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이 솟을 무렵 '상왕산 개심사' 안내판 앞에 선다.
개심사는 서산시 운산면 신청리 1번지 상왕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로.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혜감국사가 654년(백제 의자왕14)에 창건했으며 당시 이름은 개원사(開元寺)라고 불렀다.
고려 14세기 초 폐사되었던 듯하고 14세기 중반 중건하였는데, 1350년(충정왕2) 처능(處能)스님이 중창하면서'개심사'라고 고쳤다.
사찰의 연혁을 되새기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떠올려본다.
비탈진 산길을 에돌아 올라서자 외나무다리가 정겹게 걸쳐진 작은 연못이 나타난다.
개심사가 위치한 상왕산이 코끼리 모습이라 코끼리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 전해지는 연못이다. 어디 가도 상황에 걸맞게 꿰맞춘 듯한 스토리텔링이 재미난다.
지금은 쌀쌀하게 얼어붙은 연못이지만, 짧은 봄 한 철엔 화려한 귀부인처럼 파란 꽃잎을 흩날리는 청벚꽃이 있다. 꽃심이 청포도 같이 연한 녹색을 띠고 있어 푸르스름해 보인다는 청벚꽃은 국내에서는 개심사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나목의 배롱나무 또한 고고히 연못가를 지켜 서서 붉은 꽃잎을 흐드러지게 피워낼 때를 기다리는 듯하다.
연못 위로 가로놓인 이 외나무다리가 속세의 마음을 씻어내고 향수해를 건너 수미산으로 들어간다는 극락세계의 그 길일까?
다리를 조심스레 건너본다.
곧바로 안양루 옆 해탈문을 넘어서, 절 마당으로 들어선다.
해탈문은 사찰에 따라 불이문, 극락문 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탈문은 곧 불국토를 만나는 곳이며, 이곳을 통과하면 불국토가 열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해탈문 즉 불이문은 둘이 아닌 하나의 경지인 해탈, 불국토로 들어가는 문이다.
아늑한 공간이다. 가운데 대웅보전을 감싸고 오른쪽엔 심검당이, 왼쪽에는 요사채인 무량수각이 자리해 있다. 대웅보전 맞은편엔 좁은 마당을 활용하여 부처님께 예경하는 공간으로 삼은 안양루가 있다.
누각의 한 쪽에는 불전사물 중 범종을 제외한 법고, 운판, 목어가 매달려있고 외벽에는 ‘상왕산 개심사’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있다.
근대 명필이자, 묵죽도로 유명한 화가 해강 김규진 선생이 쓴 전서체의 현판이다.
대웅보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1963년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을 모셔져 있다.
▲ 대웅전 옆 무량수각
대웅보전의 좌측에는 무량수각이 자리 잡고 있다.
요사채의 기둥은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멋스러움이 돋보인다. 세상사 굽으면 굽은 대로 역할이 있는 것일까.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명부전은 정면, 측면 각 3칸의 맞배지붕으로 충남도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에는 지장삼존을 비롯하여 시왕과 판관. 녹사. 사자. 동자. 인왕상각 2체씩이 봉안되어 있다. 불화는 1987년 조성한 지장 후불탱화가 걸려있다. 일부는 칼로 도려내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안양루 마루에 걸터앉아본다.
극락세계의 다른 말이자, 마음을 편안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안양-
냉기를 타고 고즈넉한 산사의 공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 요사체 기와에 매달린 고드름
역시 산사라는 이름이 가장 어울릴 때는 하얀 눈 덮인 한겨울인 것 같다.
이끼 낀 기와 사이로 녹아내리는 눈이 사부대중의 눈물 같다.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도 정겹다.
감나무 옆에 있는 예스러운 범종각은 곧게 뻗은 기둥이 하나도 없다. 못난 나무가 역시 효자 노릇을 하는가 보다. 범종각에는 범종만 조성되어 있고, 불전사물 중 나머지는 안양루에 있다. 범종은 특이하게 울림 공을 뚫어 천상의 법음이 사바세계에 고루 울려 퍼지도록 배려했단다.
나그네는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음을 어찌하랴.
이제 잘 보전된 석성이자, 구한말 수많은 순교자들이 처형된 천주교의 성지인 ‘해미읍성’을 향해 아라매길 순례를 이어간다. 승용차로 겨우 5분 거리인 7km를 다시 두어 시간 더 걸어야 한다.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 한껏 열었던 마음을 닫아야 할 것 같다.
비워야 할 마음이 본디 없고, 닦아야 할 마음이 본디 없으며
밝혀야 할 마음이 본디 없으니, 마음을 비우고 밝히고 닦는다는 말은
토끼의 뿔이요 거북의 터럭입니다.
문득 어디선가 읽었던 한 구절 글귀가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