력 2008.01.25
  • 수정 2024.11.19

조계사는 동안거 선원대중공양 마지막인 세 번째 공양으로 동화사 금당선원에 다녀왔다. 

 

안거는 부처님 당시 우기를 피하기 위하여 우기 석달 동안의 하안거 제도가 생겼으나 우리나라는 추위 때문에 동안거가 추가 되었다.

 

현재 조계종은 하안거 3개월 동안거 3개월 합하여 일년의 절반은 안거이고 절반은 해제이다. 하지만 안거와 해제는 둘이 아니다. 선(禪)과 교(敎)가 둘이 아니고 하나이듯, 안거는 정주(定住)하면서 정진하는 것이고 해제는 만행하면서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본사인 팔공산 동화사는 사찰의 역사뿐만 아니라 10여 개의 산내암자와 포교당, 130여개의 말사를 두고 있고, 강원과 선원이 있는 대가람이다.

 

동화사 주지 허운스님이 조계사 신도들에게 들려준 동화사 창건 이야기에 의하면 신라 소지왕 15년(493년) 극달화상이 창건하여 유가사(瑜伽寺)라 부르다 흥덕왕 7년(832년)심지대사가 중창할 때 오동나무가 겨울에 상서롭게 꽃을 피웠다하여 동화사(桐華寺)라 이름을 고쳤다고 한다.

 

동화사 중창에 대한 삼국유사에 기록은 진표유사로부터 영심(永渙)대사에게 전해진 팔간자를 심지대사가 받은 뒤 팔공산에 와서 이를 던져 떨어진 곳에 절을 지으니 이곳이 바로 동화사 금당선원자리 라고 한다. 

 

동화사가 대가람이 되기까지는 창건 후 신라말(934년) 영조(靈照)선사가 중창하고, 고려 명종 20년(1190년) 보조(普照)국사는 호국불교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동화사 중창에 크게 공헌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선조 39년(1606년)에 사명대사가 중창불사를 한 이후 상숭대사 등 여러 스님들이 중창과 중건을 반복하였다.

 

동화사의 근대 인물로는 설총의 45세손으로 알려진 1955년 대한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추대되었던 석우스님이 주석하면서 종풍을 유지해 왔다.  

 

동화사 금당선원은 석우, 효봉대종사를 비롯, 성철스님 등 해방 이후 불교 정화의 주체가 된 많은 스님들이 이곳에서 결사를 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며, 한국불교의 선맥을 잇는 수선의 참구도량으로 개원 이래 운수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곳이다.

 

금당선원에는 현재 30여명의 수좌스님들이 하루 14시간씩 화두를 들고 수행에 정진하고 있다.

 

이번 대중공양이 한낱 작은 공양일지라도 수행을 위한 큰 공양이 되어 용맹정진을 하시고 생사해탈을 이루는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종단의 청정한 선풍을 이어가는 납자들이 되시기를 발원합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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