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보름달을 보며
<보름달을 보며>
“어이! 도반.
아마 그때였을 걸세.
이른 아침 6시 전후였지.
큰 아들 놈을 데리러 그 녀석 친구 집에 가는 중에 너무 놀란 모습을 보았지.
너무 선명한 보름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있는 것이야. 해가 떠오르는 그 시간에도...
황홀함은 물론 경이스럽기까지 했지. 그 시간에 그런 달의 모습을 보기는 난생처음이었거든. 서쪽 하늘에는 내 가슴에 새겨진 모습들이 떠오르게 하면서...
요즘 금강이란 카페에서 청화 큰스님이 번역하신 정토삼부경의 사진들이 올라오거든. 그 그림들이 내게 떠오르더라는 것이지. 매일 아침 참선 시간에도 제대로 보여지질 않아 안타까웠던 것들이...
도반이 본 그것을 거의 같은 시간에 이곳 먼 곳에서도 내가 본 것과 같지 않았을까.
광대하고 누런 황금빛의 그 달은 거대한 산으로 넘어가버렸지만 장엄한 그 모습은 그 날 이후 내내 남아 있지. 깊게 가슴에 새겨지는 그 모습은 기억하려하지 않아도 언제나 내 곁에 머무르지.
도반.
그런 사람으로 기억 되어야 하고
그런 글이 쓰여져야 하네..."
멀리 미국에 있는 도반에게서 메일이 왔다.
정월 대보름 밤, 깊은 하늘 바다에 매끈하게 떠 있는 달을 보고 친구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그 날, 그 친구도 지구 반대쪽 하늘 아래 서서 달을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늘 속에 풍덩 빠져 있는 달을 보며, 내내 잊고 지냈던 달 속의 전설과 추억을 회상하며 보냈던 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리움을 담아 보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달과 별을 보며 한없이 퍼져 나갔던 꿈. 손을 뻗어 하늘에 담그면, 별도 건지고 달도 건질 것 같던 맑은 시절의 꿈.
사십이라는 가파른 능선을 넘느라 하늘 한번 쳐다볼 겨를 없이 헉헉거리며 살았던 시간들.그렇게 가뿐 숨을 몰아 쉬며 산을 오르는 사이, 따가운 태양빛에 메말라 사라져 버린 꿈. 어느 새 내 가슴 속에는 은하수가 묻어날 것 같았던 미지의 동경은 사라지고 퍼석퍼석한 현실만이 놓여 있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카랑카랑 울리던 별똥별의 기침소리는 잦아든 지 오래이다.
밤하늘의 별보다는 지상에 켜진 등불만을 보고 사는 이 나이에 낙엽 태우는 냄새, 해질녘 굴뚝에서 피어오르던 연기, 밤늦게 컹컹거리던 개 짖는 소리...에 대한 향수가 안개처럼 지상위에 내려앉는다.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 몸을 뉘일 수도 없는데, 밤하늘속에 담가두었던 옛사랑의 아련함이 달빛을 타고 쏟아져 내린다.
이 나이에, 다시 꿈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나이에 사랑을 꿈꾸고, 가슴 설레이는 기다림을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소중한 그대에게 나의 순결함과 지극한 마음을 드립니다...라고 말해도 되는 것일까. 박꽃처럼 밤에만 피더라도, 당신에게 한 송이 꽃이고 싶습니다, 라는 표현을...
나는 그대를 만나 희망을 가졌소. 그저 하루 하루 남겨진 시간만을 지우고 살았는데, 그대를 만나 행복을 알게 되었소. 나의 인생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싶소. 사랑하오.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오...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도반은 내게 황금빛같이 장엄한 글을 쓰라고 한다.
사라지더라도 가슴에 새겨질 그런 글을 쓰라 한다. 하늘을 향해 팔을 뻗더라도 아무 것도 건질 수 없다는 것을 아는 나이인데, 도반은 내게 노을 같은 글을 쓰라 한다. 가슴속에 노을빛을 적셔 달라 한다. 내 손과 가슴에는 그저 허허로운 쇠락의 기운만이 감도는데 도반은 여전히 내게 노을을 보여 달라 한다. 아니, 아침에 뜨는 달을 보여 달라 한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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