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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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세 모녀는 면벽 참선 중!
자율선원 김덕례 참선행자, 선림원 2기 봉사팀 윤주심 팀장과 윤주혜 팀원
팔순 넘은 어머니와 두 딸의 꼭 닮은 하루,
만남은 선방에서
불교 초심자였던 고1 여름방학 때 불교학생회를 따라 여름수련회를 간 적이 있다. 대학생 선배들이 진행한 7박 8일간의 수련회는 그야말로 졸음과 무더위, 그리고 모기떼와의 긴 싸움이었다. 제일 힘든 건 참선이었다. 전광석화, 몰입의 순간은 아주 잠깐일 뿐, 화두가 뭔지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고등학생들에게 벽을 마주하고 앉아 화두를 잡으라는 건 벌 서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다리가 저리고 허리는 끊어질듯 아팠던 그 기억 때문인지 그 뒤로 한동안 참선이라면 약간의 경외심과 더불어 근기가 뛰어난 사람이나 하는 수행법이라고 생각했다.
▲ 본연성 윤주혜(좌) 대각장 김덕례(가운데) 대원각 윤주심(우)
그런데 이 어렵다는 참선을 일상으로 삼고 수행하는 가족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고 밥 먹고 일터에 가듯, 일상에서 화두를 잡고 있는 이들은 유명 사진기자 출신의 대원각 윤주심(60) 참선 행자와 그의 어머니 대각장 김덕례(81) 보살, 그리고 여동생 본연성 윤주혜(48) 보살이다.
세 모녀는 참선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게다가 두 딸은 매주 수요일마다 참선 수행자 돕는 일에 봉사한다. 윤주심 보살은 30안거를 마친 구참자로서 조계사 선림원 2기 봉사팀장을 맡고 있으며, 윤주혜 보살 역시 선림원과 자원봉사센터에서 봉사하고 있다. 어머니와 여동생을 참선의 세계로 이끈 건 여섯 남매의 맏딸 윤주심 봉사팀장이다. 윤 팀장은 돌아가신 할머니를 비롯해서 부모님과 다섯 형제를 모두 불자로 만든 당사자이기도 하다.
“특히 어머니가 제일 고마워요. 일주일 중 닷새를 자율선원에 나와 참선하시는데 그 연세에도 혼자 전철을 타고 다니세요. 구로동 집에서 조계사까지요. 얼마 전에 ‘이제 참선공부 맛을 알겠구나’ 하시더군요. 가슴이 벅찼어요. 딸 노릇 제대로 했다는 뿌듯함이라고 할까요?”
26안거를 난 어머니 못지않게 막내딸 본연성 보살도 대단하긴 마찬가지다. 대학 입시를 앞둔 두 자녀의 엄마이지만 자율선원에 방부 들여 화두를 잡는 틈틈이 수요일에는 자원봉사센터 봉사(오전 10시~오후 5시)와 선림원 봉사로 밤 10시가 되어서야 조계사 일주문을 나선다. 그러다 보니 세 모녀의 만남은 주로 안심당이나 자율선원에서 이뤄진다.
‘한 가지 공부에 모든 행이 들어 있다’는 말씀에
화두를 잡다
‘주심柱心’과 ‘주혜柱慧’란 이름에서 불교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는데,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 윤혼(86) 거사 또한 독실한 불자라고 한다. 사찰 불사는 물론 대중공양을 엄청 많이 한 분으로 자식들에게 절대적인 존경을 받고 있단다. 아내 대각장 보살에게 “내가 살림할 테니 당신은 ‘이뭣고’ 하러 다니라”고 등을 떠민 사람도 윤혼 거사다. 요즘은 뜸하지만 몸이 아프면 꼭 선방을 찾으신다는 아버지를 막내딸은 서슴없이 ‘언니보다 한 단계 위의 불자’라고 자랑한다.
윤주심 팀장은 1970~1980년대 이름을 날린 사진기자 출신이다. 1976년 창간해서 최고의 잡지로 손꼽혔으나 5년 만에 군부 독재에 의해 폐간된 《뿌리깊은 나무》를 비롯해서 《주간시민》 등에 몸담고 함석헌, 이오덕, 구산 스님, 법정 스님 등의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기자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샘터》와 삼성, 금성 등 대기업 사보 프리랜서로 활동했고, 《불일회보》 편집장 등 불교계와도 인연을 맺었다. 그러던 그가 한창 일할 나이인 32세 때, 남편 심보광 씨와 함께 운영하던 사진 전문 출판사 해뜸을 접고 선방에 들어가 오직 ‘이뭣고’에만 몰두했다. 중학교 때부터 《진학》《학원》 등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할 만큼 천직이라 여겼던 사진을 그만둔 건 ‘참선’ 때문이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일할 때 송광사 취재 갔다가 불교를 알게 되었어요. 용화사 송담 스님께 참선을 배울 때는 서초동 집에서 용화사까지 매일 다녔어요. 친정 할머니가 아들을 키워주셔서 새벽 2시에 집을 나와 오후 4시에 들어갈 만큼 참선에 빠져 살 수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오로지 한 가지만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출판사도 사진도 미련 없이 다 접었어요. 지금도 아쉽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일을 다 끊은 직접적인 계기는 송담 스님의 “관심일법총섭제행觀心一法總攝諸行 직지인심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달마 관심론》) 즉, ‘오로지 마음 관하는 한 가지 공부에 모든 행이 있다. 바로 마음을 가리켜 자기 성품을 바르게 보아 성불하게 한다’는 말씀에 화들짝 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화제의 출판인’으로 동아일보 등 일간지에 기사도 실리고 아직도 사진인들 입에 오르내릴 만큼 좋은 책을 펴내 명예와 돈을 누려봤지만 참선 정진의 힘을 능가하진 못했던 것이다.
과로로 상했던 몸이 참선으로 회복된 것도 ‘바깥일’을 끊게 하는 데 자극이 되었다. 어머니 대각장 보살과 동생 본연성 보살도 참선하면서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되찾았으니, ‘부처님=의왕醫王’의 등식을 그는 지금도 확신한다. 손녀딸인 자신을 어릴 때부터 혼인한 뒤까지 줄곧 함께 살면서 돌봐주고 아들까지 키워준, 이십대에 청상이 된 할머니의 큰 은혜도 참선공부로 이끄는 것으로 갚았다. 할머니는 3~4안거를 나고 86세에 편안하게 손녀 곁을 떠나셨다.
윤 팀장은 요즘도 가끔 전화로 어머니와 여동생의 참선공부를 챙기고 독려한다. 자주 만나긴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화두를 놓지 말라는 격려이기도 하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화두를 챙긴다는 어머니를 비롯해서 자신이 권한 사람들 중에 참선공부를 놓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자신이 ‘상복(上福)’을 타고난 것 같다고, 자부심이 은근하다.
21세기 정신문화는 ‘화두뿐’,
조계종 교구본사마다 시민선방 개설되어야
조계사 자율선원에는 70~80명의 참선 수행자들이 방부를 들이고 있다. 오전 4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개방하는데, 자리가 비좁아 방부를 못 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윤주심 팀장도 나이든 분들에게 양보하고 선림원이나 집에서 화두를 잡으며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장소만 넓으면 수행 분위기 등 여러 면에서 국내 최고의 선방이죠. 좀더 확장해서 누구든 와서 참선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참선이 대중화돼서 이 시대의 정신문화가 맑고 바르게 형성될 수 있어요. 많은 미래학자들이 인정하는 점이지만, 21세기의 정신문화는 불교, 그 중에도 참선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요.”
두 자매가 봉사하는 선림원은 사회 지도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이 사회와 수행의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조계사에서 개설한 참선 수행프로그램이다. 쉽고 체계적으로 참선을 체험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과 사회를 맑고 향기롭게 만들도록 지도하고 있는데, 2년이란 조금은 긴 과정과 참선이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활성화되지 못해 안타깝다고 한다. 두 자매가 입을 모아 말한다.
“선림원 봉사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어요. 참선을 하면 아상이 높아진다는데, 참선 수행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어요. 하심下心하는 마음으로 포교하고 수행의 모범이 되는 것이 바른 참선 수행자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참선행자들과 달리 자매가 참선 수행과 봉사를 함께 하는 이유가 그것이기도 하다.
“자살률이 높아지는 추세에서 자살 예방책으로도 참선이 최고라고 믿어요. 참선은 체험이라 스스로 해봐야 해요. 단 1분만이라도 면벽 참선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헛되이 버리지 않을 거예요. 사회적 심리적 어려움을 참선을 통해 ‘마음 돌림’으로써 이겨낼 수 있어요. 게임 중독, 인터넷 중독 등 모든 중독도 그렇게 벗어날 수 있어요.”
전국의 조계종 교구본사만이라도 시민선방을 개설해서 청소년, 다문화가족, 농민 등 누구나 참선을 체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윤주심 팀장의 참선 예찬은 끝이 없다.
사방 1미터도 채 안되는 작은 공간인 좌복 위에서 우주보다 더 넓고 깊은 ‘이뭣고!’를 참구하는 세 모녀. 그런 참선행자들이 오늘도 ‘포교 1번지 수행 1번지’ 조계사의 하루를 아름답게 밝히고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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