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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도량 흥국사와 금산사 참배

  • 입력 2008.04.09
  • 수정 2024.11.15

조계사 신도회와 신도들은 불기 2552년 4월 3일(목) 기도법사 일수스님의 인솔하에 전라남도 여수에 소재해 있는 호국도량 흥국사를 참배하였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금산사를 들러 참배를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조계사 일행은 이른 아침 서울을 떠나 12시 경 전라남도 남쪽 끝에 위치한 여수에 도착하였다. 여수는 석유화학공업이 발달한 도시로서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개최하기로 예정되어 있어 도시 곳곳에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또 남해안을 접한 따뜻한 지역이어서인지 곳곳에 벚꽃, 개나리, 동백꽃들이 활짝 펴 봄 풍경을 완연히 드러내고 있었다. 공단지역을 조금 지나자, 흥국사가 나타났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결사를 통해 승가와 사회가 바로서기를 기원하며 이 절을 흥국사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이 같은 흥국사의 창건이념은 훗날 임진왜란 때 이 절의 승려들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데 공을 세우고 의승수군(義僧水軍)의 진주사(進駐寺)역할을 한 것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후 절이 모두 타버려 지금의 건물들은 인조 2년(1624)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흥국사에 들르니 회주로 계시는 금성명선(金城明煽)스님께서 조계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스님께 인사를 올리고, 흥국사는 어떤 절인지 질문을 올리니, 스님은 흥국사는 한마디로 호국사찰이라고 말씀하신다. 특히 흥국사는 호국사상과 함께 자비평등사상과 동사섭(同事攝)을 실천해오고 있으며, 이런 정신은 임진왜란 때에도 잘 발휘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세히 그 내력을 소개해주셨다.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조선을 침략해 만행을 저지르자. 이에 의분을 느낀 자운, 옥형 선사는 수군 승병을 일으켜 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쟁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해마다 이순신 장군 및 호국영령(護國英靈)을 위해 수륙제를 지내오고 있으며, 또 매년 5월 3일에는 진남제를 열어 승군출전의 모습을 가장행렬로 재현해 오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공북루 현판은 이순신장군의 친필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다. 회주스님은 흥국사를 방문한 조계사 신도분들에게 세상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지혜롭게 화합하여 살아가라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한편 흥국사는 인조 2년(1624)년 계특대사(戒特?師)가 송광사 대웅전을 중건하고 난 후 그 설계도면에 따라 승려 목수 41명이 원을 세워 그대로 건축하였는데, 이 건물을 지을 때 누구든지 이 법당의 문고리를 잡는 이는 3악도를 면하고 성불하게 해주시라는 원을 세우고 1000일간 기도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건축된 흥극사 대웅전은 목조건물로서는 국내에서 제일 예술적 가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기도를 마친 조계사 신도분들에게 절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해주신 흥국사 영인스님은 이런 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동안 이 절에 다녀간 많은 신도분들이 문고리를 만지면서 기도를 하여 문고리 중 손이 닿는 부분은 반질반질 윤이 나있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녹이 슬어 있다면서 문고리에 관한 재미있는 내력도 이야기 해주셨다.

 

흥국사는 대웅전과 함께 팔상전 원통전 무사전(無私殿) 응진당(應眞堂) 조월암등이 전체적으로 규모있고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내력이 깊은 흥국사에는 오늘날 대웅전건물(보물 396호) 및 후불탱화(보물 578호) 수월관음도(보물 1332호) 십육나한도(보물 1333호), 노사나불괘불정 (보물 1331호) 그리고 홍교(보물 563호)를 비롯해 보물이 8점이나 전해져 오고 있다. 이 가운데 홍교는 오늘날 알려진 무지개형 돌다리 가운데 가장 긴 돌다리이다. 그리고 절 한쪽에는 노사나괘불통화 대웅전후불영산회상도 등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 있어서 흥국사의 내력을 이 안에서 자세히 살필 수 있다.

 

조계사 일행은 따뜻한 봄을 만끽하는 가운데 흥국사 참배를 마치고 2시 30분경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서울로 올라오는 도중 5시 경에는 김제 금산사에 들러 참배를 하였다. 전북 김제시 모악산에 위치한 금산사는 백제 법왕 원년(599)에 처음 지어졌으나, 신라 36대 혜공왕 2년(766)에 진표율사(眞表律師)에 의해 크게 중창하여 33척의 철미륵불상을 모신 후 미륵신앙의 근본도량 그리고 법상종 종찰로 크게 변모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산사는 매우 넓은 터에 많은 건물이 자리잡고 있으나, 이 가운데 미륵전이 국보 62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현재 39척(11.82m)의 미륵불상이 안에 모셔져 있다. 그러나 금산사는 오직 미륵신앙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며, 대적광전에 주불로 모신 비로자나불(화엄신앙) 아미타불(미타신앙) 약사여래(약사신앙) 명부전의 지장보살(지장신앙) 나한전의 오백나한(나한신앙) 원통전의 관세음보살(관음신앙)을 다 모시고 있다. 따라서 금산사는 대승불교의 신앙체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통불교적 성격의 사찰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금산사를 참배하느라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이 많이 늦게 되었지만, 조계사 신도분들은 남도의 봄기운에 흠뻑 취해 피곤함도 잊은 채 사홍서원을 념하면서, 참배를 끝마치고 무사히 귀경하였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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