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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에 희망에 씨앗을 심는 ‘쪽방도우미봉사회’

  • 입력 2012.10.28
  • 수정 2024.11.25

인천지회장 박부득(정일화) 인터뷰

▲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정경

방 하나를 여러 개로 쪼개 만들어 대부분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을 쪽방이라고 한다. 영등포 역 근처에는 방 위쪽으로 또 방이 있고, 방 옆으로 또 다른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이런 ‘쪽방’들이 모여 있는 판자촌이 있다. 이 판자촌의 다른 이름은 ‘쪽방촌’이다. 한 평도 되지 않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기초생활수급자들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다. 하루하루 ‘먹고 사는 일’ 자체가 힘겨운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온정의 손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온정의 손길 속에 담긴 따뜻한 마음이다. 지난 10월 16일 목요일 오후, 따뜻한 마음이 담긴 온정의 손길로 쪽방촌 사람들을 어루만져온 ‘쪽방도우미봉사회’를 만나 보았다.

▲ 인천지회장 박부득(정일화)
동정이 아닌 마음으로 다가서는 나눔
‘쪽방도우미봉사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0년이니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다.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계사 지역법회 정일화 박부득 지회장은 사실 인천에 살고 있다. 인천에 살면서 어떻게 영등포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함을 참지 못해 묻자 정일화 인천지회장은 모든 것이 인연인 것 같다고 말한다.
‘쪽방도우미봉사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쪽방에 쌀과 반찬을 만들어 집집마다 전해준다. 쌀과 반찬 모두 일주일 동안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왜 일주일치만 전하는 것일까. 이 궁금증은 정일화, 박부득 지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처음에는 그저 당장 필요한 돈이나 쌀을 드리거나 식사만 제공하면 봉사가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의무적으로 마지못해 하는 마음으로 하는 봉사는 저분들도 금방 아세요. 그런 마음일수록 유난히 빨리 전해지거든요. 수많은 오해와 시행착오 끝에 저분들의 마음을 열기까지 3년이나 걸렸어요. 이제는 오히려 가족처럼 늦으면 먼저 전화를 하시는 분도 있어요.”

▲ 쪽방촌 주민이 쪽방도우미에게 보낸 편지

 

‘쪽방도우미봉사회’는 처음에 한 가구 당 3만원씩 현금을 전했다. 쪽방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나온 결론이었다. 그런데 현금을 받은 이들 대부분이 그 돈으로 술을 사 먹었다. 희망을 전하고자 시작한 일인데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정일화 지회장은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고되게 살아가는 이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현금을 전하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정일화 지회장은 어떻게 하면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쌀을 배달했다. 그런데 이들은 쌀도 다시 술로 바꾸어 먹었다.

이렇게 해서는 명목상의 봉사일 뿐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정일화 지회장은 쪽방촌을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살림살이를 확인했다. 그리고 냄비는커녕 밥그릇과 수저조차 갖추지 못한 집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정일화 지회장은 이들을 탓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진 진정한 의미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던 쪽방촌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저 봉사의 대상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이미 오래 전에 희망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돈이나 쌀로 후원을 받으면 술로 바꿔 먹으며 당장의 시름을 잊고자 했던 것이다.

쪽방촌을 다녀온 정일화 지회장은 이대로는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된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드리겠다는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천막을 치고 배식을 시작했다. 그러자 지역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막배식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대신 선택한 것이 이른바 사랑의 도시락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직접 만든 반찬과 쌀을 집집마다 직접 배달한다. 진심이 담긴 마음은 통한다고 했던가. 사랑의 도시락 배달이 계속되자 쪽방촌 사람들도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전하는 도시락 속에는 일주일 후 다시 만나자는 희망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봉사회가 다녀간 후, 쪽방촌 사람들은 이들은 전해준 쌀과 반찬을 먹으며 다음 일주일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봉사를 하면 할수록 부처님의 가피를 느끼다

가난 구제는 나라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다. 끊임없이 주고 또 주어도 여전히 부족하기만 한 상황에 지칠 수 있기 때문에 봉사란 자칫 잘못하면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마음에 상처가 될 수 있다. ‘쪽방도우미봉사회’가 쪽방촌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 동안 무엇이 가장 힘들었냐는 물음에 쪽방촌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정일화 지회장 말에는 그동안 봉사를 하면서 느낀 보람과 어려움이 모두 담겨 있다.

봉사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봉사자들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봉사자들간의 갈등이 있지는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물어보자 정일화 지회장과 봉사자들의 얼굴에 슬그머니 미소가 피어오른다. 이 미소의 정체는 무엇일까.

 

“모두 인연인 것 같아요. 이곳 봉사회 회원들 중에는 처음에는 종교가 없었지만 봉사하면서 절로 불자들이 되었고 모두 조계사 기초과정을 이수했어요. 그러다 보니 모두 한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일화 지회장은 이어서 말했다.

 

“처음에는 재정적 어려움이 정말 많았는데 정말 신기한 것은 일정한 후원자가 없는데도 쌀 걱정을 하면 어디선가 쌀이 오고 봉사자들이 빠져나가도 다른 봉사자가 나타나 메꾸어 주는 거예요. 이렇듯 여러 사람들이 도와주기에 힘은 들지만 계속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두 부처님 가피라고 생각합니다.”

 

▲ 영등포구민위안잔치날, 박부득 보살과 쪽방도우미들이 주민에게 대접할 음식을 담고 있다.

▲ 쪽방도우미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시작은 했지만 막상 일정한 후원자도 없이 봉사활동을 계속하기란 어려웠다. ‘쪽방도우미봉사회’도 쪽방촌 주민들도 모두 가난했다. 가난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간신히 봉사자들은 모였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을 하다 보니 장소가 제일 문제였다. 마침 지구대로 통합된 파출소가 있어 그곳 옥상을 빌려서 사용했다. 그러나 아무 시설도 없어 일회용 가스버너 하나로 음식을 만들다보니 봉사자들도 점차 의욕을 잃고 하나 둘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때 조계종 포교당에서 천막을 후원해주면서 여름철 햇볕과 겨울에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조용히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지리산 암자의 어떤 스님이 해마다 쌀 20kg들이 20포대와 김치 1,000포기를 보내오기도 했고 조계사에서 매달 쌀을 1가마씩을 지원받아 안정적인 봉사활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다시 초심으로, 원점으로 돌아가다
이렇게 많은 도움으로 이제 겨우 안정적인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으나 어려움은 여전하다. ‘쪽방도우미봉사회’가 현재 돕고 있는 분들은 65세 이상 독거노인과 3급이상 장애인으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거동할 수 없는 30가구.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쪽방촌에 계신 모두를 돕지 못하다 보니 지금도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쪽방도우미봉사회’ 도움을 기다리는 가구 수가 많다. 쪽방촌 사람들과 만난 시간이 길어지고 나누는 마음이 깊어질수록 모두에게 식사를 지원해주지 못하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으로 정일화 지회장의 마음은 근심이 점점 늘어간다.
게다가 현재 지리산 암자에서 보내오던 쌀은 중단되었고, 지난 1년 동안 매달 쌀을 1가마씩 지원해주었던 조계사의 지원도 끊어졌다. 2002년부터는 인터넷카페(http://cafe.daum.net/jblover)를 개설해 회원을 모집하고 후원금을 마련해 보았지만 운영비 부족으로 여전히 전기요금을 못 내거나 수도요금이 밀리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기도 한다. 이번에 서울시에 비영리단체 인가번호1439호로 등록하면서 조금은 형편이 나아졌지만 어려움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10월18일 미디어 조계사는 쪽방촌 고가다리 밑으로 봉사회 주관 제9회 영등포구민위안잔치 현장을 다시 찾았다. 음식을 만들랴 분배하랴 좌석마다 돌아다니며 부족한 게 무엇인지를 확인하랴 분주한 봉사원들이 손길이 닿는 곳마다 깊게 패인 주름, 불편한 몸을 이끌고 참석한 노인들과 장애인들이 밝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 봉사회 주관의 ‘제9회 영등포구민위안잔치 현장’

“이 사람들 정말 고맙지요. 일주일 내내 이 사람들이 오기만 기다려요.”

김효성(81세)노인의 말 속에는 ‘쪽방도우미봉사회’의 활동이 단순한 자선이 아닌, 외로운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다가서는 작은 위로이자 희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쪽방도우미봉사회’를 만나는 시간이 쪽방촌 사람들에게는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희망의 끈이 되어가는 것이다.

▲ 따듯한 식사를 대접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쪽방도우미들

식사를 마친 주민들이 가설무대에서 장기자랑이 한창이다. 노래하는 사람들, 각설이 품바공연에 흥이 나서 함께 춤추는 사람들, 좌석에서 어깨춤을 들썩이는 모습들 속에서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가 피어난다.

▲ ‘제9회 영등포구민위안잔치’ 풍물패 공연

신도사업국장 법공 스님도 축하인사를 다녀가고, 지난해부터 참여한다는 영주에서 와 경봉 스님 제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금 산스님도 “노숙자 여러분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앞으로 희망의 세상이 올 것입니다, 부처님 자비광명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축언을 전한다.
돌아오는 길에 담벼락에 쓰인 ‘영등포의 역사 한강과 함께 흐르다.’라는 시가 머릿속을 스쳐 지난다.

‘쪽방촌’이나 ‘쪽방도우미봉사회’나 모두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도움을 주실 분은 박부득 지회장(010-6217-2178)에게 연락하거나, 농협 계좌(351-0399-5251-03 쪽방도우미봉사회)를 통해 직접 후원할 수도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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