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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통장이 갖고 싶거든

  • 입력 2004.03.26
  • 수정 2024.11.15

 생각해보니 그때 그 일이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네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분을 도사님이라고 부릅니다. 얼마 전 어느 출판사에서 나온 다섯 도인이야기에도 ‘거꾸로 사는 도인’이라는 제목으로 그 분의 이야기가 소개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 날도 생각없이 열심히(?) 밥을 먹고 있는데 도사님께서 “남동화 씨! 통장 없지요?” 하는 겁니다.

“네! 그런데요?”

“통장 갖고 싶으세요?”

“그럼요. 물론이지요.”

“두 가지만 지키실래요?”

도사님은 저에게 밥을 천천히 먹을 것과 또 한 가지는 혓바닥을 입천정에 붙이고 가능한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된다고 했습니다.

역시 밥먹는 것만 봐도 도사님은 그 사람을 다 아는 모양입니다. 그래요. 그때 전 통장이 없었거든요. 물론 아무런 생각없이 밥을 허겁지겁 먹어치웠고, 말도 어찌나 많고 빠른지 속사포같다고 했지요. 그리고 무엇이 그리 바쁜지 늘 헐떡헐떡 숨이 가쁘고, 이리저리 분주하기 이를 데 없는지라 어떤 분은 저에게 시동걸린 오토바이같다고 했어요.

 

통장에 돈이 가득하여 휴지 빼 쓰듯이 쏙쏙 뽑아쓸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 통장을 갖고 싶은 욕심에 그때부터 밥먹는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가능한 천천히 먹는 연습을 했어요. 물론 혓바닥을 입천정에 붙이고 말도 삼가기 시작했지요. 그랬더니 사람도 차분하고 우아하게(?) 바뀌면서 신기하게 통장이 생기고 돈도 쌓이게 되더군요. 

그런데 그때부터 저에겐 이상한(?) 버릇이 생겼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밥을 먹는지 살피기 시작한 거지요. 어쩜 그렇게 자기모양다리대로 밥을 먹는 지. 비록 도사는 아니지만 밥먹는 것만 봐도 그 사람이 훤히 다 보이는 것있지요. 어디 밥먹는 것뿐이겠어요? 말하는 것이며 걸음걸이며 행동 하나하나가 다 그렇지요. 아무튼 요즈음 도사님의 강의를 듣다보니 왜 밥을 천천히 먹어야하는 지 조금더 분명해졌답니다.

 

도사님 말씀왈 도를 닦는 사람에게 가장 주의해야할 사항은 적게 먹는 것이라고 하는군요. 위장의 반은 음식으로 채우고 나머지 3분의 1은 물로 채우되, 그 나머지는 공기를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비워두라고요. 많이 먹으면 음식을 소화 흡수 배설하기 위해 내장이 무리하게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기계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내장도 많이 사용하면 빨리 망가진답니다.

 

그리고 지나치게 음식을 먹으면 소화 흡수 배설하는 기관에 기가 몰리기 때문에 다른 생리기관의 활동은 억제하게 되어 온몸에 기혈이 잘 돌지 않으므로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리석어진고 하네요.

물론 영양을 지나치게 흡수하면 비만이 되고 비만은 자동차에 짐을 많이 싣는 것과 같아서 몸에 관절염이나 심장병과 같은 순환기 장애를 일으키게 되고, 동양적 사고로 보면 과식은 수명뿐만 아니라 복도 잃게 만든다는군요. 그 이유는 타고날 때 이미 식복이 정해졌으므로 많이 먹어서 식복을 모두 소비하면 현생에서 더 이상 먹을 게 없기지기 때문이라는군요.

 

동서고금을 통해 오래 살기 위한 방법은 수없이 많은데 어느 하나도 완전한 것은 없지만 다만 오래 살기 위해서는 조금 먹어야 한다는 게 공통된 견해랍니다. 연구에 따르면 평균 열량의 30%를 줄이면 인간은 30년은 더 살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지요?

현대의학에서는 많이 먹으면 수명이 짧아지는 이유를 첫째, 영양물질이 몸 안에 쌓이면 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만성 염증이 생기는데 이러한 염증이 오래되면 암이나 노화의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둘째는 세포 자살을 막는답니다. 세포 자살은 늙고 병든 세포가 스스로 죽는 현상인데 많이 먹으면 세포가 자살하지 않고 오히려 암세포와 같은 불량품으로 변해서 자신을 죽인답니다.

셋째 인체는 몸 밖에서 들어오는 공기나 음식, 그리고 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해 몇 백만 가지의 유해물질에 노출되어 있는데 많이 먹으면 이러한 유해물질을 해독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반면에 적게 먹으면 유전자들이 개체의 생존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염증을 억제하고 병들고 늙은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며, 독성물질을 몸 밖으로 빨리 내보내고,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고, 면역력을 증강시키고, 호르몬을 정상으로 분비시킨다고 하는군요.

 

 

적게 먹는 것 다음으로 주의할 사항은 때에 맞춰 먹는 것입니다. 오장 육부 가운데 오장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활동하지만, 육부인 위장, 소장 , 대장 등은 한 번 운동을 하고 나면 일정 기간 쉬어야 하는데 음식을 먹은 지 세 시간 안에 다시 음식이 들어가면 내장들이 지쳐서 더 이상 활동하지 못한다네요. 

더구나 먼저 들어간 음식이 완전히 내려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음식이 들어가면 소화된 정도가 다른 음식이 섞여서 소화 흡수가 잘 되지 않고 내장만 상한답니다.

오후나 밤에는 먹지 않는 게 좋은데 동양 의학에서 보면 인간의 생리는 자연 리듬에 맞춰서 작용하는데 인간이 지기(地氣)를 흡수하는 시간, 즉 음식을 먹고 소화 ,흡수하기 가장 좋은 시간은 진시(辰時)부터 사시(巳時)까지랍니다. 이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입니다. 이 시간에 음식을 먹어야 잘 소화하고 흡수해서 심신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하네요.

오후나 밤은 인체가 생명력을 저장하고 심신이 활동을 멈추며, 생리적인 균형을 이루는 시간인데 이때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어리석어진고 합니다. 옛말에 신선은 오전에만 먹고, 부처님은 사시에만 공양하고, 짐승은 저녁에 많이 먹고, 귀신은 밤에만 먹는다고 했다고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천천히 먹으라는 것입니다. 빨리 먹으면 음식을 제대로 십지 않으므로 소화가 잘 안 되고, 또한 빨리 먹으면 많이 먹기 쉽답니다. 왜냐하면 위장은 음식이 들어온 뒤 20분 이상이 지나야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음식을 맛보거나 십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작용만이 아니라 이 과정이 뇌로 전달되어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는데 우선 십으면 뇌기능이 활발해지므로 기억력이 좋아지며, 치매가 예방되는 등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음식을 십는 과정에서 침샘이 자극되어 침이 나오는데, 이때의 침은 평상시에 나오는 침과 달리 노화와 암을 촉진하는 활성산소에 대항하는 항산화제이며, 질병에 대항하는 면역물질이라고 합니다.

 

때에 맞춰 조금 먹고, 천천히 먹는 것만으로도 운명이 바뀌고, 부자가 되고, 지혜로워지고, 건강해지고, 오래살 수 있다고 하니 참으로 해볼만한 일이지요?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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