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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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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복타령

  • 입력 2004.02.09
  • 수정 2024.11.16

“동화 보살! 이 일(불광지를 만드는 일)은 나나 동화 보살이 하는 일이 아니예요.”

“네!”

“….”

그 날도 편집 기획서를 들고 큰스님 방에 들어갔습니다. 삼배를 올리고 스님께 그 달의 편집 기획서를 올리자 스님은 대뜸 한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심전심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내’ 능력으로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은 당연히 이루어져야할 부처님 일이기에 저절로 되어지는 일이고, 굳이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스님을 뵈면서 ‘어찌 저리도 환하고 투명하실까’하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신선도에 나오는 신선처럼 잘 생기신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말씀 또한 그러하셨습니다. 꼭 필요한 말씀이라면 폭포수가 떨어지듯 콸콸콸 쏟아내시지만 불필요한 말씀이라고는 일체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법한 스님의 말씀은 하나에서 열까지 그대로 법음으로 들어왔습니다. 스님의 말씀에는 늘 추호의 의심도 일지 않았습니다.

 

음력으로 1월 12일은 스님께서 열반하신 지 꼭 5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불광에서 일한 지도 벌써 17년째가 되는군요.

그런데 200종에 가까운 불광출판부의 단행본들을 만들고 매월 불광지를 만들면서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책을 만들다보면 순간순간 선택하고 결정해야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단행본도 그러하지만 매월 만들어내는 월간지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매월 무엇을 어떻게 담아내야할 지 난감할 때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물론 혼자하는 일은 아니지만 매월 주제를 정하고 필자를 모시고 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들입니다. 

‘이번에는 이런 주제로 이렇게 해보자’고 막상 생각을 했지만 과연 그것을 의도대로 써줄 필자를 찾는 일도 보통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묘하게도 전화가 오거나 메일, 혹은 지면을 통해서, 그리고 일부러 찾은 것도 아닌데 그 사람을 꼭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에야 이렇게 공개하건대 그 동안 만들어온 불광출판부의 책들 역시 그렇게 인연지어진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일부러 제가 머리를 짜내어 한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되어지고 되어있는 일들을 그저 종이 위에 활자로 만들어 보기좋게 담아내어 전한 것 뿐이지요. 

 

저를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 한 자리에 껌딱지처럼 그렇게 오래 붙어있냐. 지겹지도 않느냐”고 말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눈치도 없이 한자리에 너무 오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쩌지요? 아직도 이 일이 제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처럼 느껴지고 여전히 재미있고 신명나는 일인데요. 농담삼아 말하지요. “저는 사장은 아니지만 사장처럼 일해요. 정말 재미있어요.”

특히 불교책과 관련하여 사람들과 만나는 일은 무엇보다 즐겁습니다. 물론 좋다고 하는 불자들만 만나니 더욱 그러하지요. 복이 많아도 보통 많은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하던가요. 불자들간에는 그저 만나는 순간부터 바로 공감을 주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사람들마다 빛깔이 다 다른데 저희 불광을 인연해서 만나는 분들은 모두가 밝고 환합니다. 왜냐고요? 모든 이들이 부처님과 다르지 않다는 절대 믿음과 긍정이 있기에 감사와 찬탄, 예경, 수순을 우리의 모토로 삼아 날마다 일상을 열어가고 있거든요. 그것은 저의 스승이시기도 하신 광(光)자 덕(德)자 큰스님께서 불광을 처음 창간(1974년 11월)하시면서 밝힌 본래 정신이기도 하구요.

그래서인지 불광과 인연한 분들은 모두가 그렇게 따뜻하고 밝은 빛깔을 가진 분들이랍니다.  아마도 매일매일 출근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직장이라고 생각했으면 이렇게 오래 할 수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참 신기하고 재미있는 나의 일이기에 가능했던 일들이었던 것같습니다.

 

똑같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은 그저 주어진 일이니 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주어진 일은 물론이려니와 일을 찾아서 자신의 일처럼 재미있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론 일의 효과와 결과는 참 많이 다릅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세요. 매사가 그렇습니다만 ‘내’가 한 일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라는 것이 본래 없듯이 이 세상에 ‘내’가 하는 일만으로 되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특별한 재주와 능력이 없는데도 이렇게 오랜 동안 ‘부처님 일’을 할 수 있는 복이 어디 보통 복인가요? 부처님 그늘이 참으로 크고 넓다는 것에 오직 감사할 따름이랍니다.

우리 법우님들도 새해에는 부처님의 그늘 속에서 복타령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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