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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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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내 마음으로 부터의 여행 / 불일암 - 스님의 빈 의자를 찾아서

  • 입력 2011.12.17
  • 수정 2024.11.24

왠지 시간을 붙들고 머물러 계실 것 같은 법정스님


어느덧 한 해의 끝자락에 다가섰다.
사랑의 먼 길을 가려면 먼저 작은 기쁨들과 친해져야 한다는데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가는 중에서도 수없이 스쳐간 작은 기쁨들에
과연 얼마나 만족하며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가진 것도 없건 만은 항시 푸른 하늘을 머리위에 이고 있으니
우러러 이런 행복 다시없을 터인데도
미련스런 탐욕의 찌꺼기는 빈 공간에 그려져 있는 동그라미처럼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자국으로 매듭을 못 지은 채
또 한해를 붙들고 궁상을 떨고 있다.

제 아무리 거부해도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12월의 남은 시간은 초스피드의 속도를 내며 달려들 것이다.

진정한 자기를 만나기 전까지는 누구도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어찌할 것인가-

행복도 다른 기술과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로 한다는데
죽지 않고 견디면 언젠가는 새싹이 돋고 꽃 피듯 피어날 수 있을까?

풀길 없는 세속의 화두를 안고
승보사찰 송광사의 너른 뜨락을 지나 편백나무와 노송이 어우러져
울창한 숲을 이룬 무소유길 로 올라본다.

좁은 골짜기 길은 나무뿌리가 계단이 되어 주는 가파른 흙길이다.
자연 속 자연스레 시간을 두고 생겨난 아름다운 오솔길이다.

이 길을 오갔을 스님의 맑고 향기로운 뒷모습을 따르자니 절로 발길이
가벼워진다.

산죽이 줄지어선 아담한 낙엽 길을 거슬러 오르자
대나무를 이어 만든 소박한 사립문이 정겹게 길손을 맞는다.


푸른 대나무가 사열을 하듯 머리를 맞대고
하늘을 가려 터널 숲을 이룬 오솔길을 통과해서 발을 내딛자
미지의 세계로 온 듯 갑자기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난다.
포근히 산을 감싸 안고 있는 아담한 암자 불일암 이다.

아치형의 대나무들이 숲을 이뤄 가로막고 서 있는 듯
저절로 살짝 고개 숙이고 들어가게 되는 절 마당
바로 스님 가까이로 가는 통로인양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든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뵌 게 입적하시기 두어 달 전
성북동 길상사 일요법회 때였었는데...
내 렌즈 속에 초췌한 사진만 한 장 남기셨다.

고요한 적막이 배낭조차 내려놓기가 미안해지는 마음이 된다.
고양이 걸음 마냥 발자국 소리도 소음이 될 것 같아
혹여 스님이 계신 듯 방해를 하는 것은 아닌가 조심스러워진다.
정녕 시간도 멈춰선 곳 인 듯 적막감만이 휘감는다.


처마 밑 외로이 빈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스님의 의자!
영화 ‘빠삐용’을 보고 영감을 얻어 참나무 장작개비로 손수 만드셨다는
자연에서 얻은 소중한 산물이라는 이 소품이 예사롭지 않다.

살짝 걸터앉고도 싶었지만 언감생심이라...



계단 아래쪽으로 텃밭을 일구며 지내셨을 법한 작은 공간과
오솔길이며 목욕간, 해우소, 장독대, 통나무 탁자, 의자,
꿰맨 흰 고무신
풍경, 어느 것 하나 넘침이 없이 소박하기만하다.

스님은 이마저도 넘친다며 강원도 산골로 떠나셨지요.
홀로 사는 기쁨을 누린 다는 무소유의 삶이 그런 것일까요.

세속에서 살며 사소한 것 하나에도 바둥바둥하는
도시의 범인으로서는 어찌 흉내라도 내볼 수 있을 런지



뒤돌아서는 길, 동행했던 이가 고독한 공부방 지키는 학승에게
배낭 속 간식을 털어 스님 대하듯 공손히 전하는 정겨운 손길을 보며
절집을 나서려는데

왠지 자꾸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머뭇거려진다.
아차, 양지쪽 한그루 동백나무가 빨간 꽃 몽우리를 펼친 채
눈짓을 하고 있다.

‘거사님은 걱정 말고 내려가세요. 우리가 스님을 지키고 있을게요.’



사립문 벗어나 살갑게 놓여 있는 돌다리 건너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산죽 우거진 오솔길에는 어느 틈엔가 세속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앉는다.
 

법정 스님 글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에서 -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에서 -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이 춤추는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안과 밖과 너머에 있는 광대한 고요함과 사랑의 침묵이
곧 수많은 선각자들이 말하는 공(空)의 실상이다.

-독일의 선 수행자 '아디아 샨티'의 [선] 에서 -
 


어쩜 법정스님의 삷의 철학을 읽은 듯 생각을 보태본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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