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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어요' 디케이시스템 강미자 대표

  • 입력 2011.10.26
  • 수정 2024.11.18

송장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가?


요즘 피부가 유난히 희고 고운 여자 연예인들에게 팬들이 붙여주는 찬사가 있다. ‘우윳빛깔 000!’. 오십대 중반을 훌쩍 넘긴 디케이(DK)시스템 강미자(58세, 법명 水鏡智) 대표를 처음 본 순간, 혹시 나이에 대한 정보가 잘못된 건 아닌지 잠시 당황했다. 우윳빛 피부에다가 요즘 대세인 이른바 ‘동안(童顔)’, 그것도 정도가 심한(?) 동안 때문이었다.
문득 ‘꽃이 되어요’의 주인공들을 매달 만나면서 얼마 전에 깨달은 그들의 공통점이 떠올랐다. 모두들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밝고 긍정적인 기운으로 만나는 이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점이다.
부처님 말씀에 따라 하루하루 열심히 노력하며 살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게 동안의 비결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강미자 불자. 8년째 접수처에서 봉사하면서 선림원 참선수행 프로그램 1학기 과정을 공부 중인 그와의 기분 좋은 만남을 지금부터 가져보자.

외환위기(IMF), 그 어려웠던 시절의 부처님
“결혼 초에 임신한 상태에서 신우염에 걸렸어요. 다니던 직장(노동부 공무원)도 그만둬야 할 만큼 심각했는데, 시어머니께서 어디서 들으셨는지 ‘백일기도를 하면 낫는다더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절에 다니면서 백일기도를 했어요.”
시어머니는 그 일을 계기로 불자가 되었다. 다행히 강 대표는 아들을 무사히 낳고 건강도 되찾았다. 3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간절했던 부처님과의 인연은 아들 기르랴, 남편과 사업하랴, 바쁜 일상에 묻혀 무심히 흘러갔다.
다시 부처님을 찾은 건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IMF)로 뿌리째 흔들리던 1997년 즈음이다. 당시 남편과 함께 운영하던 회사가 1차 부도를 맞았다. 회사 대표인 강미자 보살은 수배를 피해 숨어다니는 형편이 되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화도 보문사를 찾아갔다.
“누가 보문사에서 세 번만 간절히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더군요. 차비 만 원도 없어 못 갈 때도 있었으니, 불전 낼 돈이 있을 리 없잖아요. 부처님께 ‘다음에는 꼭 불전을 올리겠습니다’ 다짐하며 펑펑 울었어요. 세 번째 철야기도를 하면서 ‘왜 안 도와주느냐’고 원망했는데, 바로 그날부터 막혔던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비록 경찰서에 잡혀갔다가 쓰러져 119에 실려가는 등 우여곡절은 많았지만, 100억 정도의 큰 부도를 믿기지 않을 만큼 빨리, 외환위기로 부도난 회사 중 아마 가장 빠른 시간에 일어섰을 것이라고 한다.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 대표는 기도는 ‘간절함과 꼭 이루어질 거라는 확신’만 있으면 반드시 감응을 받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재기해서 현재 남편과 함께 유통회사와 가구 제조업체 케이디시스템 등 두 개의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최고경영자가 되었다.

또 다른 출발, 참선 수행
지난 2006년, 역시 외환위기 여파로 힘들어 하던 친구를 불교에 귀의시키기 위해 교육관을 두리번거리다가 한 스님의 권유로 기본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그간 나름대로 기도와 다라니 독경 등으로 예지몽(豫知夢)도 체험했지만, 초기 불전 특히 ‘아함경’을 공부하면서 비로소 진정한 부처님 법을 만난 기쁨에 가슴이 벅찼단다.
“제가 얼마나 기복만 추구했는지 알겠더군요. 아함경 말씀을 노트에 쓰고 또 쓰고… 푹 빠져서 지냈어요. 부처님 말씀을 배우고부터는 복을 비는 마음이 많이 줄었어요. 내친 김에 불교대학원까지 마치고 올해 3월, 사회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참선을 지도하는 선림원(매주 목요일 저녁 7시~9시)에 등록했어요. 전부터 참선을 하고 싶었거든요.”
참선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였다. 앞만 보고 살아온 자신의 순간순간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몇 달 사이에 ‘까칠한 성격’이 많이 부드러워졌고 바깥과의 ‘부딪힘’도 훨씬 줄었다. 매일 아침 40분씩 ‘송장을 끌고 다니는 이것이 무엇인가?’란 화두에 드는 그 시간이 강 대표는 정말 행복하단다.


바쁜 CEO의 봉사활동

▲ 일주일에 1번 조계사 접수처에서 봉하사는 강미자 보살

일주일에 2~3번은 조계사에서 강 대표를 만날 수 있다. 접수처 봉사가 있는 날은 집(용인시)에서 아침 7시 반쯤 출발해서 9시쯤 도착하면 오후 4시까지 접수도 하고 간단한 상담도 한다. 4시에 조계사를 나서서 사무실로 가 결재를 하고, 6시쯤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
전에는 그의 발자국 소리에 긴장했던 직원들이 요즘은 달라졌다. 일 처리에는 여전히 깐깐하지만 성격이 전보다 편안해졌다고 내놓고들 반긴다. 저녁 9시가 되어야 집에 도착하는데 하루 마무리는 108배로 한다. 그가 기도하지 않고 TV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이 재촉한다.
“당신, 불교 공부 안 해?”
강 대표가 그 바쁜 틈에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봉사다. 강 대표는 부처님 법을 ‘봉사’로 실천하고 싶어한다.
조계사 사중 봉사(2007)뿐만 아니라, 종로노인종합복지관과 김포 가연마을 등에서 줄곧 자원봉사를 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3년 정도,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주간보호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폈고, 한 달에 한 번씩 김포 가연마을의 장애인 외출 도우미로 봉사했다.
“조계사에서 봉사하면서 사회봉사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오가며 본 종각역 노숙자들이 늘 맘에 걸렸거든요. 석가모니부처님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수행만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몸으로라도 돕자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예요.”
타고난 빈틈없는 성격 때문에 집안일을 절대 남에게 시키지 않는 강 대표는 집안 살림도 자기 손으로 못하면서 무슨 수행이고 사회봉사냐는 말이 듣고 싶지 않단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분주하고 바쁘다. 자신이 워낙 바빠서 그 힘들다는 갱년기조차 피해갔다는 게 그이의 장담이다.

마음을 비우니 더 바랄 게 없어
올 10월 8일에 하나뿐인 아들(한재규)이 혼례식을 올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8년째 사귀어온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그 며느리를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며느리가 이웃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49재 때 재일마다 빠지지 않고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 만큼 무르익진 않았어도 스스로 불자라고 믿는 젊은이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 둘의 고민도 컸고, 강 대표 부부 또한 더욱 선뜻 허락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욕심을 버렸어요. 어차피 유학 떠나고 함께 살지 못할 터인데 자기들끼리 사랑하면 된다고…. 다만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뿌리는 잊지 마라. 우리는 조상님을 섬기는 민족이니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라고 당부했어요. 덕분에 홀가분해졌지요.”

남편은 강 대표가 절에 나가자고 할 때마다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당신 부처님께 귀의시킨 건 나야. 내 덕분이야.”
외환위기 때 자신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강 대표가 참불자가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남편이 자신보다 더 신심이 깊단다. 새벽녘 집을 나서면서 뜨는 해를 보고 ‘관세음보살’을 외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사업이 잘 되면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으니 말이다.
강 대표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남자 같은 성격이다. 사업을 하다가 큰돈을 놓쳐도 ‘저건 내 것 아니다’라고 금방 마음을 돌릴 줄 놓다. 돈을 쫓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 더 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너무 편안해서 경계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요즘 하루하루 달라지는 조계사의 모습도 강 대표를 행복하게 한다. 젊은 불자들이 늘어나고, 주변 불사가 마무리되면서 여법한 수행도량, 교육도량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하다. 지나가다 잠깐 쉬러 들어오는 비불자들까지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런 도량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가을 햇빛이 눈부시게 풍성한 날, 조계사 접수처에는 그 햇빛보다 더 따뜻한 눈길로 불자들을 맞이하는 수경지 강미자 보살이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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