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꽃이 되어요' 신행상담실 봉사자 박돌례(묘선화) 보살
부처님께 쓰는 편지
영산재 피리소리에 울다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다른 종교를 믿었어요. 그것도 아주 열심히…. 성경 공부도 많이 하고, 시키는 대로 용감하게(?) 남의 집 대문을 두드리며 전도도 했어요. 그런데 조상님 제사를 못 지내게 하고 수혈하지 말하는 율법은 영 마음에 걸렸어요.”
그런 이유로 자연스레 그 종교와 멀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답답한 일이 있으면 점집을 찾아다녔고, 무당집도 기웃거렸다. 불상이 모셔진 곳이라 다 절이고 부처님이 계신 곳인 줄 알았다. 정법(正法)을 모르고 그런 곳을 들락거리던 20여 년, 그러면서도 스스로 불자라는 생각으로 주변의 극성스런 개종 권유를 당당히 뿌리쳤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18년간 다닌 직장에서 정년퇴임한 직후, 계속 집안에 불운이 겹쳤다. 하늘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갑자기 조계사가 생각났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결혼 전에 살던 동네가 조계사 근처여서 오가며 본 기억이 났다. 오래 전 일이라 찾아갈 자신이 없어서 택시를 타고 절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마침 절에서는 조상 천도를 위한 영산재가 봉행되고 있었다.
해방둥이인 묘선화 보살은 6․25한국전쟁 와중에서 북한군에게 아버지를 잃었다. 대전형무소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시신을 찾지 못해 가족들에게는 한으로 남은 터였다. 망설임 없이 접수하고 의식에 동참했다. 영산재가 진행되면서 피리소리가 어찌나 서럽던지 창피한 줄도 모르고 펑펑 울었다. 조계사와 인연은 눈물로 시작되었다.
당시 남편의 사업도 안 풀리고, 더구나 교통사고에다 목디스크까지 겹쳐 첩첩이 어려울 때였다. 천도재를 지내며 실컷 울고 나니 왠지 가슴이 후련하고 맑아진 듯했다. 재를 올리고 3일째 되던 날, 1년 넘게 속을 태웠던 남편 가게 문제가 무척 좋은 조건으로 해결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 이게 부처님 가피구나’ 하고 느꼈다.
지난 2000년, 그렇게 조계사 신도가 되었고 비로소 부처님 정법을 만날 수 있었다. 2002년에는 신행상담실 5기로 봉사를 시작했고, 2009년에는 불교대학 과정도 마쳤다.
삼천 배 마치고 지어준 딸의 예명 ‘선우선’
‘돌례’라는 특이한 이름에는 사연이 있다. 유아 사망률이 무척 높았던 광복 전후, 자식 넷을 연달아 잃은 부모님은 병치레 잦은 딸이 두 돌이 되도록 이름을 짓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시름시름 앓던 아기가 숨이 넘어가고 말았다. 죄가 많아 자식 하나를 또 잃었다고 비통해하며 어두워지면 산에다 묻으려고 윗목에 밀어 놓았다. 그런데 저녁 때 아기가 울면서 깨어났다. 아버지는 그제야 ‘돌처럼 튼튼하고 둥글게 커라’는 마음을 담아 ‘돌례’라고 이름 지었다. 자식에 대한 간절한 기도가 담긴 이름임을 알기에 자라면서 놀림을 받아도 의연할 수 있었다.
묘선화 보살도 몇 년 전 연예인인 둘째딸의 예명을 지어줬다. 불교대학에서 3천배를 마친 날이었다. 생전 처음 하는 3천배를 절 삼매에 들어 수월하게 끝내고 돌아왔는데, 광고모델로 뒤늦게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딸이 예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우선) 태양(sun, 선)처럼 모든 걸 골고루 밝게 비추어라’는 마음을 담아 ‘선우선(본명 정유진)’이라 지었다. 딸은 무척 만족스러워했고, 얼마 뒤부터 공중파의 한 인기 드라마(〈내조의 여왕〉)에 출연하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돌례’란 이름을 지을 때 부모님 마음이 이러셨겠구나 생각하니, 새삼 가슴이 저렸다.
주변에서는 고생스럽게 키운 두 딸이 잘되는 걸 보고 “남에게 퍼주는 걸 그리 좋아하더니 복 받았다”고들 한다. 무용을 전공한 큰딸은 전액 장학금을 받고 수석 졸업해서 8년 연애한 남편과 혼인했고, 사회체육학을 전공한 둘째딸도 장학금을 받아 학비 부담을 덜어줬다.
얼마 전까지 연예계 여건 때문에 개종을 고민하던 둘째딸이 “불자임을 떳떳하게 생각하라”는 평소 어머니의 당부가 자신을 지켜줬다면서 “엄마 고마워”라는 말로 한층 단단해진 모습을 보였다.
일상이 된 새벽기도의 힘
정법을 배우고부터 매일 새벽 4시가 묘선화 보살의 기상시간이 되었다. 불교TV의 새벽예불에 맞춰 예불을 올리고, 2~3시간씩 새벽기도를 한다. “염주를 손에서 놓지 마라”는 한 스님의 말씀이 늦깎이의 발심을 부추겼다.
금강경 보문품 기도를 자주하는데, 이런 아내의 모습에 익숙해진 남편은 아내가 어쩌다 늦잠을 자면 시간 맞춰서 깨워준다. 아내의 기도가 가정을 지켜준다고 믿고 고맙게 생각한다.
묘선화 보살은 요즘 천수경 말씀을 새롭게 체험하고 있다. 그간 습관처럼 ‘정구업진언’과 ‘참회진언’을 외웠지만 입으로만 해왔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구절구절의 새로운 뜻이 마음에 들어오면서 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부처님을 만나면서, 칼 들고 싸우는 사람을 말릴 만큼 당찬 묘선화 보살이 울보가 되었다. 불의를 못 참고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은 성격 탓에 주변에서 인정도 받았다. 18년간의 직장생활에서 자신보다 학벌 좋은 사람들을 젖히고 책임자 자리에 오를 만큼 성취욕도 강한 자신이 왜 부처님 앞에만 서면 그러는지 모를 일이다.
요즘 새삼 느끼는 건, 부처님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분이 아니라 발원자 스스로 해결할 지혜를 갖게 해주는 분이라는 것이다. 새벽기도에서 얻는 건 그런 깨달음이다. 그 지혜의 힘.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