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우리동네 조계사’의 지역별 지회장을 소개하기 시작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이번이 열두 번째로 지회 이름의 가나다순으로 뒤부터 해오고 있으니, 이제 한두 번만 더 하면 서른다섯 명의 지회장을 다 만나게 되는 셈이다.
고단한 시절에 휴식 같이 다가온 불교
현수화 이은미(54) 강남구 지회장이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처음 건넨 말은 “별로 한 일이 없어서 할 말이 없어요. 말재주도 없고, 지회장으로서 능력도 부족해서 창피해요.”였다. 고지식하고 순수한 성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그 말에 스르르 웃음이 나왔다.
이 지회장은 재작년과 작년에는 대웅전관리팀 총무를 맡았을 만큼 대웅전관리팀의 중요한 일꾼이다. 그 때문에 강남구 지회 일에 몰두하지 못했다며, 인터뷰 내내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조계사에 처음 온 날이 2006년 3월경이었는데, 기도 접수를 하고 대웅전 한쪽에 앉아 울면서 기도하고 있는 제게 보살님 두 분이 와서 ‘봉사 좀 하세요!’ 하면서 말을 걸었어요. 그 인연으로 대웅전 봉사를 시작했어요.”
그의 삶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였다고 한다. 기도하려고 법당에 앉으면 남들 보기 민망할 정도로 펑펑 눈물부터 쏟아졌다. 이십대 초반 철없을 때 달달한 연애 끝에 혼인한 그는 시부모를 따라 교회에 다녔으나 영 마음이 안 가고 교리도 잘 이해되지 않았단다.
“시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1998년 개종했어요. 처음 간 절이 대구 운문사 사리암이었는데,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건강도 나쁠 때여서 사실 기도보다는 휴식이었죠. 그렇게 다녀오면 한 달을 견딜 수 있었어요. 그러고는 다음 달에 가서 또 충전하고….”
초발심이니 가능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서울에서 대구공항까지 비행기로 가고, 운문사에서 버스를 내려 사리암까지는 산길을 걸어서 다녔다. 지칠 대로 지친 심신을 이끌고 먼 길을 떠돌다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시절에 부처님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하는 에너지였고, 휴식이었다.
이제는 돌아와 부처님 앞에 서다
그러다가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싶어 찾은 곳이 조계사다. 기본교육을 67기에 마치고 대웅전 봉사를 하다 보니 좋은 도반들 덕분에 어느덧 어둡고 내성적인 성격이 밝아졌다. 군인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전학을 다니느라 친구도 별로 없고 본디 까칠한 구석이 있었는데, 봉사하면서 사람들에게 멱살도 잡혀 보고 다듬어짐으로써 성숙해졌음을, 스스로 믿는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다녔던 자녀들도 몇 년 전부터 달라졌다. 특히 깐깐한 아들은 이 지회장이 절에 다니자 처음에는 “서로 종교에 대해 간섭하지 말자”라며 차갑게 선을 그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부처님 오신 날 즈음에 “엄마가 다니는 절에 한번 와보지 않을래?” 하는 그이의 권유에 흔쾌히 따라 나서더니 108배까지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자녀 둘 모두 종교란에 망설이지 않고 ‘불교’라고 적는다.
그럼에도 그이에게 자녀들은 여전히 아픔이다.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이긴 해도,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워 대학 공부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 해준 것이 굵은 못 하나 가슴에 박고 사는 듯 먹먹하다. 다행히 어머니의 평탄치 않은 삶을 지켜보면서 일찍 철이 든 자녀들이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제 몫을 해내고 있어 더욱 고맙고 든든하다.
“다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렷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풍족하지 않아도 남을 도우며 살고, 부처님을 좀더 잘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강남구 지회의 과제
“1년간 딱 두 번, 방생 때만 지회 일을 하면 된다”고 믿고 지회장을 맡은 이은미 지회장은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요즘, 적지 않게 심란하다. 그간 나름대로 한다고 하긴 했으나 기대만큼 동참 인원이 늘지 않아서다.
“역삼청소년수련관에서 창립 모임을 가진 이래 강남경찰서 경승실에서도 몇 번 모였어요. 그런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지금은 식당에서 모이는데, 회원님께 여러 가지로 많이 미안하죠. 강남구 지회에 맞는, 꼭 참석하고 싶을 만큼 좋은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좀 늘지 않았을까요? 차기 지회장이 지금보다 체계적으로 잘 이끌어 줄 거라고 믿어요.”
지회 일 말고 개인적으로 발원하는 게 있느냐는 물음에 뜻밖에 “법당 보살을 꼭 하고 싶고, 훌륭한 스님을 시봉하고 싶다”고 한다. 자식들을 분가시키고 나면 절 공양주를 할 계획이라는데, 겉은 여려 보이지만 그의 속은 여물대로 여물어 단단하기 그지없다. 남은 시간을 부처님 일에 봉사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일로 보내겠다는 그의 소박한 발원이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화꽃 한 송이 피워내는 정성으로 응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