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기타

'꽃이 되어요' 조계사 40년 신도 손용순 불자

  • 입력 2011.07.01
  • 수정 2024.11.21

 

부처님 말씀을 따라 참 잘 살아온 삶

 

부처님 말씀을 따라 참 잘 살아온 삶


법을 즐기면 언제나 편안하다.
그 마음은 기쁘고 그 뜻은 깨끗하다.
이런 어진 사람은 성인의 법을 들어
그것을 항상 즐거이 행한다.
- 중략 -
깊은 못은 맑고 고요해
물결에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
지혜 있는 삶은 도를 들어
그 마음 즐겁고 편안하다.
- 《법구경》 〈현철품(賢哲品)〉 중에서-

벌써 후텁지근해진 초여름의 종로 한복판, 문득 희디흰 연꽃 흔들고 온 청량한 산사의 바람이 그립다. 허나 그리움은 그리움일 뿐, 마음은 내일을 쫓아 분주히 흔들린다. 엽엽한 서원보다 못 이룬 욕망들이 더 높이 고개를 내미니 부처님께 올리는 삼배는 늘 송구스럽다. 백련의 향기는 아직 코끝에 은은한데….

▲ 천생 여성처럼 부드럽고 여려 보이나, 강단 있고 인내심 강한, 외유내강형 손용순 보살

“스님 법문대로만 하지요”
“저는 일편단심 조계사 부처님 밖에 몰라요. 조계사 다닌 지 한 40년쯤 되었나? 초하루 기도는 웬만하면 안 빠졌어요. 돌아가신 바깥양반도 생전에 저와 같이 조계사 오는 걸 무척 좋아하셨어요. 지금은 옆 동네에 사는 아들이 데려다 줘요.”
마흔 언저리부터 조계사를 다녔다는 손용순 불자는 올해로 만 일흔아홉, 그동안 성지순례 때 빼고는 전혀 다른 절을 찾은 적이 없을 만큼 조계사에 대한 애정이 깊다.
조계사가 뭐가 그리 좋으냐는 어린애 같은 질문에 “조계사 부처님께 인사를 한번 올렸으니 그대로 다녀야지요. 제 성격이 원래 그래요.”라는 연륜 깊은 답이 돌아온다(꼬박꼬박 존대를 내리지 않는 것도 성격인 듯하다). 다닌 지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스님 법문 잘 새겨듣고, 그대로 따를 뿐’이라며, 다른 주변적인 일들은 신경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 부처님 법문대로 살아오면서 딸 여섯과 막내로 낳은 아들까지 일곱 남매 모두 어느 자리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고 자랑스러운 불자로 키웠다. 모두 이른바 일류 대학을 나와 딸들은 교수, 의사, 약사라는 직업을 갖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며, 아들 또한 아버지 뒤를 이어 건실한 사업가로 자리 잡고 있다.
자식들이 자라면서 큰 말썽 없었던 것도 고맙지만 손 보살은 무엇보다 사위, 며느리까지 한 명도 종교 갈등이 없이 화목하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물론 부모로서 자식 결혼 조건에 종교를 제일 중시한 덕분이긴 하다.
모든 게 ‘부처님 법의 공덕’이며 ‘스님 법문을 그대로 따라 행한 결과’임을 한시도 의심한 적이 없다는 손용순 불자. 팔순 나이에 어림잡아 20년은 더 젊어 보이는 ‘우윳빛’ 피부와 어쩔 수 없는 퇴행성관절염 말고는 ‘절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이런 독실한 믿음, 그리고 거기서 얻은 평온한 마음 덕분인 듯하다.

학처럼 곱고 바르게 산 남편
집안 가훈이 ‘근면 성실’이다. 얼핏 고답적이고 단순하게 들리지만, 생전의 남편은 그리 살다가 2001년 일흔여덟에 떠나셨다. 남편은 1.4후퇴 때 고향인 평양에서 홀홀단신 남하해서 외롭고 곤궁한 처지였지만, 그 정신 하나로 사업(건축 용재업)을 일으키고 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 ‘절에 가자’며 아내 손을 이끌 만큼 불심도 돈독했다.
사업을 하면서도 남의 돈은 물론 은행 돈조차 절대 쓰지 않았다. 도리어 지폐 10장이 모이면 은행에 넣고 다시 10장을 모아 은행에 넣는, 절약과 저축이 몸에 밴 사업가였다. 남편은 자녀들에게 “남의 돈 절대 쓰지 말고 폐 끼치지 마라. 성실하고 겸손해라”라고 늘 당부했다.
남편은 자녀들 등록금은 미리 따로따로 봉투에 넣었다가 마감 전에 꼭 챙겨 건네주곤 했다. 딸 아들을 구별하지 않는 진보적인 아버지였다. 내리 딸만 여섯을 낳아도 아내에게 어떤 내색도 하지 않을 만큼 아내에 대한 배려가 각별했다.
다행히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은 아들은 뜻도 아버지를 닮아 성실하다. 세금 꼬박꼬박 내고, 은행 돈 안 쓰는 철칙을 아버지와 아들, 2대가 이어가고 있다.
시부모와 친정 부모 등 온가족 위패를 모신 조계사에서 남편 49재를 올린 지 10년, 무릇 평생을 함께 해온 부부 인연이 지중하다지만 손 보살에게 남편은 정말 귀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평생 속 한 번 썩이지 않았어요. 학 같이 살다 가셨지요. 미운 적요? 정말 단 한 번도 없었어요. 극락 가셨을 거라고 믿어요.”
그런 애틋한 남편을 보내고 한동안 우울했던 마음도 대웅전 부처님을 뵈면서 이겨냈다. 남편과 함께한 시간을 돌아보며 ‘참 잘 살다 가셨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러고 나서 1년 뒤인 2002년, 고향 사람들을 돕고 싶어한 남편의 뜻을 받들어 이북오도민회에 ‘청호장학회’를 설립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평생 고향을 그리워하던 남편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20년 경력의 1세대 여성 운전자
외모는 천생 여성처럼 부드럽고 여려 보이나, 손용순 불자는 스스로 외유내강형이라고 인정할 만큼 강단 있고 인내심이 강하다. 알뜰하게 일곱 남매를 키우고, 남편을 도와 사업을 일으키며 산 세월이 그런 흔적이다. 학 같은 남편 뒤에는 독립심 강한 아내가 있기 마련이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여학교 2학년을 중퇴한 뒤 독학으로 영어 등을 공부를 계속하다가 나중에는 회계까지 배웠다. 회사 경리를 맡기 위해서였다. 자녀들을 다 키우고 나자 남편이 함께 출퇴근하자고 권했다. 회사 경리 겸 사장님 운전사였다.
“69년에 운전면허를 땄어요. 처음에 동대문로터리를 돌 때는 입에 침이 마를 만큼 긴장되고, 못 하겠더군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남편이 운전을 못 하니. 남편을 태우고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어요. 애들이 ‘와, 여자 운전사 봐라!’ 하며 몰려들곤 했지요.”
포니부터 코로나, 수퍼살롱 등, 초창기의 승용차 이름을 줄줄 꿰는 것도 1세대 여성 운전자로서, 20년간의 운전 경력 덕분이다. 그렇게 일흔한 살까지 손수 운전을 했다. 일곱 남매를 다 키우고 남편의 사업 파트너까지, 자신이 생각해도 인내심 하나는 인정할 만하단다.

“조상 잘 모셔야 가정도, 나라도 편안해져요”
예전에 비해 조계사에 젊은 신도들이 많아져서 든든하다는 손용순 불자. 6월 하순 회향을 앞둔 108일 화엄성중기도에 동참하며 매일 조계사 법당에 앉는다. 그럴 때마다 왜 그 자리가 그토록 편안하고 다감하게 느껴질까 생각해본다. 남편을 비롯해서 시댁과 친정 부모님들의 영구위패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란다.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서 젊은 불자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단다.
“부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려면 교리를 공부해야 하듯, 내 가족이 잘 되고 나라가 편안해지려면 조상 제사를 잘 모셔야 해요. 요즘 세태가 부모나 조상을 가벼이 여기는데, 조상 없는 자손이 어디 있어요. 자식들만 애지중지하지 말고, 자식이 예쁜 만큼 조상을 더 잘 모셔야 그 자식이 잘 되지요.”
한 사람의 삶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살아온 세월에서 배어난 향기 때문일 것이다. 어디 한 점 티 없는 삶이 있겠는가만, 40년 조용조용 조계사를 지켜온 손용순 불자의 불심이 한여름 연꽃 향처럼 청아하고 은은하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