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문화

이주의 화두-까치 밥

  • 입력 2012.11.07
  • 수정 2024.11.23

배려(配慮) 

 


벌써 오래전 일이다.
내가 초등학생이던 시절, 내 고향 양수리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서로 만나는 곳으로 겨울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 강물이 얼어 버려 매서운 찬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뽀얀 물안개가 나뭇가지에서 얼어
아름다운 상고대가 피어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추운 관계로 감나무나 대추나무는
살지를 못했었는데, 할아버지께서 감나무를 구하셔서
울안에 심어 놓고, 겨울이면 가마니 덕석 옷을 입혀 주어
추위를 막아 주시곤 해, 꽤나 크게 자라 제법 감이 많이 열리곤 했었는데
가을이 오고 서리가 내리면, 그 감은 말랑말랑한 홍시가 되어
먹을 것이 많지 않던 시절, 삼촌과 나의 아주 훌륭한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우리 집 김장을 하던 어느 날, 어른들이 배추를 씻으러 개울로 나가 집을 비운 사이
나는 동네 친구들을 모두 모아 감나무에 홍시를 자랑하고 바지랑대 잠자리채로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홍시를 떨이하여 피에로처럼 입가에 붉은 분칠을 하고
거나한 파티를 하며, 어깨를 으쓱거리고 모처럼 친구들에게 거드름을 피웠다.

김장이 끝난 후, 바람이 횅하니 빠져나가는 감나무 가지 사이를 우연히 바라보시던
할머니가 “아니, 어느 놈이 까치밥도 안 남기고 감을 모조리 딴 겨?”하시며 역정을 내시어
“할머니, 까치밥이 뭐야?” 하고 물었더니, “에구, 우리 손주가 감을 다 따신 모양이구만...
그게 말이야, 이제 곧 추운 겨울이 올 터인데 한 두게 나무에다 감을 남겨 두면
까치나 새들이 얼마나 맛있게 따먹겠니, 내년에는 꼭 까치밥을 한 두개 남겨 놓도록 하렴.”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만 주렁주렁 가지에 달린 감을 바라보니 문득,
그 자그마한 까치밥의 배려(配慮)가 얼마나 뜻이 깊으신가를 헤아리게 된다.
지금도 감 농사를 짓는 고장에 가면 감나무에 감이 한 두게 남아 있는데,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우리 선조들의 아름다운 배려의 마음인 것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어려운 내 이웃들을 돌보는 마음 씀이 필요한 때.>
2012.11.7. 가을이 가는 길목에서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