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진 고문은 순천의 부유한 집안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극진한 사랑을 누리느라 노처녀 소리를 듣던 22세가 되어서야 중매로 결혼했다. 시부모를 모시고 광주에서 2년 살다가 남편이 성균관대 교수가 되자 서울로 올라왔다. 와세다대학 유학 중에 광복을 맞은 남편은 성균관대에서 남은 공부를 마치고 실력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당시 교수 월급이 4~5만 원, 어릴 때부터 풍족하게 자란 정 고문으로서는 큰살림을 하기에는 좀 부족했다. 친구의 소개로 지금은 없어진 미도파백화점에서 옷가게를 열었다.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새벽 4시에 집에서 나와 절에 가 새벽기도를 하고 밤 10시 통행금지 직전에 집에 들어갔어요. 가게가 잘 돼서 3개로 늘어나고 공장도 운영하느라 하루 3~4시간밖에 못 잤지. 그렇게 돈을 벌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몰랐어요. 쓸 시간도 없었고.”
그래도 기도는 빠지지 않고 다녔다. 재일마다 자신이 가게를 비울 때면 직원들에게 각자 옷을 판 만큼 성과급을 주고 맛난 것도 사주었다. 그러자 오히려 매상도 늘고, 직원들은 그이가 절에 가는 날을 반겼다. 정말 즐겁게 돈을 벌었고, 많이 벌었다고 한다.
“그게 어찌 제 노력만으로 되겠어요, 부처님 가피지. 기도하면서 신비스런 체험도 많이 했어요. 그것에 끄달리지는 않지만 더 열심히 살려고 날 채찍질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열심히 산 흔적이 정 고문 집 거실과 방안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늦둥이 친손자, 정 고문에게는 또 하나의 가피인 지웅(10세)이가 세어 본 서른 개가 넘는 ‘할머니 상장(?)’이 그것이다.
조계사를 비롯해서 각 사찰 불사는 물론, 청소년 장학금과 소년소녀가장 후원금 등 사회복지에 기여한 공로로 받은 감사패가 꽃처럼 즐비하다. 각 사찰 주지 스님의 감사패, 군 불교 후원 감사패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 표창(1999년)부터 국제라이언스클럽 세계대회 회장(1990년)의 감사패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흔적들이 정 고문의 회향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렇게 살 수 있어서, 또 감사하단다.
불심 지극한 가족은 기도의 크나큰 선물
15년 전, 소년소녀 가장 돕기 텔레비전 방송을 본 것을 계기로 소년소녀 가장 돕기를 시작해서 현재 15명에게 매달 150만 원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2002년부터 동대부속여고(당시 명성여고) 학생들에게 봄, 가을로 각각 5백만 원씩 매년 1천만 원의 장학금을 보시하고 있다.
기도는 자비심을 증장시키는지라 그이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대로 지나치지 못한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그들이 내일의 부처님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손자 손녀들이 생기면서 더욱 그 아이들의 아픔이 남다르게 느껴져서다.
요즘 정 고문은 늦둥이 손자 지웅이를 보는 낙에 하루하루가 꽃밭이다. 말하는 것하며 맘 쓰는 것, 즐기는 식성까지, 어느 것 하나 신통하지 않은 게 없다. 몇 년 전 조계사에서 사월초파일 동자승으로 한 달간 삭발한 적이 있는 큰 손자를 비롯해서 정 고문의 가장 큰 행복은 아들과 며느리, 딸, 사위까지 모두 신심 깊은 부처님 제자라는 사실이다. 가장 지극한 부처님 가피가 이것이 아닐까. 가끔은 약주를 과하게 즐겨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이 자신에게 미안해서 베푼 선물이란 생각도 든다.
▲ 정호진 고문은 기도실에 모셔있는 관세음보살님께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린다
가피를 나눌 줄 아는 지혜로운 노후
정 고문의 하루는 새벽 4시, 아침 예불로 시작한다. 아파트 기도실에 모셔 놓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로써 아침공양을 올린다. 정갈하게 옷을 갈아입고, 금강경을 비롯해서 반야심경, 천수경 등을 독송한다. 오래 전에 일을 그만둔 뒤부터 그의 하루는 거의 기도와 경전 읽기로 꽉 차 있다. 새벽예불만도 1시간 40여 분이 걸리고, 법화경 사경까지 하면 오전이 다 지나간다. 요즘은 눈이 침침하고 바닥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해 사경은 어렵지만, 그렇게 사경한 3권의 법화경은 제주도 불사리탑사 대탑에 전국 불자들이 쓴 법화경과 함께 모셔져 있다.
정 고문은 30여 년간 조계사에서 해온 조상 천도 지장기도를 몇 년 전에 그만뒀다. 기도를 하던 중, 공중에서 줄이 세 개 내려오더니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 그리고 남편이 그 줄을 타고 올라가는 모습이 환영처럼 보였다. 주지 스님께서 모두 천도가 되셨으니 천도 기도를 그만해도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전 새 주지 스님이 ‘산 사람을 위한 위패’에 관해 법문을 하셨다. 참 묘한 인연이다 싶어 흔쾌히 살아 있는 온 가족의 위패를 모셨다.
정 고문은 자신에게 다가온 인연을 중심으로 불사를 한다. 그리고 불사할 인연은 항시 그렇게 자연스레 다가온다.
불사의 공덕은 여러 모습의 가피로 당사자에게 되돌아온다. 정 고문은 생면부지의 절에 갔을 때도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많다. 그러나 그런 작은 가피, 예를 들어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좁은 공간의 혜택마저 혼자 누리지 않는 게 정호진, 고경화 보살의 지혜다. 짐짓 마음을 내는 게 아니라 평생 그리 살아온, 몸에 밴 나눔의 습관이다. 진정한 보시제일 불사제일의 공덕은 상(相) 내지 않고 함께 나누는 데 있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