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는 단군신화를 연원으로 우리 민족에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381년(고구려 소수림왕11년), 아도화상이 창건한 민족의 역사가 살아 있는 대표적 사찰이다. ‘전등’이란 ‘불법을 전하는 사찰’ 이란 뜻이다. 고려 시대 대몽항쟁과 격동하는 근대사의 중심에서 국운을 지켜낸 사찰이요, 당시 프랑스군을 물리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특히 조선왕조실록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 전등사가 지켜낸 ‘정족산사고본(1181책)’만이 유일하게 전책으로 남아 현재 서울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익살과 풍자 그리고 자비의 전설이 깃든 전등사의 대표적인 건물인 ‘대웅보전’은 보물 제178호로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대웅전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이 유명한데, 이 나부상은 대웅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의 애절한 불교적 사랑과 염원이 반영된 조각이다.
순례단은 1시간 동안 전등사를 둘러본 다음, 석모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보문사에 도착했다.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희정 대사가 창건한 보문사는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 하였고, 중생을 구제하는 관음보살의 원력이 광대함을 상징하는 절의 이름을 ‘보문사’라고 하였다고 한다.
빠른 기도 성취로 유명한 나한전에는 관련 설화가 있다. 어부가 바다에서 사람모양의 돌덩이 22개가 한꺼번에 그물에 걸려 버렸는데, 또 그물에 걸리자 다시한번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버린 돌은 천축국에서 보내온 귀중한 불상이니 건져서 명산에 봉안해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어부는 다음날 불상을 건져 올려 낙가산, 현재의 보문사석굴에 안치하고 단을 만들어 모셨다고 한다.
조계사 관음성지 순례단 일행은 열반하는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으로 본래 보문사에 있는 천인대(千人臺)라는 바위에 조성된 와불(臥佛)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사리탑과 오백나한상이 조성되어있는 곳에 합장했다.
▲ 보문사 와불전에서 기도하는 조계사 33 관음성지 순례단
마지막으로 보문사가 관음도량의 성지임을 상징하는 ‘마애관음좌상’이 새겨져 있는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로 향했다.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이루어지지 않는 소원이 없다고 하여 소원도 빌어 보았다. 현재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 보문사 마애관음좌상
서해의 낙조를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며 조계사 관음성지 순례단 일행은 오후 5시 조계사로 다시 회향했다. 다음 관음성지 순례는 2월 2일에 있으며, 해인사를 순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