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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이주의 화두 - 아내가 부처

  • 입력 2011.07.25
  • 수정 2024.11.20

아침 일찍 훌쩍 떠나 오르는 선운사 도솔암,
숲길을 걸었지요.

어느새 산문(山門)옆, 고샅길가로
솔바람 맞은 깔따귀 들풀들이 고개 숙여 눕고,
내내 더위를 타던 쑥부쟁이가, 마타리가,
그리고 벌개미취, 이름도 모를 산 꽃들이
맑은 새벽 이슬로 세수를 하고 반색하는 것이
이제 곧 들꽃의 계절, 가을도 멀지 않고
가까이 와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좋았지요.

한 줌 스치는 솔바람 마져 감사해야했던 올 여름,
지겹던 장마와 더위, 그래서 더 천천히 걷는 맛이
새록한 도솔천 숲속의 고요와 적막, 문득 맞닥트린
봉긋한 능선 언저리로 함초롬히 등황각씨 원추리가
샛 노오랗게 다투어 피어 마음을 설레게도 했구요.

작년엔가 이 등황각씨 원추리 꽃이
너무 예뻐서 한 다발 꺾어 환심을 사볼 양,
식탁 위에 정성으로 치장을 하고
몇 날, 몇 일을 싱그럽게 살아 주기를 희망했건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바싹 시들어 버려
공연히 핀잔만 듣고 심드렁해 했는데_

자연은 자신의 토양 위에서 생명을 다하는 것을
인간은 그저 사소한 듯 지켜보는 일이 좋은 거라고
어느 선배 산문집 글귀가 생각나
다시는 들에 산에 꽃들을 꺾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었지요.

올 여름, 주말 내내 강원 두메 암자를 돌아다녔지요.
잘 살다가도 훌쩍, 그리고 떠나는,
그 제어 안 되는 나쁜 에너지.
늘 혼자 흔들리는 건, 씁쓸하지만,
이 나이에 그래도 뜨거운 가슴을 발견하곤,
다소 위안도 되고_

내내 같이 살면서 지겨울 법도한데 한 번도 내색을 안 하는,
점점 더 관심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아내와의 위기를
"그래 내 역마살이야" 궁핍한 핑계로 자조하며
두메 암자 오르는 길, 미지의 골짜기에서
또로록 또로록 흘러나오는 맑은 샘물,
허겁지겁 두 손을 똬리 지어 한 모금 벌꺽 목울대로 넘기면
그 알싸하고도 상큼한, 신비롭기 까지 한_
내 남은 생, 중년에도 한 번쯤은 만나지 않을까?

그러한 알싸한 연애가_
 

그렇게 끝임 없이 허우적대던 방황.
그러한 날들의 화답이었는지, 요 몇 날 몸살을 앓기도 했지요.
더 많이 아파지고 싶어 솜이불을 뒤집어 쓰고 잇몸이 덜덜 대도록
신음소릴 내보지만 그예 내자의 관심을 얻진 못했어요.

또, 어딜 가려는 낌새가 보였는지,
군소리 한마디 안하고 아침을 차려 주고
주섬주섬 배낭에 간식까지 챙겨 주던 사람에게
인사조차 못하고 지나쳐와 혼자 오르는 암자의 산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살금살금 헤쳐 가는 심정으로 산을 올랐어요.

지금 생각 해 보니 그러한 것들이 미안하기도 하고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_ 이따 내려갈 때,
저 등황각씨 샛 노오란 꽃을 한 아름 꺾어 가슴에 안겨 주고
사랑 고백이라도 다시 해 볼까 생각했지요.
 

2011.7.24 선운사 도솔암 숲길을 오르며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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