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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산재 특집 ① 영산재 보존의 가치

  • 입력 2005.09.10
  • 수정 2024.11.15

① 왜 영산재를 재현하는가?

② 영산재의 구성과 식순

③ 시식과 제사의 다른 점

 

■ 2547년 영산대재 동영상 보기

 

 

 

1. 영산재의 기원

 

영산재의 유래는 멀리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묘음보살이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시적인 노래로 부른 것을 후에 영산회상 법화경 설법을 배경으로 형상화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구전으로 전하여 오고 있다.

 

또 한 설은 중국 후한 때 조조의 손자 조식이 산에 가다가 맑은 호수에서 물고기가 노니는 것을 보고 있었는데, 천상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렸으며 순간 음악적인 영감이 떠올라서 지은 노래가 범패라고 한다.

 

그래서 천상에서 천인들이 깨끗한 음성으로 부처님께 음성으로 공양 올린다하여 깨끗할 범(梵)자, 부를 唄 범패(梵唄)라 하고 소리‘음(音)’자를 넣어서 깨끗한 음악, 음성이라 하여 범음이라 한다. 또한 모든 의식을 앞에서 이끈다 하여 인도 소리라고 하고 인도에서 전래한 소리라고하여 인도 소리라는 설도 있다.

 

범패는 홋소리를 말하는 것이요, 범음이란 짓소리를 이르는 말이다.

어산을 크게 두 종류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안차비와 바깥 차비로 나누기도 하고 범패와 범음으로 나누기도 한다.

안차비는 불공드리는 각 유치 청사와 예수재 수륙재등 요령 목탁으로 짧은 소리로 하는 것을 말하고 바깥 차비란 상주권공 각배, 영산재등 괘불을 모시고 주로 바깥마당에서 하는 큰소리를 말한다. 바깥 차비를 또 둘로 나누는데 범패를 독창으로 하는 것을 홑소리라고 범음을 대중이 여럿이 하는 합창을 범음 또는 짓소리라 한다.

 

대중이 여럿이 하는 소리 중에서도 홑소리 부분이 있고 굴곡이 심하고 긴 짓소리 부분이 있는데 예전에는 이러한 짓소리가 72가지가 있었다고 하는데 모두 다 사라지고 현존하는 것은 15가지뿐이다.

 

2. 한국국악의 원류가 범패로부터 발생되었다.

국악 학자에 의하면 한국의 국악 원류가 범패로부터 나왔다고한다. 범패는 신라 말기에 나왔고 가사(가곡)는 고려에 나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삼대성악이 있는데 범패 가사(가곡) 판소리가 그것이며 범패는 신라 말기에 나왔고 가사(가곡)는 고려중기며, 판소리는 이조 중기에 나왔다.

 

역사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소리며 이 범패가 국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가령 국악에 영산회상곡이 전해오는데 가사는 다 없어지고 곡만 내려오고 있는 등 많은 부분에 범패가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영산재의 각 내용에 있어서 간략히 설명하겠다.

 

3. 범패의 분류 및 종류

 크게 안차비와 바깥차비 둘로 나눈다.

 

 

 ● 안차비는 각청의 유치 청사와 시식 수륙재 예수재 등 요령, 목탁으로작고 짧은 소리로 하는 것을 말하고

 ● 바깥차비는 바깥 마당에서 괘불을 모셔놓고 상주권공, 각배, 영산재 등 큰소리로 길게하는 소리를 말한다.

 ● 범패(홑소리)는 바깥차비중 혼자 독창으로 부르는 비교적 큰소리중에서도 주로 짧은 소리이며

 ● 범음(짓소리)은 대중이 함께 합창으로 부르는 긴소리 즉 짓소리라고 하는데 소리가 길고 굴곡이 심해서 범패 전 과정 중에서 배우기가 가장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모든 소리를 다 배우고 난 다음에 맨 마지막에 배우는 소리이며 예전에는 72가지의 짓소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거의 유실 되었고 지금은 15가지만 전할뿐이다.

 

 

 

 

4. 전승계보

신라 말 시작된 범패가 고려초에서는 성황했으나 이조때 억불 숭유 정책으로 축소되어 쇠퇴일로에 있다가 영조(英祖)때까지 겨우 명맥만을 이어오다가 영조 24년 (서기 1748년) 전남 장흥 가지산 보림사의 대휘(?煇)스님이 범패 전승계보를 이었으며 뒤를 이어 응준, 혜운, 천휘, 상환, 운호, 운계, 법민 혜감 등이 있었고, 시임(侍任)의 법제자 락안(法弟子 樂安), 순영증광, 순영의 제자인 유민유평 (有敏有平) 조선말 동명대원, 월하스님께서 이어 오다가 1933년 이래 봉원사(?元寺) 송암(松岩)스님이 그 맥을 이어왔고 송암스님의 맥을 동주원명(東?元明), 구해(九涇), 송강(松江), 동희(東熙)스님 등 약간이 있을 뿐이다.

 

5. 수학 과정

천백여년을 오로지 스승과 제자간의 구전으로 만 전해오기 때문에 배우기가 무척 어렵다.

 

또한 글자로써 5분, 10분씩 각기 다른 다양한 소리를 내기 때문에 배우기가 어렵고 한문 사성(四聲)에 의해서 고저장단(高低長短)의 규격에 맞추어서 불러야지 이틀에 벗어나면 아무리 좋은 목소리를 낸다 해도 틀리기 때문에 이법에 맞게 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문 사성에 의해서 높은 자는 높게 낮은 자는 낮게, 또 길게 짧게 하되 높은 글자라 해도 그 쓰임에 따라서 각기 달리 하기 때문에 어렵다 또 아도 아니고 어도 아닌 중간 음 등 글자로는 표현이 안 되고 오직 스승의 소리에 제자는 귀로 듣고 똑같은 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실로 배우기가 어려운 것이다.

 

6. 보존의 가치와 중요성

 21세기의 세계는 경제보다도 문화산업에 더 큰 비중과 역점을 두고 있으니 경제는 단순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하지만 문화는 정신과 경제 두 가지를 동시에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간 해외에서 부분적이나마 영산재를 재현 하는 의식이 많이 있었다.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대만, 호주, 브라질, 캐나다 하와이, 싸이판 등 동, 서양에서 여러 차례 부분적인 시현을 통하여 현지인들의 열렬한 찬사와 격찬을 받은바 있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 특수층을 제외한 일반 대중은 영산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데  외국인들은 대단히 격조 높은 음악이라고 격찬이 대단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을 실감케 하였다.

 

소중한 민족 유산이요 불교 만이 가지고 있는 희귀 재산인 영산재 및 제반 전통의식이 그 원형을 거의 상실 위기에 처한 이때, 불교 장자 종단인 조계종이 나서 그 재현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앞으로의 전승 발전에 사뭇 그 의의가 크다 하겠다.

 

 

① 왜 영산재를 재현하는가?

② 영산재의 구성과 식순

③ 시식과 제사의 다른 점

 

■ 2547년 영산대재 동영상 보기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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