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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自修成佳)

  • 입력 2013.04.27
  • 수정 2024.11.19

스스로를 닦아 아름다움을 이루다

▲ 이백련화 보살

 

바탕천에 여러 가지의 색실로 그림, 글자, 무늬 등을 수놓는 것을 ‘자수’라고 한다. 한 땀 한 땀 그야말로 지극한 정성이 있어야만 가능한 자수는 아무 것도 없던 바탕천을 바늘로 수십 수백 수천 수만 번 찔러야만 한다. 바탕천이 바늘에 많이 찔리면 찔릴수록 자수는 아름답게 완성된다. 끊임없이 떠오르는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비우기 위해 자신을 닦고 또 닦아가는 보살행은 자수를 놓는 과정과 닮아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완성된 자수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불보살의 모습을 닮은 것처럼 한 평생 오로지 부처님의 말씀을 섬기며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수놓아 오신 노보살님의 주름진 얼굴 역시 불보살님을 닮아있었다.

 

노보살님의 주름진 얼굴 속에서 불보살님을 만나다

거동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한 노보살이 조계사 대웅전을 찾았다. 건강이 나빠지고 수술을 하면서 오랫동안 바깥출입을 할 수 없었던 노보살은 몸이 회복되어 거동을 할 수 있게 되자 곧바로 부처님을 찾은 것이다. 오랜만에 뵙는 부처님의 얼굴을 마주하며 노보살은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가만히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가져온 경전을 꺼냈다. 노보살이 가져온 경전은 모두 네 권이었다.

한글금강경, 한문금강경, 아미타경, 관세음보살보문품.

법당에서 늘 찾을 수 있고 보살들이 가장 많이 독송하는 특별할 것도 없는 경전들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노보살이 가져온 경전은 종이가 아닌 헝겊이었다는 점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경전을 펼쳤을 때 우연히 그것을 보게 된 스님은 가슴이 뭉클하여 한참 동안이나 눈을 떼지 못했다. 금실과 은실로 부처님과 불보살님의 모습을 수놓고 부처님의 말씀도 자수로 새긴 노보살의 경전은 갸륵한 정성을 뛰어넘은 작품이자 예술이었다.

스님이 보고 계신 것을 모르는 노보살은 독송을 마치고는 경전을 부처님 앞에 올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한 조각의 미련도 없었다. 스님은 법당을 나서는 노보살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가 가져온 경전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노보살은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수놓는 것이기에 자주 사용하는 오른 손이 아닌 왼손으로 수를 놓았다는 노보살의 이야기에 스님은 가슴이 먹먹했다. 부처님께 이런 지극한 정성을 올리는 보살이 아직도 있었구나 싶은 마음에 감동하여 노보살의 주름진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이백련화 보살의 자수틀

 

빈 마음으로 절을 찾는 노보살님과 조계사의 인연

노보살님이 조계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그녀의 나이 서른 무렵이었다. 지금 노보살님의 나이가 여든을 바라보고 계시니 오십 년 가까이 조계사에 다니셨을 뿐 다른 사찰에는 가본 적도 없다고 한다. 그녀가 조계사를 찾은 이유는 하나, 법문을 들을 수 있어서였다. 부처님의 말씀을 전해주시는 스님들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는 보살님은 거동이 불편한 지금도 불교 TV로 법문을 듣고, 사경과 독송을 하며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고 한다.

그토록 오랜 시간 조계사를 다녔음에도 보살님은 어느 단체에도 소속되지 않았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절은 부처님을 뵙고 스님의 법문을 듣고 공부를 하는 곳이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는 노보살님은 보살들끼리 모여 다니거나 잘 살게 해달라며 기도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으로 절에 가시느냐고 묻자 노보살님은 한 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절에 갈 때는 빈 마음으로 가지. 관세음보살님께 뭔가 해달라고 바란 적은 한 번도 없어.”

 

가족기도, 자식기도를 위해 법당을 떠나지 못하는 많은 보살님들의 기도가 어쩌면 훨씬 간절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남 3녀를 둔 어머니이면서 자식 기도, 손자와 손녀들 기도 한 번 드린 적이 없다는 노보살님의 빈 마음은 허공을 안을 만큼 크게 느껴졌다.

 

▲ 이백련화 보살

 

자식에게도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 진정한 보살의 마음

그렇다면 보살님의 바람은 무엇일까. 조계사를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노보살님의 바람은 몸만 성하게 해주시고 자식 신세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이 바람을 들어주신 감사함으로 힘들어도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공양을 올리기 위해 시작한 것이 자수였다고 한다. 음식을 만지는 등 사용하는 일이 잦은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수놓는 것을 연습해서 경전 한 권을 완성하기까지 꼬박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경전이 하나씩 완성되어 갈 때쯤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세상을 떠난 남편을 보내며 정성을 다해 완성한 경전을 같이 태웠다. 그 후 2년 동안 1남 3녀는 연달아 모두 짝을 만나 결혼을 했다. 자신의 소임을 다 한 보살님은 다시 홀로 수를 놓기 시작했다.

 

▲ 자수에 열중하고 있는 이백련화 보살

 

몸을 돌보지 않고 수를 놓는 바람에 한 때는 눈이 멀기도 했다. 천천히 시력을 되찾았을 때 보살님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느꼈다. 그 후로도 큰 수술을 해야 할 위기가 몇 차례나 왔다. 하지만 그때마다 불보살님의 보호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가 늘 함께했다. 그래서 노보살님은 생각했다. 나를 살게 해주시는 이유가 있으리라. 그리고 남은 삶은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신심과 환희심을 낼 수 있도록 자신의 한 몸을 다 바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렇게 하여 다시 경전을 수놓아 완성하여 조계사에 공양을 올리고자 왔을 때 스님을 뵙게 된 것이었다.

서원을 세운 후 신심이 깊어질수록 노보살님은 수많은 영험을 직접 경험하였다. 지금도 귀에서는 쉴 새 없이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소리가 들리고, 불보살님이 항상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 듣고 느낀다고 했다. 또한 몸이 편한 것은 수행이 아니다 싶어 참선을 멀리했으나 좌골골절로 다리가 불편해진 후 이제 참선을 해도 된다는 관세음보살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이제는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참선을 한다고 했다.

이토록 불보살님의 가피를 충만하게 느끼면서도 노보살님은 자식들에게 단 한 번도 절에 다니라고 하거나 부처님을 믿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눈이 멀 정도로 정성을 다해 경전을 수놓는 것과 달리 자식들이나 주변에 신앙을 강요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여 묻자 이번에도 단박에 대답하였다.

 

“교회에 가고 싶으면 가야지. 하느님도 다 이유가 있어서 계신 거니까.”

 

기독교를 믿은 집안으로 자식을 결혼시킨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걱정이 없다는 노보살님의 얼굴은 한 치의 흔들림이 없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의 마음이 아닐까.

 

마지막 서원,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완전한 보시를 하는 것

오십년 가까이 새벽이면 일어나서 독송을 하고 일요일이면 첫차를 타고 조계사에 오셨다는 보살님은 평생 자식의 성공이나 부귀영화를 위한 기도를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문을 듣기 위해 법당을 찾았다. 보살님에게 법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는 것과도 같았기에 일주일에 한 번 조계사에 와서도 법문을 듣고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 남은 시간은 모두 부처님 공부와 경전을 수놓는 것에 전념하였다. 이렇게 평생 동안 경전을 읽고 쓰고 법문을 들으면서 배운 부처님의 말씀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기에 보살님은 수를 놓다가 눈이 멀었을 때에도 감사하는 마음뿐이었다고 한다.

죽어서 아미타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미타경을 수놓았다는 보살님이 바라는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이런 궁금증을 알아차린 것처럼 노보살님은 스스로 생각해놓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이야기하였다.

 

“나는 절에서 가장 좋은 장례가 얼마인지 미리 물어보았지. 그리고 자식들에게 말해놓았어. 내가 죽으면 그 돈은 절에 모두 보시하고 가장 싼 관, 가장 싼 옷을 입혀서 태워달라고. 어차피 죽으면 사라질 몸에 그 돈을 쓰느니 절에다 보시하고 싶어. 산소 같은 것도 필요 없어. 그저 태워서 산에 뿌렸으면 좋겠어. 개미나 벌레 같은 미물들에겐 늙은이의 뼛가루라도 쓸모가 있을 테니까.”

 

궁금했던 마음이 무색하고 구차하게 느껴질 만큼 노보살님은 이미 무주상보시, 머무르지 않고 베푸는 마음의 궁극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할 남은 일은 불보살들의 마음에 신심과 환희심을 일으키는 것이라며 수많은 세월 자신을 갈고 닦아온 노보살님은 자신의 삶을 금빛 오색찬란한 자수로 완성했다. 수천 수 만번 바늘이 천을 찔러야만 완성되는 자수처럼 보살님의 작품은 우리의 무뎌진 마음속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신심을 따끔하게 깨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세계인지를 보여준다.

 

 

* 이백련화 보살의 간절한 불심이 담긴 자수 작품들을 자수전시회 ‘자수성가(自修成佳)’에서 볼 수 있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1층 나무갤러리에서 5월 13일부터 19일까지 진행된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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