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주일에 1번 조계사 접수처에서 봉하사는 강미자 보살
일주일에 2~3번은 조계사에서 강 대표를 만날 수 있다. 접수처 봉사가 있는 날은 집(용인시)에서 아침 7시 반쯤 출발해서 9시쯤 도착하면 오후 4시까지 접수도 하고 간단한 상담도 한다. 4시에 조계사를 나서서 사무실로 가 결재를 하고, 6시쯤 다시 공장으로 향한다.
전에는 그의 발자국 소리에 긴장했던 직원들이 요즘은 달라졌다. 일 처리에는 여전히 깐깐하지만 성격이 전보다 편안해졌다고 내놓고들 반긴다. 저녁 9시가 되어야 집에 도착하는데 하루 마무리는 108배로 한다. 그가 기도하지 않고 TV라도 보고 있으면 남편이 재촉한다.
“당신, 불교 공부 안 해?”
강 대표가 그 바쁜 틈에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봉사다. 강 대표는 부처님 법을 ‘봉사’로 실천하고 싶어한다.
조계사 사중 봉사(2007)뿐만 아니라, 종로노인종합복지관과 김포 가연마을 등에서 줄곧 자원봉사를 해왔다. 일주일에 한 번씩 3년 정도,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주간보호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폈고, 한 달에 한 번씩 김포 가연마을의 장애인 외출 도우미로 봉사했다.
“조계사에서 봉사하면서 사회봉사도 해야겠다 마음먹었어요. 오가며 본 종각역 노숙자들이 늘 맘에 걸렸거든요. 석가모니부처님도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이 수행만큼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답니다. 몸으로라도 돕자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예요.”
타고난 빈틈없는 성격 때문에 집안일을 절대 남에게 시키지 않는 강 대표는 집안 살림도 자기 손으로 못하면서 무슨 수행이고 사회봉사냐는 말이 듣고 싶지 않단다. 그러다 보니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분주하고 바쁘다. 자신이 워낙 바빠서 그 힘들다는 갱년기조차 피해갔다는 게 그이의 장담이다.
마음을 비우니 더 바랄 게 없어
올 10월 8일에 하나뿐인 아들(한재규)이 혼례식을 올렸다. 대학 1학년 때부터 8년째 사귀어온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그 며느리를 받아들이기까지 마음이 많이 복잡했다. 며느리가 이웃종교 신자였기 때문이다. 아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49재 때 재일마다 빠지지 않고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 만큼 무르익진 않았어도 스스로 불자라고 믿는 젊은이다. 그러다 보니 당사자 둘의 고민도 컸고, 강 대표 부부 또한 더욱 선뜻 허락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어느 순간 욕심을 버렸어요. 어차피 유학 떠나고 함께 살지 못할 터인데 자기들끼리 사랑하면 된다고…. 다만 ‘어떤 종교를 믿더라도 뿌리는 잊지 마라. 우리는 조상님을 섬기는 민족이니 제사는 반드시 지내야 한다’라고 당부했어요. 덕분에 홀가분해졌지요.”
남편은 강 대표가 절에 나가자고 할 때마다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당신 부처님께 귀의시킨 건 나야. 내 덕분이야.”
외환위기 때 자신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강 대표가 참불자가 됐다는 뜻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남편이 자신보다 더 신심이 깊단다. 새벽녘 집을 나서면서 뜨는 해를 보고 ‘관세음보살’을 외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사업이 잘 되면 아내의 기도 덕분이라고 믿으니 말이다.
강 대표는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남자 같은 성격이다. 사업을 하다가 큰돈을 놓쳐도 ‘저건 내 것 아니다’라고 금방 마음을 돌릴 줄 놓다. 돈을 쫓는 것이 얼마나 허황되고 어리석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요즘 더 할 나위 없이 마음이 편하다. 오히려 너무 편안해서 경계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요즘 하루하루 달라지는 조계사의 모습도 강 대표를 행복하게 한다. 젊은 불자들이 늘어나고, 주변 불사가 마무리되면서 여법한 수행도량, 교육도량으로 자리잡는 모습을 보는 게 뿌듯하다. 지나가다 잠깐 쉬러 들어오는 비불자들까지 따뜻하게 맞이하는, 그런 도량이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가을 햇빛이 눈부시게 풍성한 날, 조계사 접수처에는 그 햇빛보다 더 따뜻한 눈길로 불자들을 맞이하는 수경지 강미자 보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