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늦었어도 참 좋은 일!”
문경 희양산 자락의 봉암사 바로 아랫동네가 자재광 안계숙((54) 지회장의 고향이다. 광산을 경영하는 능력 있는 아버지와 생각이 남들보다 앞선 지혜로운 어머니 덕분에 피아노도 배우고 미술 공부도 하면서 맘껏 꿈을 키울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은 티 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그 풍요롭던 기억의 곳곳에는 할머니를 따라 자주 놀러가던 봉암사가 있다.
그냥 철없이 따라만 다녔던 그 길이 서울 유학생활과 사회생활, 그리고 한 가정을 일구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안 지회장을 부처님께 이어주었고, 조계사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대학생 때 무조건 조계사를 찾아 일주문에 들어선 인연이 올해로 34년째, 그 긴 시간으로 보나 열성의 정도로 보나 안 지회장은 조계사의 최고 토박이 신도다.
“당시 조계사 경내 건물에 서울불교청년회가 있었어요. 거기서 기초교리 강좌를 들으면서 비로소 부처님 법을 알게 됐어요. 한동안 열심히 청년회 활동을 했는데 직장 때문에 뜸해졌죠. 잠깐씩 법회에 나왔다가 열심히 기도하는 보살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무슨 복으로 저렇게 기도하며 살 수 있을까?’ 하고요.”
‘나는 누구인가?’라는 고민 끝에 결단 내려
전공은 미술이지만 안 지회장은 부전공인 유아교육을 살려 유치원을 운영했다. 나름대로 성공도 거뒀고 보람도 느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갈증이 있었다.
‘나는 누구일까? 무엇을 하며 사는 거지?’
그리고 마침내 10년 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시작했던 25년간의 사업 ‘돈 버는 일’을 접고 ‘나’를 찾기로 결심했다. 주변에서는 잘 나가는 유치원을 그만두는 그이를 의아해 하며 모두 말렸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대로 ‘완벽하게’ 불교에 몰두하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거든요. 곧바로 기본교육을 받고 기초교리, 불교대학을 마쳤어요. 지난 10년간 불교 공부만 했는데 정말 좋아요. 불화는 4년째 그리고 있고, 선화도 배우고 참선도 하고….”
현재 선림원 1학년(2기)인데 포교사 시험에도 합격해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남편까지 포섭(?)해서 기본교육(74기)과 기초교리를 마치게 했다. 그간 봉사하러 다니거나 사찰 순례 때면 팔 걷어붙이고 기사 노릇을 해준 남편의 변화가 더 없이 고맙다.
남편은 ‘우리동네 조계사’가 처음에 닻을 올릴 때 “비록 늦긴 했지만 참 좋은 일!”이라며 진심으로 반겼고, 지난해 12월 아내가 2대 구로구 지회장을 맡을 때도 “하려면 제일 잘해야지”라며 적극 밀어주고 격려했다.
사실 이번에 맡은 ‘구로구 지회장’은 그간 어떤 직함도 사양해온 안 지회장이 처음으로 맡은 자리다. ‘우리동네 조계사’에 대한 애정과 기대는 그만큼 크다. 구로구 지회 모임 출범 이래 단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는 열성 회원이었던 그가 2대 지회장을 맡은 것도 그 때문이다.
화합하며 마음을 열어가는 회원들
구로구 지회의 모임 장소는 구로경찰서 법당. 처음에 셋째 주 금요일에 모이다가 둘째 주 화요일, 주로 낮 시간으로 바뀌었고, 이제 조금씩 요일도 시간도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다행히 구로경찰서 법당이 넓은 편이어서 40여 명이 참석해도 넉넉하다. 회원 늘리는 게 숙제라는 그는 가끔 뭉클해질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미리 ‘오늘 모임에 못 가요’ 했다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 숨 가쁘게 나와서 ‘늦게라도 꼭 오고 싶었다’라고 하는 분도 있고, 남에게 보이기 힘든 속내를 털어놓거나 새벽에 깨워달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어요. 정말 고맙고 기쁜 일이죠. 저를 허물없이 생각한다는 뜻이잖아요.”
그럴 때 그간의 맘고생이 위로받는 느낌이라며, 자애롭게 감싸주는 노보살님들과 앞장서서 도와주는 같은 연배 회원들에게서 큰 힘을 얻는다고 한다.
안 지회장의 하루는 새벽 3시, 기도로 시작된다. 대학 입시 때부터 들인 습관인데,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렇단다. 회갑 즈음해서 그간 써온 일기를 모아 ‘40년 신행일기’로 펴내겠다는 계획도 그 욕심 가운데 하나다. 불교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그는 오늘도 부처님을 만나겠다는 ‘큰 욕심’으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