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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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밖에 줄 게 없어 온 마음을 다 주다
미디어홍보팀 김종필·구민서 부부와 선재법등 김수현 어린이
▲ 미디어홍보팀 김종필·구민서 부부와 선재법등 김수현 어린이
평범한 도심 가정의 휴일 아침은 나른하고 느긋하다. 출근이나 등교에서 해방되어 늦잠을 즐기면서 아침밥은 건너뛰고 점심 겸 저녁밥도 외식으로 때우기도 한다. 특히 부부가 다 직장에 다니는 맞벌이 가정의 경우, 평일 아침이 분주한 만큼 휴일 아침의 나른함은 무척이나 달콤하다.
맞벌이 부부 김종필(41세, 법명 각덕) 거사와 부인 구민서(41세, 법명 진여성) 보살이 딸 수현이(12세, 일산은행초등학교 5학년)와 함께 사는 일산 신도시 한 아파트의 일요일. 그런데 이 가족의 일요일 아침 풍경은 평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빠 각덕 거사는 가끔 늑장을 부리기도 하는 외동딸 수현이를 챙기고, 엄마 진여성 보살은 아침밥을 차리랴 외출 준비를 하랴 출근하는 날 버금가게 분주하다. 일요일이면 세 식구가 꼭 함께 가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아침 열 시에 시작되는 조계사 어린이법회에 수현이를 데려가는 일이 이들 부부가 일요일마다 하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다지 많이 밀리지 않지만 일산 집에서 목적지인 조계사까지의 거리는 녹녹치 않다.
딸 수현이를 위한 선택, 조계사
“재밌는 놀이도 하고 친한 친구들도 만날 수 있어서 어린이법회가 좋기는 하지만 가끔 안 가고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아빠가 허락을 거의 안 해줘요. 다른 부탁은 다 들어주는데 법회에 빠지는 건 진짜 안 좋아하세요.”
▲ 김종필·구민서 부부의 외동딸 수현이
외동딸 수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수현이가 갖고 싶다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줄 것 같은 ‘딸 바보’ 각덕 거사지만 일요법회에 빠지는 일만은 타협의 여지가 아주 적단다. 그건 부부가 딸 수현이를 사랑하는 방법이면서 한편으론 그들의 교육관이기도 하다.
“조계사를 다니게 된 건 여섯 살이던 수현이를 어린이법회에 보내고 싶어서였어요. 공부보다 자비스런 인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어린이법회를 찾았죠. 법회 친구들과 함께 많은 걸 몸으로 겪고 느끼면서,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자랐으면 하는 게 저희 부부의 바람이에요.”
그 생각은 적중했다.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던 수현이가 5학년 된 올해부터 발표도 잘하고 쾌활해져서 친구들이 많아졌다. 책을 한번 잡으면 밤새워 읽을 만큼 적극적이 되어서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 조계사 어린이법회에서 활동하는 수현이
이 가족은 매주 일요일을 조계사에서 보낸다. 딸 수현이가 어린이법회에 참석하고 점심공양까지 마치는 동안, 아빠 각덕 거사와 엄마 진여성 보살은 다른 부모들과 함께 공양간에서 설거지를 하고 청소도 돕는다. 그렇게 어린이법회 부모 모임인 어린이청소년 지원팀으로 활동한 지 어느덧 7년째, 돌이켜보니 나름 자신들도 공부가 깊어진 시간이었다고 부부가 입을 모아 말한다.
“불교 공부를 하려면 바닥 청소부터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니까요(웃음). 그 때문에 기본교육(79기)을 작년에야 받았는데, 마치 복습하는 기분이었어요. 청소와 설거지로 다진 신심을 다시 차곡차곡 되짚어 보는 기분 말이에요.”
“줄 게 없으니 온 마음을 다 준다”
2001년에 혼인을 한 이 부부는 아직도 상대방을 보면 그저 ‘애틋’해서 13년째 연애하는 느낌으로 산단다. 각자 고향인 진안(각덕)과 예산(진여성)을 떠나 자리잡은 부천에서 운명처럼 회사 동료로 만나 6년간 연애했다. 사귄 지 5년 만에 겨우 처가의 허락을 받았는데, 틈틈이 예산까지 내려가 농사를 돕는 등 정성을 다한 덕분이었다. 장인이 암 수술을 받게 되자 휴가까지 내서 간병하는 그를 다른 환자들은 아들로 오해했을 만큼, 그의 마음은 진실했다.
▲ 김종필(각덕) 거사
“아내와 딸은 전생에 제 은인이었을 거예요. 딸은 우리를 부모로 선택해서 찾아왔으니 얼마나 고마운 인연이에요.”
게다가 종교를 핑계로 형 넷 중 어느 누구도 모시지 않는 아버지 제사를 막내며느리인 아내가 자청해서 모시고 있으니, 그 고마움을 어찌 말로 하겠는가. 늘 미안하고 고마운데 “줄 게 없으니 마음을 다 준다”는 각덕 거사. 딸 바보인 그에게 아내 바보라는 별명을 하나 더 붙여 줘야 할 것 같다.
이 가족의 가장 큰 특징은 셋이 늘 같이 다닌다는 것이다. 특히 부부가 어찌나 꼭 붙어 다니는지 주변에서 “재혼이냐?”고 놀릴 정도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동창 모임을 아예 부부 동반으로 바꾸어 놓은 것도 이 부부다. 이런 부부애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저보다 일찍 퇴근해서는 (남편이) 저녁 준비를 다 해놓고 기다리고, 아침에 제가 출근 준비로 바쁘면 설거지를 싹 해요. 그렇게 배려해주는 마음이 다 보이는데 어떻게 고맙지 않겠어요. 남편의 모든 게 다 좋고 사랑스러워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에서조차 흠뻑 묻어나는 사랑을 어떻게 감출 수 있으랴. 사랑은 나눌수록 점점 더 커진다는 이치를 이들 가족에게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 구민서(진여성) 보살
관조함으로써 더 깊어지는 삶
이들 부부는 고양시 지역 모임에서 각각 총무(진여성)와 재무(각덕)로 2년간 함께 일했다. 파주와 일산, 덕양, 세 군데로 나뉜 지금도 웬만하면 세 곳 모두 참석하려고 노력한다. 고양시 지역 모임의 끈으로 조계사와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마냥 절을 좋아했던 진여성 보살과 달리 각덕 거사는 이십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불교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조금 막연했던 거사의 그 관심은 고향인 예천 향림사에서 유치부와 중·고등부를 거쳐 법회보 기자까지 지낸 진여성 보살을 만나면서 한 걸음씩 구체화되었다.
혼인해서 수현이를 낳고는 아이의 잦은 경기로 절망의 나락에 떨어져 본 적도 있고, 전셋값을 떼여 길거리에 나앉을 뻔하기도 했지만 그런 일을 겪음으로써 오히려 부부 사이의 믿음은 더 단단해졌다. 부부는 어떻게 해야 딸을 남들에게 도움을 주는 자비로운 사람으로 키울까를 고민하다가 서둘러 어린이법회를 찾아나섰다. 각덕 거사는 자신이 청소년 시절에 ‘도움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던 기억도 새삼 떠올랐다고 한다.
전생의 인연 덕분인지 다행스럽게 수현이는 어린이법회에 잘 적응했고, 시간이 갈수록 생각도 한 뼘씩 부쩍부쩍 자라고 성격도 밝아져 부부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어릴 때 경기를 자주 일으켜 걱정을 시키더니 건강도 좋아져 이 모든 게 부처님 가피처럼 느껴진단다.
▲ 조계사 천연염색축제 ‘물듦’에 동참한 김종필 거사 가족
각덕 거사는 직장에서 ‘수도사’로 불린다. 병원이라는 직장의 특성상 민원이 많은데, 턱없는 요구를 하면서 소란을 피우는 고객들을 대할 때마저도 다른 동료들처럼 흥분하거나 화내지 않고 느긋하다고 해서 얻은 별명이다. 천성이 욱하는 성미인지라 자신도 이런 변화가 낯설 때가 있지만 화가 난 동료들에게 한 걸음 떨어져서 보라고, 어려운 상황도 즐길 줄 알면 잘 풀린다고 격려한다.
환자 보호자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면서 스트레스를 쌓아두지 않는 것도 부처님 말씀에서 얻은 지혜임을 스스로 잘 안다는 각덕 거사. ‘하심下心’을 귀로만 듣고 행동하지 못했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면 스스로 흐뭇해진단다. 그런 그에게 “많이 달라졌다”는 진여성 보살의 칭찬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그곳이 극락이다.
부처님과의 인연이 얼마나 깊은지, 여고시절 어머니 따라 처음 가본 절에 반해서 겨울방학 한 달간을 절에서 지냈다는 진여성 보살. 좋은 인연은 반드시 또다른 좋은 인연을 만든다는 걸 믿는 그에게 이승에서 만난 가족의 인연은 뭉클하도록 따사롭고 귀하다.
바쁜 직장생활에도 미디어홍보팀 기자로 활동하면서 늦은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 각덕 거사와 아이돌 가수를 꿈꾸며 부처님께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초등학교 5학년생 수현이, 그리고 환한 웃음으로 늘 지켜보며 그들이 지칠 때면 언제든 다가가 보듬어줄 따뜻한 보살 진여성. 가족이란 이름으로, 도반이란 이름으로 그들 앞에 펼쳐질 내일이란 시간이 무척 기대된다. 아름다운 ‘인因’과 아름다운 ‘연緣’은 곁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 조계사 미디어홍보팀에서 기자로 활동하는 김종필 거사
▲ 조계사 하안거 생명살림기도에 동참한 구민서 보살과 딸 수현이
가족이란 숭고한 이름에 상처를 남기는 세월호 사건 같은 엄청난 비극이 다시는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지금 이 시간 슬픔에 빠진 그들이 올리는 기도가 모두 이뤄지기를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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