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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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수행’의 유정민 불자
주머니가 작은 사람의 행복
예닐곱 살 때였다. 집에 당시로선 무척 귀한 과일 바구니가 선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그중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운 것들을 고르더니 곧장 세들어 사는 옆방 어린 삼 남매에게 가져다주었다. 이제나저제나 침을 삼키며 엄마의 처분만 기다리던 딸아이는 이미 반 넘게 비워진 과일 바구니를 보고 화가 나서 엄마에게 따졌다. 하지만 엄마의 조용한 타이름에 억울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쟤들은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일하러 나가셔서 돌봐줄 사람이 없잖아. 엄마랑 매일 함께 있는 너보다 쟤들 처지가 더 어렵잖니, 그러니 당연히 더 좋은 걸 줘야겠지?”
어머니는 매사가 그런 분이었다.
‘따뜻한 나눔’을 실천한 어머니
딸은 어머니의 그림자란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자랐다는 유정민(51세, 천안 거주) 불자. 당시는 어머니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자라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기더란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어머니 그림자를 밟으며 살려고 애쓰는 자신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그 큰 ‘따뜻함’까지 다 따라 하긴 힘들겠지만.
“초등학생 땐데, 우리 집에 제 또래를 포함해서 애들 셋을 둔 아저씨네가 세들어 왔어요. 이사오고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그애가 자기 친구들과 마당에서 놀고 있고 어머니는 그애들 점심밥을 짓느라 땀을 흘리고 계셨어요. 그런데 자기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를 자기네 집 식모라며, 물 떠와라 뭘 달라 하면서 마구 부려먹는 거예요.”
화가 나서 따지려는 딸을 달래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내가 나중에 타이르마. 쟤들이 상처가 많은가 보다. 지금 얘기하면 얼마나 창피하겠니, 아마 평생 상처가 될 게다. 네가 참아라.”
넉넉지 않기는 다들 마찬가지였지만 어머니는 당장 저녁에 내일 아침밥 지을 쌀밖에 없어도 그 쌀로 다 밥을 지어 저녁을 굶는 이웃과 나누었다. 더 중요한 건, 그 나눔에는 상대방의 마음까지 배려하고 감싸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주머니 크기가 작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
유정민 씨가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한 가지가 있다. 정말 알뜰하다, 아니 이른바 ‘짠순이’다. 이웃과 나눌 때는 통이 커도 살림살이는 살뜰했던 어머니처럼, 자신을 위해서는 자린고비가 따로 없다. 79년에 산 검은색 티셔츠(당시 1,300원에 구입)를 아직도 입고 다니고, 같은 해 산 붉은색 니트는 빛이 바래 얼마 전에 버렸다.
하지만 싸구려를 입으며 아끼는 건 아니다. 옷은 백화점에서만 구입한다. 이른바 유명 메이커 옷, 품질 좋은 옷을 싼값에 사서 오래 입는다. 다만 원칙이 있다. 정장 한 벌 값이 5만 원을 넘으면 안 된다. 핸드백도 4만 원짜리가 최고가다. 무조건 아끼는 게 아니라 지혜롭게 아낀다. 쇼핑 ‘노하우’가 강단에 서도 손색없을 만큼 뛰어나다. 할인권과 사은품을 꼼꼼히 챙기고 할인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데, 몸으로 뛰고 머리를 짜내면 그만큼 절약할 수 있다는 게 삶의 철학이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기보다 아끼고 아낀 덕분에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 만큼 되었다. 그러고 나서 깨달았다. 주머니에 담을 수 있을 만큼만 담고 나머지는 나눠야 한다는 것을…. ‘내 것’을 틀어쥐지 못하는 천성도 한몫했지만, 부처님 말씀의 뜻도 그러함을 알았다. 주머니 크기가 작은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것도….
두 송이 꽃은 그렇게 피어났다. 그 어떤 꽃 못지않게 귀하고 찬연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마음 법’ 확신하고 비로소 불자로 서다
유정민 불자는 남들에게 ‘원칙주의자’란 말을 자주 듣는다. 답답할 만큼 원칙을 중시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걸 스스로 못 견딘다. 옳지 않은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틀린 건 용납할 수 없다. 거기엔 다른 게 있을 수 없다. 그런 그를 보고 ‘불편하게 산다’고들 했다.
그런 성격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주었고, 한때 그 스트레스로 팔이 마비된 적이 있었다. 별 약이 없다며 3년 정도 치료받아야 한다는 한의사 말에 원인이 뭘까 자문해 보았다. 결국 ‘마음’ 때문임을 알았다. 치료를 중단하고 여행을 떠났다. 통도사, 범어사 등 발길은 자연스레 절을 찾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3개월 만에 마비된 팔이 풀렸다.
불교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30년이나 걸렸다. 20대 초반, 우연히 혼자 조계사에 들렀다가 3개월 과정의 기초교리 강의를 들었다. 하지만 때가 아니었는지, 그의 눈에는 부처님께 복을 비는 모습들로만 비쳤다.
작년 하반기쯤, 다시 조계사를 찾았다. 운영하던 수학학원을 잠시 쉬는 동안 좋지 않은 일이 생겼지만, 그 때문은 아니었다. 남에게 의지하고 부탁하는 것 못지않게 그가 잘 못하는 것이 복을 비는 일이다. ‘백천간두에서 진일보하라’는, 어려울 때마다 그를 버티게 해준 그 말씀 때문인지는 모른다. ‘비움과 나눔’을 주제로 한 주지 스님 법문이 문득 마음을 끌었다. 그렇게 올 초, 불교교육과정 심화과정(금강경, 천수경)에 등록하고, 조계사 신도증을 만들었다.
자신이 살면서 느낀 보편적 진리와 파주의 작은 절 신도회장으로서 딸의 멘토가 된 어머니의 ‘실천’이 경전에 담긴 부처님 말씀과 다르지 않음을 확신하는 데 30년이 걸린 셈이다.
지하철 거지 할머니의 가르침
금강경에 달통했다고 자부하던 덕산 선사에게 ‘삼세심 불가득(三世心 不可得)’에 관해 질문함으로써 그 오만을 깨우쳐 준 ‘점심(點心)공안’의 ‘떡장수 할머니’ 이야기가 있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만난 거지 할머니가 유정민 불자에게는 바로 그 떡장수 할머니와 진배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깔끔한 성격의 그이는 거지들에 대해 편견이 있는 편이었다. 지저분한 외형도 그렇지만,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빌어먹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보이면 멀리서 미리 피하거나 심지어는 다른 칸으로 옮겨 갈 정도로 싫어했다.
그날은 그게 되지 않았다. 북적이는 지하철에서 한 거지 할머니가 돈을 달라며 돌아다녔다. 다행히 그이를 지나쳐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휙 돌아서서 그이 손을 덥석 잡는 것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푼만 줘!” 하며 그이 두 손을 감싸 쥔 할머니는 한참 동안 손을 잡고 있다가 그냥 또 휙 가버렸다. 손을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순간 번쩍, 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 손이 참 따뜻하다.’ 더럽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없었다.
금강경 강의에 몰두해 있던 참이라 그 느낌이 더 놀라웠다. 그간의 마음이 잘못된 분별심이었음을, 편견이었음을 어떤 가르침인들 그리 선연히 깨우쳐줄 수 있을까. 떡장수 할머니를 만난 덕산 선사의 심정이 그러했을까?
보시에 대한 생각
올해 초에 사중에서 오대산 적멸보궁을 간 적이 있다. 채 눈이 녹지 않아 길이 매우 미끄러웠다. 오를 때와 달리 내려올 때는 잘 닦이지 않은 길이어서 더욱 위험했다. 바닥이 얼어 자칫 미끄러지면 크게 난감할 지경이었다. 내려가지도, 다시 올라가지도 못하고 쩔쩔매는 노보살님을 보면서 방금 보궁에서 ‘길 불사’ 모연을 하던 게 생각났다.
‘아, 불사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구나.’
어느 절에 가든 ‘마음 가는 대로’ 불사를 하던 그로서는 처음으로 보시에 대해, 불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였다.
자유롭고, 행복한 기억들
그는 자신의 삶을 ‘자유롭다’고 말한다. 컴퓨터의 한 정신연령 측정 프로그램이 정확하다면 그의 정신연령은 ‘유딩(유치원생)’이다. 그래선지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지키며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 수 있어서 자유롭단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꽃을 보면 아름다움에 취하고, 자신에게 사기를 친 사람에게도 도움을 줘야만 마음이 편하다.
문득, 아주 오래 전 불일암에서 법정 스님을 만난 이야기를 떠올린다. 2박 3일 송광사에 머물 때 산책 삼아 불일암에 올라갔다가 운 좋게 법정 스님을 뵈었다. 까다롭다는 소문과 달리 낡은 책상에 마주 앉은 스님은 따뜻했다. 불교를 잘 모를 때라 여쭤볼 것도 없어서 그냥 ‘가만히’ 앉아 “스님, 상추에 물 주셔야겠어요.” 했더니, “해가 진 다음에 주면 된다.” 하셨다.
그렇게 평화로운 2시간이 흘러 황혼 무렵이 되자 “빨리 내려가야 저녁공양 먹을 수 있다. 나도 저녁공양 준비할란다.” 하며 일어나셨다. 헤어질 때 스님이 건넨 말씀은, “보살, 다 좋은데, 환하게 웃어라.”였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따뜻해진단다. 평화로움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요즘엔 부처님 법, 특히 금강경을 만나 ‘전체적으로 행복’하다. 배우는 걸 좋아해서 이번 3개월 과정이 끝나면 능엄경을 공부할 생각이다. 지금처럼 내일도 열심히, 부지런히 살뜰하게 살면서 조금씩 지혜로워지는 자신을 보고 싶다는 유정민 보살. 가족을 위해 기꺼이 져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좀더 여유로워질 그의 내일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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