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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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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입력 2004.03.07
  • 수정 2024.11.19

 

  '왠 감?' 

     '당신 먹으라고...'

 

                  일요일 아침, 등산 모임에서 시산제(?山祭)를 지낸다며               

아침밥을 먹기가 바쁘게 집을 나섰던 남편이 해거름에

돌아와 주머니에서 감 하나를 꺼내 주었다.

시산제 때 차린 음식을 먹다가,

유난히 감을 좋아하는 내가 생각났던 모양이다.

 

'이런 걸 뭐하러...'

 

다른 사람들 눈도 있었을 텐데,

마누라 생각해서 주머니에 감을 집어 넣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

 

'감 좋아하잖아.'

 

그러면서 다른 주머니에서 검은 비닐 봉투를 꺼낸다.

팥떡이었다.

 

'찹쌀이 많이 들어갔는지 정말 맛있어서 맛이나

보라고 가져 왔어.'

 

그의 말처럼, 떡은 부들부들한게 정말 맛있었다.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손바닥만한 떡을

그 자리에서 다 먹었다.

아직 깍지 않은 감을 바라보며,

떡을 먹고 있자니 갑자기 코끝이 서늘해지면서 목이 메었다.

불현듯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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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너무 몸을 혹사시킨 탓일까.

온 몸이 얻어 맞은 것처럼 쓰라렸다.

그래서 하루 종일 누워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고 잠을 잤다.

눈을 떳다가 감고,

깨었다가 잠들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 새 해거름이 되었기에

겨우 일어나 앉아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터에 남편이 온 것이다.

.

.

 

'아버지...저, 배 먹고 싶어요.'

 

어린 시절,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나는 봄이 터지기 직전이면

언제나 통과의례처럼 아팠다. 겨우내 괜찮다가도

봄이 되기 시작하면 이상스레 그 따뜻한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팠다.

사방에서 진달래와 산수유, 목련이 다투어 피는데 나만 혼자

시들시들 누워 지내는 날이 많았다. 봄볕을 쬐어도

피어나지 못하고 시든 꽃처럼 이불을 덮고 누워 있을 때,

봄햇살은 어찌 그리도 화려하든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까 아마 6,7살때였던 것 같다.

그 해 봄에도 그렇게 아파서 누워 있을 때,

아버지는 약을 먹기 싫어하는 나를 달래기 위해

뭐든 먹고 싶으면 말하라고 하셨다.

그때 나는, 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열에 들떠 입이 바짝바짝 마른 탓인지 시원한 배가

먹고 싶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린 시절,

배는 무척 비싸서 제사 때나 명절 때 아니면

감히 먹어볼 수도 없었다.

더구나 허름한 살림에 형제들이 8남매였으니 평상시에

귀한 배를 먹는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 귀하디 귀한 배가 먹고 싶었던 것이다. 명절도 아닌데...

장에나 나가야 살 수 있는 귀한 배가 느닷없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동네 마을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품안에서 배를 꺼내셨다.

 

'막내야. 배 먹어라.'

 

그렇게 환하게 웃으시며 방에 들어 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는 누워서 멀거니 쳐다보았다.

아버지를 따라 들어온 밤바람에

호롱불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제사 지내는 집에서도 몇 개 없었을 그 귀한 배를 얻어

오시기가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것을

그 어린 나이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아삭아삭  배맛에 취해 정신없이 먹었던 것 같다.

 

나이 들어 내 돈으로 배를 사기 전까지,아버지의 주머니에서

나온 수많은 배로 내 열꽃이 사그러들었다는 걸,

난 알지 못했다.

 

오늘 밤에는, 내가 아버지한테 배를 깎아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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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감을 깎아 먹었다.

.

 

아프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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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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