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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미래를 위한 약속, 조계사 관음전 불사

  • 입력 2013.02.28
  • 수정 2024.11.23

▲ 조계사 관음전에 모실 관세음보살. 점토로 외형 디자인 후, 틀을 만들고 청동으로 제작된 뒤 개금한다.

 

2013년은 조계사가 태어난 지 101년이 되는 해이다. 천년 사찰이 수두룩한 우리나라에서 100년이라는 시간은 턱없이 짧은 역사일 수 있다. 하지만 시작부터 포교를 위해 서울 한 복판에서 시작된 조계사의 역사는 곧 도심포교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수도 서울이 도시의 심장인 것처럼 조계사는 ‘도심포교’를 대표하는 사찰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 만나는 사찰, 처음 만나는 불교 조계사

도심에 위치한 사찰과 포교원 중에서 조계사의 존재는 매우 특별하다. 조계사의 법당은 매일 기도를 올리러 오는 이들로 가득하지만 조계사의 마당은 신도들과 스님들뿐 아니라 호기심 어린 관광객들과 점심시간에 잠시 산책을 나온 직장인들로 복작거린다. 이들에게 조계사는 신앙생활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사찰 특유의 근엄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높은 문턱은 불교를 접하지 못했거나 접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계사는 국적과 국경을 초월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는 중이다. 불교를 모르거나 불교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포용하는 것이야말로 포교의 기본이자 핵심이기 때문이다.

신도들에게만 익숙한 오직 불자만을 위한 사찰에서 도시의 작은 쉼터이자 서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기 위해 조계사는 변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삭막한 도시를 위로하기 위해 마당을 통째로 오픈하여 진행한 국화꽃 향기 가득한 축제는 시민들의 열렬한 호응을 얻으며 두 해 만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또한 착한 가격과 더 착한 맛으로 신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승소’와 ‘가피’는 이미 명물이 된 지 오래이다. 조계사 뜰 안에 있는 카페 가피에서 판매되는 더치커피가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자 조계사의 마당도 함께 변했다.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벤치를 늘려서 누구나 편히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마당뿐 아니라 법당과 신발장과 용품점 그리고 삼오모텔이 있던 자리에 조성을 시작한 조계사 도심포교 100주년 기념관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몇 해 동안 진행된 조계사의 변화를 돕고 있는 이는 바로 박경귀 원장이다.

 

 

▲ 관음전 리모델링 총책임자 박경귀 원장


100분의 관세음보살님과 과거·현재·미래 100년을 말하다.

박 원장은 도심포교 100주년을 맞은 조계사에서 관음전이 조성되는 것은 참으로 고무적이고 희유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조계사가 도심포교 100년을 이끈 중심이라면 관세음보살은 한국 불교 역사 1000년을 이끈 대중 불교의 꽃이다. 따라서 조계사에 관세음보살을 모셔오는 것은 참으로 특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박 원장을 필두로 한 조계사 관음전 조성 프로젝트는 조각가와 조경설계전문가 그리고 실내건축설계를 담당하는 이들이 팀으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다. 과거 전통 사찰의 전형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 현재와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나갈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박 원장의 적극적인 노력과 주선으로 작년 가을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은 회의를 거듭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그리고 전체적인 조화와 어울림을 고려하며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의지와 자극을 주며 더 좋은 작품을 만들고자 노력한다는 이야기에서 이미 작업 자체에서 상생과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불교의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통적인 아름다움은 충분히 살리되 오직 부처님이나 보살님이 중심이 되는 기존 전각이나 법당의 전형성에서 탈피, 관세음보살님과 그곳을 찾는 대중들이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될 조계사 관음전의 완공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아름다움을 조각하다.

조계사 관음전에 모실 관세음보살상은 서칠교 작가의 조각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박 원장은 관세음보살을 조각할 인물로 즉시 서 작가를 떠올렸다고 한다. 상투적인 불상의 모습이 아닌 자유로우면서도 그윽한 아름다움을 품은 작품을 조각해온 서 작가는 진신사리탑에 봉안된 부처님을 조성하면서 조계사의 인연을 맺었다. 서 작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긴 했어도 조각이나 불상에는 큰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그저 모든 불상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과거의 흔적 정도로만 생각했을 뿐 누군가 ‘현재’에 맞는 조각을 새로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불상을 만들고 있으니 운명과 인연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 관세음보살 제작을 맡은 서칠교 작가

 

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금박이 아닌 진흙으로 빚어진 관세음보살님을 뵈었을 때 일순 모두 말을 잃었다. 수려한 이마와 훤칠한 눈썹 그리고 단아한 입술까지 과거 천년 동안 우리 민족의 마음을 끊임없이 사로잡았던 관세음보살의 아름다운 얼굴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느낌이었다. 한 번 작업에 들어가면 홀린 듯이 열중한다는 서 작가는 현재 하루 평균 10시간, 일주일 내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작업을 하는 순간순간이 곧 기도이자 가피라고 느낀다는 서 작가는 조각을 하는 동안 몇 번이나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고 말한다.

아미타 부처님을 머리에 모시고 하품중생의 수인을 한 반가사유관음을 처음 조각했을 때 다리는 무릎에 올리지 않은 자세였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자세가 완성되자 관세음보살이 지닌 힘이 다리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다시 다리를 무릎 위로 올린 자세로 바꾸자 어긋난 열쇠가 철컥 하고 들어맞는 느낌에 짜릿한 환희심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고 한다. 흘러내리는 듯한 관세음보살의 옷자락을 조각하는 것을 비롯하여 이런 유사한 일들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계속되었다. 서 작가는 절반 정도가 완성된 관세음보살님의 얼굴을 볼 때마다 불가사의한 힘과 가피를 느낀다고 한다.

100분의 관세음보살님과 100년의 미래를 함께하다.

반가사유 자세를 한 관세음보살은 대중들이 섰을 때 함께 눈을 마주칠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이다. 중생과 눈높이를 맞춘 관세음보살의 뒤쪽으로는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위치마다 33관음이 놓여 총 99개의 관음상이 본존을 감싸며 결국 100분의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지게 된다. 그 아래로 천수천안을 의미하는 손 모양의 인등 천 개가 놓여진다. 관세음보살 본존을 중심으로 천 년의 역사를 말해주듯 놓인 천 개의 손바닥 위에 99분의 관세음보살이 우리와 눈을 맞추며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바라볼 조계사 관음전을 생각하니 환희심이 솟구친다. 조계사 관음전은 과거 100년과 미래 100년 그 가운데 우리가 관세음보살님과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곳이 될 것이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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