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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신도회 조학제 고문

  • 입력 2011.02.25
  • 수정 2024.11.22

 

어머니가 뿌린 보시의 씨앗으로

한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을 며칠 앞두고 조계사를 참배하는 불자들 발걸음도 설렘과 기대로 분주하다. 호된 추위로 자꾸만 움츠러드는 어깨를 힘줘 세우며 종종 걸음으로 탑전을 지나 산중다원 문을 밀고 들어섰다.
따스한 차향이 코끝을 스쳐 온몸으로 퍼질 때쯤, 선비 같이 단아한 풍모에 정갈한 삭발이 눈길을 끄는 노 신사와 마주 앉았다. ‘꽃이 되어요’의 셋째 번 주인공 조학제(76세) 신도회 고문.
2009년 11월 대장암 수술 때 머리카락을 밀고 나서 다시 기르지 않았다는 조 고문의 삭발 철학이 나름 진지하다. 머리에 들이는 시간이 줄어 생활이 단정해지고 주변이 청결해지는 등, 16가지가 이익이란다.

보시의 씨앗을 심어준 어머니

▲ 손떼 가득 묻은 작고 낡은 법요집 한권을 늘 품에 넣고 다니는 조학제 고문

약사 출신의 조학제 고문은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본보기다. 아홉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가난해진 집안 살림은 어머니 몫이 되었다. 고향 파주에서 구멍가게를 열어 자신을 뒷바라지한 어머니 얘기를 꺼내면서 조 고문의 눈가가 촉촉해진다.
“제가 태생이 건강하지 못했어요. 어릴 때부터 병치레가 잦았지요. 대학 때는 폐결핵에 걸려 각혈까지 하고…. 어머니 정성이 아니었으면 제가 못 살았겠죠.”
어느 자식인들 눈물 없이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을까. 하지만 72세를 일기로 3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조 고문에게 그 이상의 존재다.

집 근처 보광사 법당에는 늘 아들 건강을 비는 어머니의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아들 약값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계(고기닭)를 길러 팔면서 그 생명의 빚을 갚기 위해 무릎이 닳도록 참회의 절을 올렸던 어머니. 그리 가난해도 아들에게는 팔기 전의 과일이나 생선 등, 최고 좋은 것만 골라 먹였다. 조 고문도 힘들기는 어머니 못지않았다.
“등록금을 버느라 대학을 2년 더 길게 다녔어요. 약학대 숙직실에서 자취하면서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는데, 그래서 결핵에 걸렸던 것 같아요.”
생활이 어려우면 각박해지는 게 인지상정이나 어머니는 조 고문에게 보시의 씨앗을 심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어떻게든 돕고 싶어했고, 배고픈 아들 친구들을 불러다 찬은 없지만 정성껏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곤 했다. 마을 뒷산, 함안 조씨 종산의 암자에도 어머니 정성이 허술하지 않았다.
아들은 그렇게 보시의 마음을 배웠다. 구걸하는 사람을 지나치지 못해 지금도 오전에 만나는 걸인에게는 무조건 보시한다. 어머니의 보시 공덕으로 자신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삶을 살았다는 게 조 고문의 생각이다.

108배로 하루 시작, 이루지 못한 게 없어
조 고문은 108배 포교사다. 2001년 척추 수술과 2009년 대장암 수술을 받았을 때도 퇴원한 뒤 1주일이 되면서부터 108배를 다시 시작했을 정도다. 허약한 건강을 지켜준 것이 108배라고 생각한다.
108배의 시작은 1997년 조계사불교대학과 인연을 맺으면서부터다. 요즘도 매일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예불로 시작해서 천수경 독송, 관음 정근, 축원을 끝내고, 5시 45분부터 방영되는 불교 텔레비전의 ‘108대참회문’에 맞춰 꼬박 1시간 동안 108배를 한다. 한 번, 두 번 참회문 내용에 집중하면서 절을 올리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정화되어, 그것이 곧 명상이고 참선 수행이 된다.
약사 후배들에게 108배를 적극 권장해왔는데, “20일 만에 평생 고질이었던 각질이 없어졌다”라는 성공담(?)을 비롯해서 108배를 계기로 불교로 이끈 사람이 적지 않으니, 108배가 어엿한 포교사인 셈이다.
조 고문은 스스로 ‘재복(財福)’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약국 낼 형편이 안 된 그이에게 흔쾌히 큰돈을 대준 이가 나타나 파주 금촌터미널에 약국을 차렸다. 그리고 3년 만에 빚을 다 갚았다.
그때부터 승승장구, 안 되는 일, 못 이룰 일이 없었다. IMF 경제 위기로 인해 파주에 짓기로 한 한강 이북 최대 건물(21층)이 부도나기 전까지는 실패 한 번 없이 돈도 한껏 벌었다. 파주 지역에서는 자수성가한 유명인사로 웬만큼 이름도 알려졌고, 자식 5남매 모두 잘 자라 사회에서 나름의 몫을 하며 대우받고 살고 있다. 본인 표현대로 “하고 싶은 일은 다 이룬” 복된 삶이다.

내생에도 약사로, 아픈 사람 돕고 싶어

▲ "돈은 써야 생긴다. 돈을 쌓아놓고 못 쓰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좋은 일에 보시하는 게 복덕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조학제 고문


다만 같은 약사로 그리고 삶의 도반으로 23년을 함께한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게 그이에게는 큰 아픔이다. 빈털터리였던 자신과 혼인해서 5남매를 기르면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웃었던 기억은 이제 오롯이 조 고문의 몫이 되었다.
약사란 직업에 대해 긍지가 남다른 조 고문은 “남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라고 말한다. 환자와 궁합이 맞아 잘 나으면 약사보살이 따로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자신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약사로서 아픈 사람과 고통을 나누고 싶다고 한다. 자녀들이 뒤를 이었으면 했지만 의사인 큰딸 외에는 다들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자녀들에게 ‘소욕지족(所欲知足,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을 강조한다. 근면하고 성실하되, 고생을 낙으로 삼아야 복 받는다는 말도 뒤따른다. 자기 그릇에 맞게 살면서 넘친다 싶으면 얼른 남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조 고문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말이 그렇지, ‘소욕지족’을 깨닫기가 그리 쉬운가. 99개 가진 사람이 단 1개 가진 사람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우고 싶어한다는 게 인간의 본능이다. 어쩌면 보시의 시작은 그것에 있을지 모른다. 자신이 가진 게 적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남에게 베풀지는 않기 때문이다.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짧아지면서 삶의 철학이 달라진다는 조 고문. 요즘 후배들에게 당부하는 말이 하나 더 늘었다.
“돈은 써야 생긴다. 돈을 쌓아놓고 못 쓰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좋은 일에 보시하는 게 복덕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재물뿐 명예도 마찬가지다. 일찍부터 경기도 지역 약사회를 비롯해서 라이언스클럽, 함안 조씨 종친회 등의 임원을 맡아온 그이는 60대가 되면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 다 벗어야 홀가분해진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 조학제 고문님은 조계사보 발전을 위해 소정의 기금을 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훌훌 벗고 108산사 순례에 나서고, 자손들(5남매와 손자 손녀까지 총 20명)을 소집해서 가족여행을 다니는 게 조 고문의 낙이다. 그런 아버지 영향 때문인지 다섯 자녀들도 출세나 돈보다 가족을 더 중히 여겨, 그의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한 명도 빠짐없이 집합한다.
노년의 행복이 가정의 화목이라는데, 조 고문의 노년이야말로 화사한 장밋빛이다. 어머니가 심은 보시의 씨앗과, 약국 문을 닫고 늦은 밤까지 금강경을 독송하던 먼저 간 아내의 기도가 가져다준 ‘복덕’이라고 믿는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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