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침묵의 진리를 배우기 위해 불기 2555(2011)년 8월 12일 7시 30분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으로 폭우 속을 뚫고 150여 명의 불자들이 모였다. 오늘 강의는 하안거 방생법회 특강 마무리 3번째 시간으로 간송미술관 연구실장 최완수 교수가 강의를 했다.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6세기 후반 (강의자료)
초기 불상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대좌 위에 두 손을 모은 모습을 한 고구려, 백제 금동불좌상이 있으며, 신라에서도 6세기 후반에는 대규모의 불상조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6세기 후반의 삼국시대 불상 중에는 삼존형식이 많으며, 대부분 암벽에 부조로 조각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백제의 웃음으로 묘사되는,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 경주의 배리석불입상이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불상은, 국가적인 후원과 신앙심, 창의성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나라 불교 미술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8세기에 어깨와 가슴 등 신체의 적절한 비례와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는 사실적이고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신라조각의 황금기를 이루게 된다. 선종이 유행하면서 불교조각이 급격히 쇠퇴하며 불상의 특징은 다소 과장되고 형식화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또 철불의 조성이 늘어나며 여래상의 경우 지권인을 한 비로자나불상이 새롭게 등장한다.
고려시대의 불상은 더욱 다양한 조각양식으로 발전하였다. 고려 전기에는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을 계승하여 철불과 석불을 많이 남겼으며, 항마촉지인의 석가상과 지권인의 비로자나불상이 주류를 이루었다. 석불 입상은 논산 관촉사 석조보살입상, 부여 대조사 석불입상처럼 크기가 10m 내외로 커지면서 지역적인 특생이 나타났다. 얼굴표정과 영락의 장식은 이국적인 분위기가 짙은 불상형식으로 나타났으며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정책에 따라 창의성과 제작기술에서 퇴보를 가져왔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문화절정기인 경덕왕 때 만들어졌다. 석굴암은 얼굴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서 12면 관세음보살을 조성했으며, 불교 최고의 경전들과 교정 불교의 이념이 들어 있는, 대승경전의 꽃이다. 또한, 우리의 독창적인 작품이며, 한민족의 기량을 한껏 발휘한 위대하고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며, 불국사는 세계적인 다보탑과 신라 석탑 정형인 석가탑, 그리고 불국토를 완벽하게 구현해 놓았다.
미륵 하생경에 의해 완성된 작품이 태안 마애삼존불과 서산 마애삼존불이며, 그 구도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고, 간단명료하게 함축된 모든 문화의 집결지이며, 우리나라 사람의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독창적인 국보이다.
▲ 강의에 집중하는 사부대중
세간의 시간을 뛰어넘어 부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자비의 미소야말로 최상의 법문이 아니겠는가? 지식이 널은 만큼 우리의 지혜도 밝아져서 이 순간만큼은 “탐, 진, 치”를 내려놓고 부처님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는 뜻깊고 의미 있는 시간, 한여름밤의 공부였다.
잦은 외침으로 사라지고 부서져 버린 우리 문화재, 무관심으로 묻혀 진 우리의 문화유산들, 8월 15일 잃어버린 우리 불상 천 년을 찾아서, 조계사 신도 4,000여 명은 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