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감동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가니 오른 편에 늘어선 부처님들. 잘생기진 않았지만 천 년 전 아니 그 이전에 귀족이 아닌, 예술가가 아닌 민초의 손으로 만들었을 그 누군가의 소망을 머금은 모습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무슨 기준으로 국보다 아니다 나누었는가. 모든 부처가 다 보물인 것을.
▲ 보물 제798호 화순 운주사 원형 다층석탑
눈이 부족하여 다 담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계단을 오르면 또 부처님, 또 탑. 감동이 차츰 시들어 갈 무렵 아름다운 다층석탑이 눈에 확 들어온다. 보물 798호인 원형다층석탑이 주인공이다. 돌을 떡 주무르듯이 주물러 원형 탑을 빚은 듯한 모습에 부드러운, 온화함을 느낀다.
한기를 느껴 지혜당에서 잠시 쉬며 차를 한잔 마실 때 여 보살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온다. ‘사랑할수록 너무 가까이 하지 마라. 상처를 줄 수 있음이다.’ 도심 한복판이라면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소리가 마치 부처님의 가르침인 양 머리에 새겨진다. 불신 깊은 사찰에서는 모든 오고 가는 대화가 모두 부처님의 말씀이리라.
기운을 차리고 다시 찾은 곳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산 정사에 계신 와불. 비록 보물지정은 안 되었지만 어떤 보물보다 아름다운 모습이다. 잘생기시진 않았지만 자태가 부드럽고, 우리네 이웃들의 모습을 한 부처님이시다. 누구의 염원을 들으시려 언제부터 저기에 누워계셨는가? 하늘이 부처님이고 부처님이 하늘인가?
먹먹한 가슴으로 돌아 나오는 길목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운주사. 정말 백제 민중의 미륵불에 대한 염원이 서린 곳일까? 아니면 도선스님이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새벽닭이 울어 공사를 중단한 것일까? 여름에 다시 찾으리라 마음먹으며 아쉬움을 뒤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