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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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의 연못에서 도란도란 핀 연꽃처럼
우리 사이 도반 사이(김덕희·김선희·김정희 세자매)
▲ 인도성지순례에서 조계사 주지 도문 스님과 함께한 (왼쪽부터) 김선희, 김정희, 김덕희 세자매
지난 2월 19일부터 3월 4일, 조계사 불자 84명이 ‘붓다의 길, 주지스님과 함께 갑니다’라는 성지 순례 프로그램에 동참하여 주지 도문 스님과 함께 13박 14일간 인도를 다녀왔다. 석가모니 부처님 탄생지인 네팔 룸비니에서부터 깨달음을 이룬 인도의 부다가야, 첫 법륜을 굴리신 사르나트, 그리고 열반에 드신 쿠시나가르 등 8대 성지를 돌아보면서 동참 순례자들은 새삼 부처님이 걸은 길의 위대함과 조계사 도반의 인연이 얼마나 큰 가피인지를 깨달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순수한 눈물을 쏟았고, 그래서 벅차게 행복했다.
회갑을 맞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녀, 자녀들에게서 회갑 축하로 이 순례를 선물로 받은 부부, 몸이 아픈 여동생의 쾌유를 빌며 동생과 동행한 두 언니 등, 순례단 가족의 따뜻한 사연이 알려지면서 순례길은 더욱 엄숙하고 훈훈했다. 이번 호는 그 순례자들 가운데 김덕희(연지월, 59), 김선희(도안심, 57), 김정희(자비행, 55) 세 자매에 관한 이야기다.
어머니와 언니가 잘 닦아 놓은 길 따라만 갈 뿐
“저희 세 자매가 이번 성지순례를 함께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언니(연지월) 덕분이에요. 언니는 몇 년 전에 한 번 다녀왔지만 아픈 셋째(자비행)를 위해 이번 순례를 결심했고, 여행 경비도 많이 도와줬어요.”
힘들거나 속상할 때 언니한테 상의하면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는 둘째 도안심 보살은 자신과 여동생을 ‘언니 따라쟁이’라고 털어놓는다. 경북 의성에서 살던 어린 시절, 친정어머니는 절에 갈 날이 되면 전날부터 목욕재계로 마음을 정결히 하고, 아버지 월급봉투에서 따로 챙겨 놓은 빳빳한 새 돈을 들고 절로 향하셨다. 90이 넘은 지금도 초하루마다 아들의 부축을 받고 기도 다니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맏딸에게 이어졌고, 동생들도 어머니와 언니의 불심을 본받아 독실한 불자가 되었다.
▲ 마하보디 대탑에서 첫째 김덕희(연지월) 보살의 뒤를 따라 탑돌이하는 동생들
큰딸 대입 발원기도를 계기로 조계사와 인연을 맺은 큰언니 연지월 보살은 기본교육과정(29기)을 마치고 경전반, 불교대학(45학번)에 진학했다. 그리고 사무처에서 2년간 봉사한 뒤 신행상담실 팀장을 거쳐 현재 10여 년째 신행상담실에서 봉사하고 있다.
동생 도안심 보살을 조계사로 이끈 사람은 역시 언니 연지월 보살이다. 고향인 의성에서 사는 셋째 자비행 보살도 일 년에 네 차례, 치료를 위해 서울 병원에 올 때면 조계사 참배를 빼놓지 않는 준 조계사 불자다.
둘째 도안심 보살은 언니가 등록해준 기본교육과정(41기)을 마치고 스스로 불교대학에 들어갔다. 그간 기도만 하면서 알던 불교에 비해 전혀 새로운 불교를 만난 기분이었다.
“기본교육 3개월 간 얼마나 환희심이 났는지 몰라요.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는 기분으로 하루도 안 빠지고 다녔어요. 몸이 약해서 그때까지 집에만 있었는데, 건강도 점점 좋아졌어요.”
당연히 도안심 가족들이 절에 가는 걸 가장 크게 반겼다.
“처음에는 언니 친동생임을 안 밝혔어요. 언니한테 누가 될까 봐서요. 나중에 도반들이 알고는 엄청 부러워하더군요. 친자매가 같이 다니는 모습이 보기 좋대요.”
▲ 김선희 보살(왼쪽)과 김덕희 보살이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역시 언니처럼 재무부장 등의 소임을 맡아 사무처에서 4년간 봉사했고, 은평구 지역모임 총무를 거쳐 올해 은평구 지역모임 대표와 교육지원팀 봉사를 맡고 있다. 따라했다고 보기에는 누구보다 열정 넘치고 활동적이며 신심 또한 언니 못지않다.
성지순례 도중 맞이한 생일
이번 성지순례의 감회가 누구보다 각별했다는 셋째 자비행 김정희 보살은 의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집 근처 운영사(고운사 말사)가 원찰이며, 일주일에 거의 한 번씩은 법회와 모임에 참석하면서 언니들 버금가는 신행을 하고 있다.
▲ 셋째 김정희(자비행) 보살
“부다가야 대탑에서 육법공양의식을 할 때, 주지스님의 배려로 직접 공양물을 올릴 수 있어서 정말 꿈만 같았다”는 자비행 보살은 이번 순례를 평생 잊지 못할 가피라고 회상한다. “순례를 다녀오더니 얼굴빛이 밝아졌다”는 이웃의 덕담이 미덥게 느껴지는 것도 마음이 단단해진 덕분이 아닌가 싶단다.
건강을 비롯해서 모든 걸 부처님이 알아서 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자신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는다는 그는 두 언니를 생각하면 늘 고맙고, 금생만이 아니라 전생부터 이어온 인연 같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다음 생에도 언니들과 자매로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아래로 남동생 둘이 있는데, 저희 세 자매는 어릴 때부터 거의 싸운 기억이 없어요. 큰언니가 잘 이끌어주고 서로 아껴주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순례길에서 느끼는 감동이 모든 순례자들에게 각별하겠지만 세 자매의 감회는 남다르다.
“인도 순례를 다녀오면 동생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마음이 치유되었다고 할까요? 부다가야 대탑에서 육법공양을 올리면서 동생이 느꼈을 감동은 짐작조차 못할 정도일 겁니다. 일찍 사별한 남편이 생각났는지 열반당에서는 펑펑 눈물을 쏟았어요. 순연한 마음으로 흘린 눈물들이 마음의 병을 정화했을 거라고 믿어요.”
이런 막내뿐 아니라, 첫째 연지월 보살과 둘째 도안심 보살은 순례 중에 생일을 맞아 주지스님과 전 순례단의 아낌없는 축하를 받았다. 도반들은 두 자매에게 “평소 봉사를 열심히 하더니 정말 큰 가피를 입었다.”라며 몹시 부러워했다.
“기이하게 저희 세 자매 생일이 모두 사찰의 전통 기도일과 같은 날이에요. 저는 음력 초하루, 도안심은 관음재일, 자비행은 지장재일이죠. 그렇지만 부처님 성지에서 생일을 맞게 될 줄은 몰랐어요. 주지스님의 축원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웃음)
그러면서 “저희들이 전생에도 부처님과 인연이 있었나 봐요.”라고 입을 모은다.
▲ 수잣타 장자 집터에서 막내 김정희 보살의 뒤를 두 자매가 웃으며 따라가고 있다
일주일에 하루 봉사, 세 자매의 원칙
매일 새벽, 예불시간이면 자동으로 불교텔레비전이 켜지고 그에 맞춰 새벽예불을 올린다는 연지월 보살. 사시와 저녁 예불, 금강경 독송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빠뜨리지 않는단다. 홀로 집에 있는 저녁시간에는 방이며 마루, 부엌에까지 예불 방송을 틀어 놓아 온 집안을 도량으로 만든다.
추운 겨울에 마루에서 새벽예불을 올리는 아내가 안쓰러워 거사는 “추운데 방에서 하라”고 권할 만큼 연지월 보살의 신행은 가족에게도 익숙한 일상이다. ‘연지월’은 기본교육을 마치고 받은 법명으로 ‘연꽃 핀 연못에 뜬 달’이라는, 모두 부러워하는 뜻 깊고 예쁜 이름이다.
▲ 첫째 김덕희(연지월) 보살
“지난 99년 친정아버님이 69세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바로 전날 봉정암 성지순례를 하면서 통화도 했는데 바로 다음날 떠나신 거예요. 당뇨와 고혈압을 앓으셨지만,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무상함에 우울증에 걸렸어요. 불교 공부와 봉사로 이겨내 불심이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죠. 그래서 봉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가피라고 생각했어요. 봉사할 여건을 갖춘 것이 복이니까요.”
둘째 도안심 보살의 봉사에 대한 마음은 이렇게 다져졌다. 물론 언니의 영향이 크다. 봉사를 먼저 시작한 것도 언니였고 동생들을 이끈 것도 언니였다. 그래서 세 자매는 ‘일주일에 하루는 꼭 봉사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그것을 지키고 있다. 몸이 아픈 셋째도 ‘모든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기도만으로라도 언니들과의 이 암묵적 약속에 함께한다.
자매들에게 봉사는 마음공부이기도 하다. 도안심 보살이 사무처에서 봉사할 때 가장 좋아한 사람이 거사였다. 아내 건강이 좋아진 것은 물론, 마음 쓰는 게 넓어지는 걸 가장 가까이에서 느꼈기 때문이다. 연년생인 큰딸과 둘째딸이 큰딸의 재수로 같은 해에 수능을 봤는데, 작은딸만 합격했다. 도안심 보살은 드러내놓고 둘째딸을 축하해 주지 못했다. 당연한 엄마의 마음이었다. 혼인도 작은딸이 먼저 하게 되어 편치 않았으나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봉사를 하면서 닦이고 씻겨 나가 모든 게 편안해지고 어느새 마음 비우는 법을 깨우치게 되었다.
▲ 둘째 김선희(도안심) 보살
세 자매는 닮은 점이 참 많다. 불법의 연못에 함께 핀 연꽃처럼.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의 결혼생활이 조금은 권태로울 법도 한데, 남편 이야기를 할 때면 자매들의 얼굴에 번지는 웃음이 화사하고 아련하다. ‘스님처럼 말씀하신다’거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등의 표현에서 그 마음이 짐작된다. 남편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도 언니를 따라하는 거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형부는 적극적이고 판단이 정확하며 지혜로운 반면, 제 남편은 소극적이지만 정신세계가 높고 가족에게는 누구보다 자상하고 친절하다.”라는 자랑이 돌아왔다.
봉사뿐 아니라 삶에 대한 자세도 마찬가지다. 하루하루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게 자매들의 인생관이다. 법당이나 일주문을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진다는 세 자매 도반. 지금처럼 신행생활을 하고 봉사도 하면서 다음 생에도 부처님 법을 따르는 자매로 태어나고 싶다는 그들의 우애가 참으로 따뜻하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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