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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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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3월에 내리는 눈

  • 입력 2004.03.07
  • 수정 2024.11.15

매화 꽃눈이 반개했고 배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전지작업을 하고 남은 잔가지도 치워야 하고 거름도 나무 사이 사이에 넣어야하는 봄날은 얼마나 짧은지,기다렸던 시간의 낭만은 하나도 남아 있지를 않고 "봄날은 간다."라는 노래처럼 속절없이 지나치기에 이 봄은 마음이 바쁩니다.

 

3월에 내리는 눈은 봄을 서너걸음 겨울로 되돌려 놓고 마음이 바쁜 것도 부질없음임을 알겠냐는 가르침인양 갑자기 허탈한 여유를 만끽합니다.

 

설악산 오세암에는 겨울가뭄으로 졸졸 흘러내리던 물줄기가 낙엽하나라도 걸리면 물이 막히고 호스는 얼어 종일 호스 녹이느라 씨름을 하면서 봄날 가뭄을 걱정했는데 그것 또한 얼마나 부질없는 걱정인지 이렇게 눈이 쌓이면 돌이켜지는 우리네 삶에서 새삼 사서 하는 걱정은 없는지,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에서 교만한 여유가 피어나고 눈 덮힌 주위를 돌아보면서 새삼 겨울의 게으름에 빠져 봅니다.

 

눈이 내린 다음날 서울에 법회가 있어 새벽부터 눈을 치우고 서둘러 서울로 올라가는 길은 빙판에 가깝고 그리고 눈까지 내려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다가도 미리 걱정하지 말자.이런 날은 늦어도 이해해 줄 것이라 변명을 하면서 서울 가는 길이 언제 이리 즐거운 풍경이 있었나.설국의 가운데 나는 축복으로 부처님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거북이 걸음을 하는 차량들 속에서도 여유가 있고 마음껏 3월의 눈을 감상합니다.

 

서울에 들어 서면서 그렇게 많지 않은 차량들 때문에 놀라고 시내에 들어가면서는 더욱 여유 있는 교통 흐름에 IMF 터지고 처음 아닐까? 김영삼 정권의 유일한 치적인 서울교통체증을 일거에 해결한 IMF 사태처럼 시내를 이렇게 달릴 수 있다는 놀라운 3월의 눈은 전날 시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모르는바 아니나 얼마나 고마웠는지,고속도로에서 꼼짝못했던 많은 국민들을 생각하면 더욱 미안한 일이지만 현실의 반전을 받아 들여야하는 우리 삶을 즐길 수는 없을까? 3월의 눈속에서 생각 해 봅니다.

 

더 나아가 몇 해전 4월 5일 한계령을 넘으면서 산 아래에는 비가 왔는데 산 중간 정도부터 눈이 되어 진달래 위에 쌓이는데 꼼짝 없이 겨울과 봄과 지난 가을의 흔적이 공존하는 삼계를 오도 가도 못하고 경험했던 4월의 눈도 생각이 납니다.우리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다.이것은 고통이 아니다.마음을 돌이킨 순간부터 6시간을 닫힌 공간이 아닌 열린공간으로 와닿았던 그 한계령을 생각하면 이 3월의 눈도 그리고 세상살이도 한결 수월해지는 이유가 진정으로 고통받는 이웃에게까지 미쳤으면 좋겠습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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