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동네 조계사 광진구 지회장 최명숙(홍일)
먼 길 돌아서 다시 만난 부처님
“조계사에서 받은 제 법명이 ‘홍일(弘一)’이에요. ‘오롯이 앞만 보고 널리 가라’는 뜻이래요. 제가 부처님 법을 만나기까지 좀 멀리 돌아왔거든요.”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다 왔으니 그만큼 더 열심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생각한단다.
광진구 지역모임 최명숙(53세) 지회장은 11년 전쯤, 남편과 함께 하던 사업이 부도를 맞았던 때를 떠올린다. 서울에 살면서도 조계사가 어딘지 북한산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 모를 만큼 일만 파고 살았는데, 두 번의 부도로 집까지 넘어가고 나니 허망할 따름이었다. 문득 어깨너머로 들은 북한산 승가사란 곳이 꼭 가보고 싶어졌다. 당시는 남편을 따라 다른 종교를 믿고 있었다.
“어릴 때 할머니는 가을걷이를 하고 나면 제일 좋은 쌀을 골라 머리에 이고 절에 가셨어요. 칠성각에 기도해서 저희 손주들을 얻었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물어물어 승가사를 찾아갔다. 전날 밤 꿈에서 본 그대로 봄꽃이 만발한 승가사를 1년간 혼자 매일 오르내렸다. 절하는 법조차 몰랐으나 부처님을 뵈면 마음이 가라앉고 환희심이 일었다. 그런데 할머니가 닦아 놓은 인연 덕분인지 다른 종교로 외도(?)했던 형제들도 하나둘 최명숙 지회장처럼 부처님 품으로 돌아왔다.
봉정암 탑 앞에서 터진 눈물
최 지회장은 첫 성지순례지 봉정암에서 겪은 일을 잊지 못한다. 사찰 순례를 다니고 싶어 조계사 신도가 된 그이에게 기본교육과정(60기)에서 간 첫 순례는 설렘 자체였는데, 사리탑에서 기도를 하던 도중에 이유 모를 울음이 쏟아졌다. 봇물이 터진 듯 참아지지가 않아 창피해 하면서도 펑펑 원 없이 통곡했다. 가슴을 짓누르던 큰 바윗덩이가 쑥 빠져나간 듯, 모든 업장이 녹은 것처럼 후련했다. 그러고는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일찍이 세상을 떠나 얼굴도 모르는 시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이게 우리집’이라고 미리 알려주셔서 두 번 가보고 샀다. 다른 종교의 성직자를 꿈꿨던 남편이 이제는 최 지회장이 절 일을 편히 할 수 있게 배려해주고 있고, 그런 남편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 불교대학 수강은 잠시 미뤄 놓았다.
그이가 절에 다닌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놨을 때 남편은 “무속으로 가지 말고 절에만 다녀.”라면서 개종을 받아들였다. 그런 남편한테 미안해서 광진구 지회장 부촉장을 받고도 몇 달간 집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하지만 후에 그이가 고백하자 오히려 “열심히 돈 많이 벌어서 잘 밀어줘야 할 텐테….” 하며 격려해주었다. 놀랍고 고마운 변화였다.
힘들고 아플 때 곁에 있어주는 모임
광진구는 주변에 절이 많아 다른 지역에 비해 조계사 신도가 많지는 않다. 지난 5월 6일 열 번째 모임을 갖기까지 매번 30명 안팎의 회원들이 꾸준히 참석하고 있다. 장소는 창립 모임 때부터 줄곧 구이동 동대부속 여고 법당이다. 지역모임이 생겨서 제일 좋을 건 무엇일까?
“전에는 절에 오면 아는 사람이 없어 구석에서 쭈뼛대곤 했는데 지금은 회원들끼리 같이 법회도 보고 행사도 참석하는 등, 절에 나오는 게 재밌대요. 동네 시장이나 길거리에서 만나면 반가워서 얼싸안고 그러지요. 시장도 같이 보고 밥도 먹고…. 동네에 친구가 여럿 생긴 셈이죠. 힘든 일이 있거나 아플 때 가장 가까이에서 도울 수 있는 동네 친구요.”
‘불교는 행이 먼저’라고 생각한다는 최 지회장은 교리공부를 마치고는 바로 신도회에 찾아가 봉사를 신청했을 만큼, 사중 봉사나 법회 지원 활동에 적극적이다. 직장직능전법단(전 대승법회) 봉사부 차장을 지내면서 어린이날 축제를 준비하는 등, 작년에 이어 올해도 5백 여 명이 참석한 큰 행사를 치러냈다. 초발심인 자신이 그런 봉사를 할 수 있어서 대단히 고맙고 흐뭇하단다.
최 지회장은 광진구 지역모임도 앞으로 지역 복지센터와 연결해서 무료급식, 봉사 등에 나설 계획이다. 봉사하면서 받는 마음의 상처나 갈등을 이겨내는 것 또한 큰 수행이며 다져짐이라고 여긴다.
초발심일 때나 지금이나 사중 일을 하면서 느끼는 행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최명숙 지회장. 정작 대수술을 두 번한 아들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꺼내는 그에게서 깊은 모정의 불심이 느껴졌다.
▲ 우리동네 조계사 광진구 지회장 최명숙(홍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