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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태산에는 영국사가 있다

  • 입력 2004.05.17
  • 수정 2024.11.15

절을 찾아가는 마음은 실로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잠시나마 번잡하고 복잡한 세속을 놓고, 깊고 그윽한 산사의 풍경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절을 감싸고 있는 주변 풍경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한다면, 이는 더 할 수 없는 즐거움이 이겠지요. 영국사는 바로 이런 조건을 지니고 있습니다. 

   영국사는 양산 팔경 중 제 1경으로 천태산에 위치한 천년 고찰입니다. 세월의 발자취를 쫒아 그 유래를 살펴보면 확연히 드러나는데, 창건 년대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 8년에 원각국사(圓覺國師)가 창건하였고, 이후 고려 제23대 고종(高宗) 때 감역(監役) 안종필(安鍾弼)이 왕명으로 탑 ․부도 ․금당(金堂)을 중건하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寺)라고 하였습니다. 뒤에 다시 31대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지요. 당시 원(元)나라의 홍건적(紅巾賊)이 개성까지 쳐들어와 왕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이곳에 피난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에 고려군이 홍건적을 무찌르고 고려의 수도 개경(開京)을 수복하게 되자 왕이 기뻐하며 부처에게 감사드리고 떠나면서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또한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師國師)가 산명을 지륵, 절 이름을 영국사라 명명하였다고 전해지기도 하나, 신빙성이 없는 낭설로 간주하는 편입니다.  

   주차장에서 영국사까지 1km 남짓 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넉넉잡아 도보로 20여분쯤 잡으면 충분할 듯 싶습니다. 주차장을 벗어나 200m 지나면 아기자기한 산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여기부터가 절경이지요. 산 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천태산은 가히 충북의 설악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답습니다. 큰 바위, 작은 바위들이 형제자매처럼 오순도순 앉아 덕담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길손을 편하게 맞아 줍니다. 길 양편으로 서 있는 나무들도 그 멋을 더해주는데, 느티나무, 벚나무, 개암나무, 때죽나무, 버드나무, 옷나무, 느릅나무, 고로쇠나무, 검팽나무, 갈참나무 등으로 에워싸인 울창한 숲이 일품이지요. 특히 가을이면 형형색색의 단풍들로 찾는 사람들의 발길을 쉬어가도록 붙잡아 놓곤 합니다. 

   산길을 타고 한참을 오르다 보면 쭈굴쭈굴한 바위가 머리를 길게 내밀고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삼신 할머니를 닮았다하여 삼신바위라 불립니다. 이곳부터 길은 더 좁아지는데, 삼신바위를 지나 한 고개를 올라서면 큰 바위들이 하늘을 떠받들고 서 있습니다. 바로 삼단 폭포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물밑바닥이 훤히 드러나는 너른 바위에 물구덩이가 있습니다. 삼단으로 이루어진 폭포를 타고 내려온 물줄기가 쉬어 가는 곳으로 움푹 폐인 돌구덩이에는 항상 물이 철철 흘러 넘칩니다. 반들반들한 바위를 타고 수정처럼 맑은 물이 선녀의 옷자락처럼 하나 둘, 폭포를 형성하다가 마지막 폭포수를 쏟아냅니다. 이렇게 폭포가 삼단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삼단폭포라 하는데,  과거에는 용추폭포라 불려졌었지요.  

   삼단폭포에서 은행나무가 보이는 고갯마루까지는 한 걸음입니다. 가파른 고개를 숨도 쉬지 않고 오르면 막혔던 가슴이 팍 트이는 것처럼 넓은 분지가 나타납니다.  망탑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이 고갯마루에서 바라보는 산경은 마치 무릉도원 같이 느껴집니다. 도화나무 대신 한 그루 은행나무가 천태산을 품고 서 있습니다.   마치 산촌 마을을 지키고 있는 노거수처럼 정겹기만 한데, 그 앞에는 닥지닥지 붙은 다랭이 논들이 내방객을 더욱 편안하게 만듭니다. 그 품안에 천년고찰 영국사가 고즈넉하게 둥지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지요. 절과 함께 마을에는 아직도 서너 집이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데, 옛 마을의 토속적인 삶의 형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된 아름드리 은행나무는 영국사의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높이 31m, 가슴높이 둘레는 11m로 늙은 은행나무는 수령이 자그마치 1300년이 넘습니다. 이 나무는 영국사에서 가장 오랜 된 나무요, 영국사의 내력을 일러주는 산부처지요. 가지 중의 하나는 땅으로 늘어져 땅에 머리를 박고 또 다른 생명을 키우고 있으니 그 신비함이 어찌 신앙의 대상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영국사를 찾는 연유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늙은 은행나무는 나라에  국난이나 재난이 있을 때마다 울음을 기이하게 운다고 전하지요. 그러나 나는 그 울음을 생명의 소리라 명명한 적이 있습니다. 몇 해전 이른 봄날 내가 들었던 그 울음은 분명 생명을 아우르는 소리입니다. 나뭇등걸 속에 생명을 키우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이지요.  

   영국사에는 만세루를 비롯해 6동의 건물이 있습니다. 대웅전과 산신각, 적묵당, 계월암, 해우소, 그리고 내가 머물고 있는 대나무 집이 그것입니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입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61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천태산을 배경으로 신좌을량(辛左乙向)으로 지어져 있지요. 대웅전 안은 정면에 삼존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에 석가여래좌상이고, 좌우 양쪽에 관세음보살좌상과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서쪽 벽에는 신장탱화, 동쪽 벽에는 삼장탱화, 뒤쪽에는 칠성․독성․상단정신조성탱화 있고요. 이 건물은 1980년 해체․복원되었으나, 기둥과 기와가 부식되고 건물전체가 동쪽으로 기울어 해체 복원될 예정입니다. 만세루, 계월암 등의 건물들은 최근에 지어진 것들로 천태산과의 자연스런 조화를 이룹니다. 

   영국사에는 충북도내에 있는 사찰 중 법주사 다음으로 많은 문화재를 보존하고  있습니다. 보물로는, ‘영국사부도’(보물 제 532호), ‘영국사삼층석탑’(보물 제533호), ‘영국사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망탑봉삼층석탑’( 보물 제535호)과 최근 보물로 지정된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가 있습니다. 이 밖에도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석종형부도’, ‘원구형부도’ 등이 있지요.   

   ‘영국사 부도’는 영국사 남방 약 200m 되는 언덕 위에 있습니다. 신라와 고려시대에 많이 조성되었던 팔각당형 부도이며 화강암으로 돼 있는데, 지대석에서 보주까지 대부분 원형에 가깝도록 보전되어 있습니다. 이 부도는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에 만든 것으로 보이며, 원각국사 유골이 영국사에 안치되어 있다는 비문을 유추하면 이 부도가 원각국사 사리를 안치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국사삼충석탑’은 신라식 일반형의 석탑입니다. 2층 기단 위에는 3층의 탑신을 세웠으며, 기단부는 상하층 수매의 판석으로 조립되어 있으며, 면석에는 인상이 조석되어 있는 석탑입니다. 현재 해체되어 보관 중인데 본래 자리에 안치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국사 망탑봉삼층석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약 500m 지점의 망탑봉 정상에 있는 것으로, 거대한 화강암반의 위에 건립한 일반형의 석탑이며, 자연을 그대로 이용하여 기단을 조성하였습니다. 원각국사비는 명종 10년(1180년)에 한문준이 비문을 지어 건립하였다고 『조선금석총람』상권에 그 전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비석의 위치는 영국사 남쪽으로 150m되는 낮은 언덕 위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세워져 있지요. ‘영국사후불탱화’는 조선 숙종 때인 1709년 조성된 것으로 가로 285cm 세로 324cm의 대작으로 조성연대와 작가, 발원자 등이 확실해 조선시대 불교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이 후불탱화는 10여 년 전 도난 당한 것을 다시 찾은 것인데 현재 수덕사 성보 박물관에 임시 보관 중입니다. 다시 제자로 돌아올 것을 기대해 봅니다.      

   영국사는 작은 규모의 절이지만 그 나름의 개성을 듬뿍 지니고 있습니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산자락의 소나무 숲은 영국사의 그윽한 정취를 한층 뽐냅니다. 대웅전 뒤편의 대나무 숲과 뜰 마당의 단풍나무, 보리수, 감나무, 백목련 등의 나무도 그 멋을 한껏 드러내지요. 그리고 적묵당 옆으로 수국, 겹벚꽃, 두릎나무 등도 마찬가지로 절을 절답게 꾸며줍니다. 대나무 집 앞에는 조그만 개울이 있는데,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물 속 나라에 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여름이면 반딧불이가 난다는 영국사는 생태계의 보고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산과 계곡에는 갖가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데, 노루, 고라니, 족제비, 참다람쥐, 오소리, 너구리 등의 들짐승이 영국사를 제 집 드나들 듯 합니다. 부엉이, 뻐꾹새, 쑥국새, 서쪽새, 따딱구리, 후루티, 꾀꼬리 등의 날짐승도 함께 살지요. 머루, 다래, 으름이 그득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의 토종 식물들도 꽃을 피우고 지우며 어우러집니다. 영국사는 눈길 가는 곳마다 발길 닿는 데마다 절경입니다.

   영국사를 중심에 두고 천태산에 얽힌 전설은 아직도 면면히 전승되고 있는데,   공민왕의 옥새를 숨겨놓았던 ‘옥새봉’이 있고, 이, 호, 예, 병, 형, 공의 6조가 자리잡았던 ‘육조골’이 있는가 하면, 천년 장수를 소망한다는 ‘거북바위’의 전설이 있습니다. 또한 죽은 영감의 극락왕생을 소원했던 어떤 할머니의 간절한 염원이 담긴 ‘나무영감’에 대한 전설도 내려오지요.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공민왕이 물을 건너기 위해 칡넝쿨을 걷어다 새끼처럼 꼰 다음 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붙여진 '누다리'가 있고, 은행나무의 울음에 대한 전설이 있는데, 이는 세인들에게 가장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지요.  

   영국사로 찾아오는 데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충남북도, 경상북도, 전라북도와 도계를 나누고 있는 관계로 교통이 사방팔방으로 발달돼 있어 찾기가 수월합니다. 먼저 영동에서 학산을 지나 양산에서 금산 방향으로 가다가 호탄 다리를 건너 영국사로 길이 있고, 또 하나는 옥천에서 이원을 지나 무주 구천동 방향으로 가다가 명덕리를 지나치는 길, 그리고 금산에서 천래강을 따라 영동방향으로 오다가 호탄 다리를 건너 찾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로 들어 영국사를 찾던, 산사를 쫒아가는 그 마음은 즐겁고 기쁘지 아니하겠습니까. 아직 영국사를 찾지 않았다면, 바쁜 세속의 일을 잠시 놓으시고 은행나무 곁으로 들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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