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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법당 봉사로 마음의 키를 훌쩍 키우다

  • 입력 2014.05.30
  • 수정 2024.12.02

직장직능전법팀 박성호·김명길 부부 가족

▲ 매달 한 번은 온 가족이 군법당 봉사를 다니는 박성호 길명길 가족

 

흔히 군법당을 포교의 ‘황금어장’이라고 한다. ‘어장’이라는 비유가 좀 걸리긴 해도 그만큼 포교 효과가 크고 포교가 꼭 필요한 곳이라는 뜻이다. 군복무 시절은 청년들이 생전 처음 부모 곁을 떠나 독립적인 존재로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변화를 겪는 어려운 시기이다. 그런 만큼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 그 시기에 처음 종교를 믿게 되는 젊은이들이 많다.

이번 호에는 두 딸과 함께 불교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군 포교를 위해 4년째 봉사하고 있는 직장직능전법팀 박성호·김명길 부부 도반을 소개한다. 

 

 

“우리 집안에서 오래 다닌 절”,

다시 조계사로

멀리서부터 은은히 풍겨오는 꽃향기. 먼 거리를 날아오는 동안 진하고 자극적인 향들은 흩어져버려 본연의 순수함만 남은 깊고 향긋한 내음, 그들에게서는 그런 향기가 느껴졌다. 오랜 두 도반이 부부로 인연을 맺고 부처님 법 안에서 두 딸을 낳아 기르면서 함께해온 그 시간이 남긴 선물일 게다.

“저희 부부는 조계사청년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저도 남편도 불교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부처님 가까이에서 지냈고, 불교학생회를 거쳐서 청년회까지 이어진 거죠. 그런 과정이 행복해서 우리 두 딸도 유치원생 때부터 절에 데리고 다녔어요. 큰애는 약사사 어린이법회에서 회장도 했고, 작은애도 절을 좋아해서 지금도 저희와 함께 다녀요.”

특히 할머니 때부터 조계사 신도였던 남편 박성호(52, 한국전력 근무) 거사는 딸들과 조계사를 찾을 때마다 “우리 집안에서 오래 다닌 절”이라고 설명해주곤 했다. 현재 84세인 박 거사의 어머니는 몇 년 전까지도 고양시 행신동 집에서 조계사까지 그믐기도에 동참하러 오시곤 했다. 

혼인을 하면서 십 년 간의 공무원 생활을 접었던 김명길(46, 길상화) 보살은 4년 전, 작은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즈음에 다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두 딸이 제 앞가림을 할 만큼 컸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는 맨 먼저 한 일이 조계사 직장직능전법팀(이하 전법팀) 가입이었다. 그 이유는 전법팀의 군법당 봉사에 동참하고 싶어서였다.

“한 달에 한 번씩 군법당에서 봉사한다는 걸 알고 무척 부러웠거든요. 큰딸 선재(한서고 3)와 선영(한서고 1)에게 함께 봉사하자고 했더니 선뜻 따라줬어요. 매달 넷째 일요일마다 전법팀 봉사자들과 함께 우리 네 식구가 파주 1사단 신병교육대 법당 정각원에 봉사하러 갑니다.” 

조계사 청년회 출신의 이 도반 부부가 집 근처 절에 다닌 지 거의 20년 만에 다시 고향 같은 조계사로 돌아온 사연은 그러했다.

 


두 딸과 부부,

온 가족이 정각원 군법당 봉사

신병교육대 군법당인 정각원의 넷째 주 일요법회에는 갓 입대한 300~500명의 군인들이 동참한다. 조계사 전법팀 봉사자 20여 명이 그들에게 떡과 음료 등의 간식과 염주 나눠주는 일을 주로 하는데, 대부분의 봉사자들 나이가 지긋해서 어린 선재와 선영은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것은 몰론, 봉사자들에게 활력을 주고 있다. 군인들 사이에서 예쁜 두 여고생의 인기야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이 가족이 가끔 찾아가는 군법당이 하나 더 있다. 상계동에 있는 규모가 작은 군법당으로 셋째 일요일에 법회를 연다. 선재와 선영이의 어린이법회 지도법사였던 요경 스님이 후원하는 곳인데, 스님 요청이 있으면 네 식구가 언제든 달려가 앞장서서 봉사한다.      

박성호 거사와 김명길 보살이 군법당 봉사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청년회 활동을 통해서다. 북한산 삼천사에서 주지스님과 함께 직접 청년회를 만들고 활동할 때였다. 주지스님이 근처 군법당에 법문을 하러 가시면 청년회원들이 따라가 군인들 간식을 챙기는 일을 도왔다. 길상화 보살은 그때 처음 군법당에 가봤는데, 젊은이들에게 부처님 법을 전할 수 있는 군법당의 중요성에 눈을 뜨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부는 육군중앙법당(현 국방부법당 원광사)에서 혼례식을 올렸다. 박성호 거사 어머니가 군법당에 법요집, 불교 책 등을 많이 보시해온 깊은 인연과 그의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었던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터뷰 내내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부인과 두 딸을 지켜보던 박 거사가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딸들에 대한 아빠의 대견해 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큰애 이름은 선재동자에서 따왔는데, 글재주도 좋고 리더십도 있어요. 둘째 선영이는 댄스부 친구들과 함께 작년 군법당 송년법회에서 춤을 춰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어요. 운동을 좋아해서 체육교사가 꿈이고 학교 축구팀에서 공격수를 맡았어요. 두 아이 다 구김 없고 해맑게 자라줘서 정말 고맙죠. 오늘 보니 참 잘 컸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절에 다니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배운 것 같아 뿌듯해요. 다 제 평생의 도반이며 아내인 길상화 보살 덕분이죠.”

 

 

봉사활동이

정신적인 휴식의 시간이 되길…

고1 때부터 고향집 근처에 있는 부여 고란사에 다니기 시작한 길상화 보살은 자기표현이 정확하고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다. 어린이 포교에 관심이 많아서 한때 포교사를 꿈꾼 적도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 미뤄두었다. 대신 생애에서 가장 큰 어려운 시기를 맞은 젊은이들에게 부처님 법으로 위안을 줄 수 있는 군법당 봉사를 원력으로 삼았다.

“어지간한 원력 없이는 군 포교를 하기 쉽지 않아요. 군법당은 끊임없이 돈이 들어가야 하는 곳이거든요, 보시는 안 들어오고. 그러니 군 포교하는 스님들이나 재가자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음료수나 간식비로 매달 150~170만 원이 들어가거든요.”

길상화 보살은 남편 박 거사에 대해 “정직하고 살생하지 않는 사람”이며 “불교 책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깊은 신뢰를 보인다. 딸들에 대해서는 여느 부모 못지않게 기대가 커서 선재 사춘기 때 진로 문제로 잠깐 갈등을 한 적이 있다. 의견 충돌이 거의 없던 터라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평소처럼 대화로 풀었고, 딸에 대한 기대를 많이 내려놓았다고 한다.

“엄마는 제게 ‘주인공’으로 살라면서 공무원이 되기를 바라는데 저는 문화쪽을 전공하고 싶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문화를 전공하되 ‘불교문화콘텐츠’ 분야 일을 하기로 엄마와 합의했어요.”

올해 고3이 된 선재는 대학 입시 때문에 당분간 봉사활동에서 빠지기로 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봉사가 딸들에게 정신적인 휴식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봉사를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할지를 배우는 것도 좋지만 책상에서, 공부에서 벗어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요즘 아이들은 중학생 정도만 되면 부모들과 따로 시간을 보내고 싶어한다. 외출이나 여행도 부모와 하는 걸 불편해한다. 하지만 선재와 선영이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한다.

“저희 집은 가족이 함께 절을 찾아다니는 게 주말 일과였어요. 저희들은 가족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해요. 주변에서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들 많이 봤어요. 그래서 살아 계실 때 같이 있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고 다짐해요.”

 

 

열 번째 봉정암 참배를 앞두고

작년 여름방학 때 네 식구가 봉정암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108배를 함께 했다. 길상화 보살과 둘째딸 선영이는 등산을 좋아해서 북한산 문수사, 관악산 연주대 등을 자주 참배한다. 길상화 보살은 봉정암을 열 번 참배하기로 목표를 세웠는데 올여름이면 드디어 열 번째가 된다. 그곳에서 올리는 가장 간절한 기도는 무얼까?

“좋은 대학 합격이 최우선 목표는 아니지만 어쨌든 가고 싶은 곳에 붙어야죠. 어느 부모나 자식 입시 발원보다 더 중요한 기도가 있겠어요?” 

불교가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는 종교여서 좋다는 큰딸 선재, 깨달음의 종교라서 좋다는 둘째딸 선영. 그 딸들에게 아빠 박성호 거사가 문득 좀더 크면 호스피스 봉사를 권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큰딸 선재가 대뜸 외친다.

“어, 호스피스? 좋아요. 아빠! 저 그거 해보고 싶어요.”

둘째 선영이도 눈을 반짝이며 관심을 보인다.

“아, 좋은데! 그런데 저는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하러 가고 싶어요.”

월간 《가피》에 이 가족을 추천했다는 한 스님의 ‘추천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아, 정말 “보기 드문 가족”이다. 어디선가 기분 좋게 향긋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며 풍겨온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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