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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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조 도의조사 다례재 봉행
조계종단은 불기 2554년 6월 13일(일) 오후 2시 조계종의 원류인 가지산문을 개창했던 조계종조(曹溪宗祖) 도의조사(道義祖師) 열반 1189주기를 맞이하여 조계사 대웅전에서 “조계종조 도의조사 다례재”를 봉행했다.
다례재는 조계사 육법법등의 육법공양과 삼귀의례와 반야심경 봉송, 종회의장 보선스님의 행장소개, 총무원장 자승스님의 추모사, 종정예하의 법어에 이어 종사영반, 헌화의 순으로 진행됐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종조께서는 중국 선종의 정통 맥을 계승한 서당지장(西堂智藏)선사의 인가(印可)를 받고 귀국하여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南宗禪을 전하셨다”고 말하고, “오랜동안 불교가 핍박을 당하고 고통의 세월을 겪느라 종조를 선양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당연한 도리를 다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종단이 안정되어, 종조께서 주석하셨던 진전사를 복원하고 국사께서 계를 받으신 중국 개원사에 ‘수법(守法) 기념비’를 제막하였으며 해마다 추모다례를 봉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앞으로 우리 종도들은 국사의 수행정신을 이어받아 승가의 화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며, 막힌 곳은 소통시키고 갈등과 분쟁이 있는 곳에서는 이해와 관용의 꽃이 피어오르는 멋진 화엄세계를 만들어 나가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종정예하 법전 대종사께서는 원로위원 밀운스님이 대독한 법어를 통해 먼저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불법(佛法)이 이루어 진 것도 아니고 도의(道義)국사께서 이 땅에 격외밀의(格?密意)를 전한 것도 아니다. 세존(世尊)께서 불법은 천하에 널리 퍼져 있었고, 달마대사(達磨?師)가 소림에 이르기 전에 만물은 생명을 얻고 꽃들은 피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종정예하께서는 이어서 “여러분 의발(衣鉢)아래 자기명근(自己明根)을 밝히는 한 덩어리 빛이 있습니다. 부처와 조사(祖師)도 이것을 벗어나지 못했고, 삼라만상이 이것을 바탕으로 생명을 시작했습니다. 이 본래면목(本來面目)은 모든 중생이 평등하게 구족해 있습니다. 이것을 찾고 배우려면 잃게 되고 그르치게 됩니다. 오직 내심자증(內心自證)의 돈오(頓?)가 있어야 불조(佛祖)의 집착에서 벗어 날 수 있고 여러분이 달마(達磨)의 서래의(西來意)와 도의(道義)의 겸추(鉗鎚)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 가운데 국사(國師)가 밝히신 여래밀의(?來密意)가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날 다례재에는 원로위원 밀운스님, 원명스님, 동춘스님, 월서스님, 혜승스님, 정호스님, 혜정스님, 월탄스님과, 총무원장 자승스님, 중앙종회의장 보성스님, 교육원장 현응스님, 포교원장 혜총스님, 군종특별교구본사 자광스님, 총무부장 영담스님 등 부실장스님, 조계사 주지 토진스님, 부주지 도문스님 등 300여 사부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되었으며 사홍서원을 끝으로 회향하였다.
<조계종조 도의조사 행장>
생몰연대는 자세하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 스님으로 휘(諱)는 명적(明寂) 또는 원적(元寂)이고 호는 도의이며 속성은 왕씨입니다.
어느 날 부친께서 흰 무지개(백홍白虹)가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모친 또한 어떤 스님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태몽을 꾼 후 임신하여 39개월 만에 북한군(北漢郡현재 서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건중 5년(784)에 사신인 한찬(韓粲) 김양공(金讓?)을 따라 당나라로 들어가 구법하였습니다. 곧바로 산서성 오대산으로 나아가 중대(中臺)에서 문수보살의 상서가 나타남을 감득하시고 광동성 광주 보단사(현재 대범사) 계단에서 비구계를 품수하였습니다.
소주 조계산 보림사로 나아가시어 육조 혜능대사의 영당에 참배하고 홍주 개원사(현재 남창 우민사)로 가서 서당지장 선사를 친견하시고 그로부터 달마선법을 전해 듣고는 활연대오 하셨습니다.
지장대사께서 찬양하여 “나의 법통을 전수받을 자는 그대가 아니고 또 누가 있겠는가?”라고 하여 전법게와 함께 도의라는 법호를 전하셨습니다. 그 후 제방으로 행각하시다가 강서 백장산 회해선사를 친견하고 문답하시니 백장선사가 말씀하시기를 “강서선맥이 송두리째 동국승에게로 귀속되었다”고 찬탄하였습니다.
당나라에서 37년간 머물며 수행하시다가 821년(신라 헌덕왕 13)에 귀국하여 조계선법을 펼치려 하였으나 시절인연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탄식하여 진전사에서 40년간 주석하시다가 제자인 억성 염거에게 전법하고 입적하셨습니다. 조사의 선법은 억성 염거를 거쳐 보조 체징에게 전해져 마침내 시흥하였습니다.
체징은 장흥군 가지산에 보림사를 창건하고 신라구산 선문 중 최초로 가지산문 일파를 형성하여 도의선풍을 널리 진작하였습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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