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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되어요' 상담실 혜명심 김순자 실장

  • 입력 2011.12.02
  • 수정 2024.11.25

 

신행은 함께 할수록 더욱 깊어져


‘국화 향기 나눔전’이 열리는 조계사 경내는 온통 국화꽃 천지, 꽃 대궐이었다. 국화의 깊은 빛깔과 향을 눈과 가슴에 한껏 담으며 한발 한발 걷노라니 대웅전부터 신행상담실까지의 거리도 그리 짧지만은 않았다. 대웅전 앞마당에 세워진 커다란 코끼리 모양의 ‘꽃끼리’ 국화를 비롯해서, 귀하디귀하다는 분재 국화 등, 봄부터 그 꽃을 심고 가꾼 농민들의 마음이 늦가을 햇살처럼 따스하게 전해 오는 까닭일 게다.
그렇게, 많은 이들의 북적이는 발길이 ‘시월에 피는 시월 국화’의 향기를 더욱 멀리까지 퍼뜨려 조계사 주변을 꽃동산으로 만들었다. 꽃향기는 많은 사람과 나누면 나눌수록 더 멀리, 더 그윽하게 퍼지고 있었다.

▲ 신도회관 3층에 자리잡은 신행상담실 ▲ 빽빽한 상담실 알림판 ▲ 신행상담실, 결혼상담실, 조계종 총무원 민원실을 총괄하는 김혜명심 실장


상담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일
김순자(56세, 법명 혜명심) 상담실장은 올해로 상담 봉사를 한 지 10년째다. 두 달 과정의 사중 6기 불교상담교육(25명 수료)을 마치고 상담 봉사를 자원(20명)했다. 면접을 거쳐 상담실에 배치된 봉사자는 그이를 포함해서 8명이다.
현재 총 55명의 상담 봉사자들이 사중 신행상담실과 결혼상담실, 조계종 총무원 민원실 상담을 맡고 있고, 김순자 실장이 이를 총괄한다. 임기는 작년 3월부터 내년 2월까지 2년.
김 실장은 처음 사중에서 상담실장을 맡으라는 말에 한참 망설였다. 잘할 자신도 없었고, 뭐든 한 번 시작하면 그 일에 푹 빠져 다른 일을 놓아버리는 자신의 성격 때문이었다. 5년째 ‘열공’ 중인 동산불교대학 전문과정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문득 존경하는 한 스님 말씀이 떠올랐다.
“절에서 소임을 맡을 때는 맡으라면 ‘예’ 하고 맡고, 그만두라면 또 ‘예’ 하고 그만두어라. ‘하고 싶다’거나 ‘하기 싫다’는 마음이 다 욕심이니, 그걸 내려놓는 게 수행이다.”라고 하셨다.
김 실장은 그런 마음으로 5대 상담실장을 맡았다. 세 상담실(신행상담실, 결혼상담실, 종단 민원실) 모든 봉사자들의 봉사 일정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자리여서 거의 상근하다시피 조계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신행상담은 전화(아침 10시~오후 5시)와 직접 방문(매주 목요일, 전문 상담)으로 이뤄지는데, 신행뿐만 아니라 가족 갈등, 부부 문제, 인생 문제 등 갖가지 고민들을 쏟아내죠. 그 얘기들을 겸손하게 잘 경청하고 문제를 파악하는 게 상담자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따끈한 차 한 잔을 내놓고 가만히 내담자의 하소연을 들어주노라면, 본인들 스스로 평정심을 되찾고 문제의 본질에 조금씩 가까이 다가간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자기 안에, 부처님 말씀에 다 들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봉사자들은 남의 허물을 통해 자신의 허물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현대인들이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어디 그리 많던가. 자신이 먼저 정돈되지 않으면 상담자 자리에 앉을 수 없다는 것, 남의 얘기를 듣기 전에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정돈해야 한다는 게 어쩌면 상담 봉사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그간 별도로 운영돼온 결혼상담실 일이 올 3월부터 신행상담실로 옮겨 와 일이 더 늘었다. 3월 한 달 간 준비과정을 거쳐 정리된 결혼상담실 회원 수가 1,500명. 불자가정을 만들기 위해 조계사 신도 자녀들을 대상으로 출발(1997년)한 지 15년째인데, 전국에 소문이 나서 이제는 지방 신청자들도 적지 않다. 운영방식을 방문자 중심에서 예약제로 바꾸고, ‘칠월칠석 만남’을 주선하는 등, 부쩍 신경을 쓴 덕분에 올 3월 이후 다섯 쌍이 성사되었고, 세 쌍이 데이트 중이다. 올해 연말 만남도 준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용화사 법당에서
김혜명심 실장의 할머니가 독실한 불자셨다. 집에서 걸어서 한 시간 걸리는 의정부 용화사가 할머니 기도처였는데, 대여섯 살 무렵에 어린 그이를 백일기도 동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데리고 다닌 적이 있다. 법당 할머니들은 나붓나붓 절을 예쁘게 하는 어린 그이가 신통해서 “예쁘다, 잘한다.” 하며 깨물 듯 귀여워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꼬마는 자꾸 자꾸 절을 했단다.
이상하게 그날 법당에서의 일은 김 실장이 다른 종교에 심취해 보냈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뭔지 모를 그리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인정치 않고 모든 걸 ‘신의 뜻’으로 돌리는 그 종교에 회의를 느껴 ‘냉담자’가 되었을 때, 다시 불교로 그이를 이끈 것도 설명할 수 없는 그 따뜻한 기억이었다.
그래서 혜명심 보살은 어릴 때 부처님을 만나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자녀 셋 모두 조계사 어린이법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도 엄마의 이런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영향으로 큰아들은 군대생활 내내 한 번도 합장주를 손목에서 끌러놓지 않았다고 한다. 여러 말보다 평소에 부모가 보여주는 신심 깊은 기도와 모범적인 신행생활이 자식들에게 자연스레 부모의 종교를 존중하고 따르게 한다는 게 그이의 지론이다.
김 실장네는 요즘 보기 힘든,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자신들 힘으로 독립할 때까지 함께 살겠다고 한 큰아들 부부와 15개월 된 손자, 결혼 전인 아들과 딸, 그리고 김 실장 부부까지 일곱 식구다. 모델인 며느리가 일을 할 때는 손자를 봐줘야 하고 집안일도 많아 불편할 터인데, 대가족 생활이 복잡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어도 번거롭지 않아야 진짜 불자라는 말이 있어요. 며느리가 현명하고 예의 발라서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손자가 태어나고부터 집안에 생기가 돌고, 더 화목해졌어요.”
밉고 예쁜 것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결정된다고 했던가. 그 예쁜 며느리가 이번 국화 잔치 때 시어머니를 위해 꽃 공양을 올렸다며, 며느리 자랑이 이어진다.

세상 올 때의 업보다 갈 때의 업이 적기를
김 실장은 보건소 공무원이던 스물다섯 살 때, 초등학교 동창을 우연히 다시 만나 사귀다가 부부 연을 맺었다. 남편이 고등학교 수학교사여서 방학 때마다 가족 여행을 다녔는데, 항상 절 세 군데 이상 들를 수 있는 곳을 여행지로 선택했다. 동산불교대학 전문과정도 함께 다닐 만큼 남편과 금슬이 좋지만 방방곡곡, 외진 곳의 부처님까지 다 참배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정말 고맙다고 한다. 그렇게 30여 년 다니다 보니 아주 작은 절까지 거의 안 가본 절이 없을 정도다.
혜명심 보살은 새벽 6시에 일어나 1시간 반 동안 기도와 경전 독송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천수다라니’(백만 독이 목표)를 틈틈이, 하루에 400독 이상씩 독송한 지 5년째로, 11월 중순 현재 50만 독을 넘어섰다. 남편 말마따나 ‘칼칼한 성격’이어서 ‘대충’을 싫어한다. 경전을 독송하거나 절을 할 때 정확히 수를 세기 위해 세는 계수기를 얼른 꺼내 보여준다.
그이의 가장 큰 기도는 무엇일까?
“귀한 부처님 법을 만났으니 업장을 녹여야지요. 기억 못하는 업까지 다 녹이기 위해 참회기도를 합니다. 이 세상 잘 살았다는 건, ‘올 때 가지고 온 업보다 갈 때의 업이 적은 것’이라는 말씀처럼요.”
30대 중반, BBS 불교방송의 스님 법문이나 신행상담을 들으면서, 불교가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생각했던 것처럼 미신이 아니며, 오히려 가장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며 지혜로운 종교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한 건 10여 년 전, 40대 후반이다. 기초교리부터 대학 과정까지 동산불교대학에서 마쳤고, 지금은 전문과정의 초기불교 ‘수행론’을 공부하고 있다. 아함경 15권 등, 초기 불전에 더 마음이 가는 건 그것이 부처님의 ‘진성(眞聲)’이라는 생각에서다.

수필 〈갓바위 부처〉로 등단
빈틈없이 계획해서 일을 밀고 나가는 게 김 실장의 성격이다. 경희대 평생교육원 등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고 10년 습작한 그는 1998년 《수필과 비평》에 〈갓바위 부처〉란 수필로 문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어 《에세이문학》(2004)을 비롯, 여러 동인지에 작품을 실으면서 수필가로 활동하다가 불교 공부에 빠지면서 잠시 소홀해졌다.
“상담실장 소임을 놓으면 수필을 다시 쓰고 싶어요. 상담 봉사는 65세까지가 적당한 것 같아 좀 더 할 거고요.”
다라니 10만 독을 마칠 때마다 꿈을 꾼다는 김혜명심 실장. 때로는 사중 어른 스님이 나타나 등을 토닥이며 격려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탱화 속 부처님 형상으로 나타나 그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기도 한다. 꿈에 끄달리지는 않지만 더 열심히 정진하라는 격려가 되니, 신행의 자극제이기도 하다.
김혜명심 실장과 마주 앉아 3층 신행상담실 넓은 창문에서 내려다본 경내에는 국화꽃 잔치가 한창이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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