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내게 특별한 것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곳의 보리수 잎이예요.
언니가 생각 나서 가져 왔어요."
그러면서 후배는 말라서 납작해진 나뭇잎을 책 속에서 꺼내 주었다.
보리수 잎은 생각보다 크고 널찍했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나뭇잎을 다 따 오면,
그 나무는 어떻게 되겠니? 나중에는 벌거숭이가 되겠다."
한달 동안의 여행짐도 만만찮았을 텐데,
그 먼 곳에서 나를 생각하며 나뭇잎을 책갈피에 넣고
다녔을 후배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부러 퉁명스레 트집을 잡았다.
"나무에서 딴 거 아니예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 주어 온 거예요. 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
나는 투박하게 던진 말과는 달리,
후배가 건네주는 보리수잎을 정성스럽게 받았다.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받아들 듯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드셨을 때,
지글거리는 태양을 막아주고 사나운 빗줄기를
진정시켜 주었을 보리수.
평범한 중생이 부처로 거듭 나는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증명했을 보리수.
그래서 '석가모니'라는 단어 위에 모자처럼 등장하는 수식어.
헌데 그 모자는 아무리 뜯어 보아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세와는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 흔히 널려 있는
사과나무 잎이나 떡갈나무 잎 같았다.
낙엽 속에 섞여 있었다면 찾아 내기가 힘들 정도로 특징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리수잎이
내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부처님과 같이 있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보리수잎은
대번에 평범의 낙엽 속에서 빛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있던 손수건.
그가 입고 있던 체크무늬 남방과 감청색 넥타이.
서류 가방과 모나미 볼펜...
모두 평범하기 그지없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흔한 것들이지만,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입었고 그 사람의 손길이 가 닿았기에
내게는 특별한 것이 된다.
밥 먹었어? 라는 진부한 문장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면,
죽은 문장 속에 피가 흐르듯 아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자, 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3'이라는 숫자는
시계 속에 누워 있는 12개의 숫자 중에서 느닷없이 툭 불거져 나온다.
토요일이 올 때까지, '3'시가 될 때까지
무수하게 가슴속에 되새기면서 떠올려 볼 숫자.
그래서 '3'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만날 때까지의 가슴 두근거림을 상징하고
만났을 때의 터질 듯한 환희를 상징한다.
만약 약속 시간이 지났는 데도 그를 만나지 못했을 때,
그가 예고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3'이라는 숫자 속에는 서운함과 아쉬움,
때론 원망과 절망감까지도 뒤섞이게 될 것이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도 나의 기억 속에서 슬픔과 함께 자리할 것이다.
그렇게 숫자에, 물건에 마음을 주며 우리 인생을 엮어 가는 지도 모른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데,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 속에 녹아 있는 사소한 물건들.
우연히 길을 가다, 그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발견했을 때,
왈칵 달려 드는 그리움...
문득 스치는 비누 냄새의 기억. 카푸치노를 마시다 떠 오른 그의 웃음.
해질녁이라서 전화했어요. 미안해요, 바쁠텐데...
냇가에 나와 이쯤에서 항상 그와 통화를 했었지.
땅거미가 질 때면 허허로운 마음을 가누지 못해 그에게 전화를 했었지...
그렇게 그리움을 털어 내고, 기억을 밀어내면서
우리의 슬픔을 잠재우는 지도 모른다.
그게 인생이라고 평범한 물건 속의 추억들이 내게 말한다.
따지고 보면 평범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비범한 것도 내가 무관심하면 평범한 것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걸 가져다 줄 생각을 했니...
여행하기도 복잡했을 텐데...'
고개를 이기지 못하는 갓난 아이를 안고 있듯,
두 손안에 소중하게 보리수잎을 받쳐 들고서 후배에게 말했다.
"인도에 가서 비로소 언니 책을 읽었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 지 몰라요...언니가 얼마나 보고 싶던지..."
나처럼 후배도 평범한 것에 마음을 섞고 있구나...
먼 곳으로 떠나 어둠이 내릴 때, 후배도 외로웠구나...
내 책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특별한 기억이
내 책과 맞물려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기왕이면 좋은 기억을 가지렴....
기왕이면 너의 마음을 맑게 하고,
너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 줄 그런 만남을 가지렴...아프지 말고...
나는 물기 젖은 후배의 눈을 바라 보며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3'이라는 숫자가 아픔이 되고
아쉬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설레임이 되고
환희가 되도록 그렇게 속삭였다.
그래서 그 만남의 장소가 즐거움으로 추억되고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보리수잎이 부처님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듯...
내게 특별한 것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다는 곳의 보리수 잎이예요.
언니가 생각 나서 가져 왔어요."
그러면서 후배는 말라서 납작해진 나뭇잎을 책 속에서 꺼내 주었다.
보리수 잎은 생각보다 크고 널찍했다.
"이렇게 사람들마다 나뭇잎을 다 따 오면,
그 나무는 어떻게 되겠니? 나중에는 벌거숭이가 되겠다."
한달 동안의 여행짐도 만만찮았을 텐데,
그 먼 곳에서 나를 생각하며 나뭇잎을 책갈피에 넣고
다녔을 후배를 생각하니 괜히 미안해졌다.
그래서 부러 퉁명스레 트집을 잡았다.
"나무에서 딴 거 아니예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거 주어 온 거예요. 언니가 좋아하실 것 같아서..."
나는 투박하게 던진 말과는 달리,
후배가 건네주는 보리수잎을 정성스럽게 받았다.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받아들 듯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부처님께서 깊은 삼매에 드셨을 때,
지글거리는 태양을 막아주고 사나운 빗줄기를
진정시켜 주었을 보리수.
평범한 중생이 부처로 거듭 나는
역사의 현장을 묵묵히 증명했을 보리수.
그래서 '석가모니'라는 단어 위에 모자처럼 등장하는 수식어.
헌데 그 모자는 아무리 뜯어 보아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역사 속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유명세와는 달리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저 우리 주변에 흔히 널려 있는
사과나무 잎이나 떡갈나무 잎 같았다.
낙엽 속에 섞여 있었다면 찾아 내기가 힘들 정도로 특징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 평범하기 그지없는 보리수잎이
내게는 아주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부처님과 같이 있었다는 한가지 이유만으로 보리수잎은
대번에 평범의 낙엽 속에서 빛이 났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갖고 있던 손수건.
그가 입고 있던 체크무늬 남방과 감청색 넥타이.
서류 가방과 모나미 볼펜...
모두 평범하기 그지없고 어디서나 살 수 있는 흔한 것들이지만,
사랑하는 그 사람이 입었고 그 사람의 손길이 가 닿았기에
내게는 특별한 것이 된다.
밥 먹었어? 라는 진부한 문장도 그의 목소리를 통해 듣게 되면,
죽은 문장 속에 피가 흐르듯 아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자, 라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3'이라는 숫자는
시계 속에 누워 있는 12개의 숫자 중에서 느닷없이 툭 불거져 나온다.
토요일이 올 때까지, '3'시가 될 때까지
무수하게 가슴속에 되새기면서 떠올려 볼 숫자.
그래서 '3'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만날 때까지의 가슴 두근거림을 상징하고
만났을 때의 터질 듯한 환희를 상징한다.
만약 약속 시간이 지났는 데도 그를 만나지 못했을 때,
그가 예고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3'이라는 숫자 속에는 서운함과 아쉬움,
때론 원망과 절망감까지도 뒤섞이게 될 것이다.
울리지 않는 핸드폰도 나의 기억 속에서 슬픔과 함께 자리할 것이다.
그렇게 숫자에, 물건에 마음을 주며 우리 인생을 엮어 가는 지도 모른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그리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데,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 속에 녹아 있는 사소한 물건들.
우연히 길을 가다, 그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옷을 발견했을 때,
왈칵 달려 드는 그리움...
문득 스치는 비누 냄새의 기억. 카푸치노를 마시다 떠 오른 그의 웃음.
해질녁이라서 전화했어요. 미안해요, 바쁠텐데...
냇가에 나와 이쯤에서 항상 그와 통화를 했었지.
땅거미가 질 때면 허허로운 마음을 가누지 못해 그에게 전화를 했었지...
그렇게 그리움을 털어 내고, 기억을 밀어내면서
우리의 슬픔을 잠재우는 지도 모른다.
그게 인생이라고 평범한 물건 속의 추억들이 내게 말한다.
따지고 보면 평범이란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비범한 것도 내가 무관심하면 평범한 것이 될 것이다.
'어떻게 이걸 가져다 줄 생각을 했니...
여행하기도 복잡했을 텐데...'
고개를 이기지 못하는 갓난 아이를 안고 있듯,
두 손안에 소중하게 보리수잎을 받쳐 들고서 후배에게 말했다.
"인도에 가서 비로소 언니 책을 읽었어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 지 몰라요...언니가 얼마나 보고 싶던지..."
나처럼 후배도 평범한 것에 마음을 섞고 있구나...
먼 곳으로 떠나 어둠이 내릴 때, 후배도 외로웠구나...
내 책 때문이 아니라, 그녀의 특별한 기억이
내 책과 맞물려 마음을 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기왕이면 좋은 기억을 가지렴....
기왕이면 너의 마음을 맑게 하고,
너의 영혼을 따뜻하게 해 줄 그런 만남을 가지렴...아프지 말고...
나는 물기 젖은 후배의 눈을 바라 보며 마음 속으로 속삭였다.
'3'이라는 숫자가 아픔이 되고
아쉬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설레임이 되고
환희가 되도록 그렇게 속삭였다.
그래서 그 만남의 장소가 즐거움으로 추억되고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보리수잎이 부처님의 기억을 불러 일으키듯...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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