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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이주민돕기 캠페인, 기금 전달식

  • 입력 2024.10.30
  • 수정 2024.12.03

조계사 주지 담화 원명스님과 김형규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 대표가 '이주민 노동자 돕기 공동캠페인' 기금 전달식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 조계사 주지 담화 스님과 법보신문 공익법인 일일시호일은 10월 30일 네팔 이주민 바하두르(36)씨에게 400만원을 전달했다. 전달식에는 김형규 일일시호일 대표가 대신 참석해 감사를 전했다.

 

네팔 이주민 노동자 구룽 옴 바하두르(40)씨는 절박한 목소리로 도움을 요청했다. 바하두르씨는 네팔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동생들의 가족까지 대가족을 챙기는 가장이다. 고향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려 했지만 경제상황이 여의치 못한 네팔에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지만, 딸이 학교를 다니기 시작하고 부모님 건강이 나빠지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결국 2011년 한국행을 선택했다. 네팔 이주민들의 도움으로 공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술이 없던 바하두르 씨에게 쥐어지는 월급은 불과 70만원. 가족들의 생계를 해결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잔업과 특근을 마다하지 않았다. 닥치는 데로 일 했다. 그렇게 1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동생들의 결혼 비용과 아이들의 학비를 대느라 생활은 언제나 빠듯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그의 삶은 올해 7월 폭우가 쏟아지던 밤, 찰나의 실수로 무너졌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늦은 밤 일을 마치고 공장 기숙사로 들어가던 그는 비에 젖은 바닥으로 인해 넘어졌다. 발목 통증이 심했지만, 한숨 자고나면 나아질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극심한 통증에 잠에서 깼고 일어나려 했지만 걸을 수조차 없었다. 급히 동료의 부축을 받고 인근 병원을 찾았지만, 큰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말에 덜컥 겁이 났다.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며 다친 몸보다 고향의 가족들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병원 검사 결과 아킬레스건이 파열됐고 바로 입원해야 했다. 곧장 수술을 받았고 그에게 850만원이라는 병원비가 청구됐다. 한국에서 일했던 14년간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최소한의 생활비를 제외하고 모든 돈을 보내왔던 그에게 그런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공장 동료와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고 그마저도 부족해 공장 사장에게도 손을 벌렸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공장에서 일을 하며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병원비를 내고 퇴원했지만, 아킬레스건 파열은 수술 후에도 오랜 시간 회복과 재활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재활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치료를 중단했다. 밖을 나갈수도 없어 4개월여 동안 공장기숙사에 머물렀다. 병원에서 최소 7개월은 일을 하지 못한다고 했으니 3개월만 더 참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러나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다녔던 공장의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더니 급기야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당장 다음 달 문을 닫으면 그나마 한 달에 10만원이라는 적은 비용으로 지낼 수 있던 공장 기숙사에서도 나가야 한다. 성치 않은 몸으로 빚마저 떠안은 채 지낼 곳도 없는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 하루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 

 

한국에 온 지 14년. 그는 여전히 친구들의 도움으로 공장 기숙사에서 지내고 있다. 목발없이 걷는 것조차 힘든 그에게 남은 것은 1000여만원의 빚. 충분한 재활치료를 받지못해 언제 쯤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 당장 다음 달이면 기숙사마저 나와야 한다. 서울 텍첸사 쿤상 스님이 치료비를 지원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앞으로의 재활 치료와 주거문제, 가족의 생활비 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다. 바하두르씨가 치료를 마치고 가장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불자들의 자비온정이 간절하다.

 

모금계좌 농협 301-0189-0356-51 (사)일일시호일. 070-4707-1080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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