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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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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신돈과 불교

  • 입력 2005.10.03
  • 수정 2024.11.17

지난 9월 24일 부터 특별기획드라마 '신돈'이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신돈의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고, 고려말기의 개혁성향을 가진 정치적 승려라는 것과 아울러 불교국가 고려 말기 시대상을 엿볼 수 있어 기대가 된다. 역사속에서 패자는 항상 승리자에 의해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기록되어 진다. 신돈의 개혁은 묻혀지고 그의 개인적 행태를 부각하여 흠집을 낸다. 그런 그를 우리는 다시 되돌아 본다.

 

신돈은 집권하고 있을 때부터 이미 요승(?僧)·사승(邪僧) 등과 같은 부정적인 평가와 다른 한편으로는 신승(神僧) 혹은 성인(聖人)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당대에 극단적으로 상반된 평가가 지금에 이르러서도 공존하고 있다.

 

신돈은 보우에 의해 사승(邪僧)으로 몰렸는데, 보우는 공민왕의 왕사가 되어 원융부(圓融府)를 세우고 선·교 종문 사사(寺社)의 주지 임명을 마음대로 했던 인물로 권문세족의 기반을 가지고 있는것에 반해 신돈은 어머니의 신분때문에 산방(山房)에 거처하였으며 출신이 다른 신돈을 보우가 깍아내린것은 당연한듯 보인다.

 

권문세족 중심의 불교계에 불만을 가진 신돈은 공민왕 14년에 총명하고 말 잘함 등이 공민왕의 뜻에 맞아 국정을 맡게 된다. 신돈은 먼저 기득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관리를 승진시킬 때 근무연한을 고려하는 순자격식(循資格式)을 실시하였다. 이것은 권세가의 자제들이 남보다 빨리 승진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신돈은 현량(賢良)의 등용을 강조하면서 개혁 세력을 양성하고자 하였다.

 

신돈이 추구했던 개혁의 또 다른 방향은 민생안정이였는데, 권세가들이 불법적으로 빼앗은 토지와 노비를 조사하여 본래대로 되돌려 놓고자 했다. 당시에 노비에서 해방된 사람들과 일반민의 경우는 신돈을 일컬어 ‘신승(神僧)’이라 하거나 심지어 ‘성인(聖人)이 나왔다고 신돈을 떠받들었다고 하며, 혹은 ‘문수의 후신’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그만큼 신돈이 추진한 개혁을 환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신돈의 개혁 조치는 권문세족 중심의 불교 세력과 입장을 달리하며 성장했던 그가 선택한 당연한 길었는지도 모른다. 신돈의 개혁은 왕과 백성들의 폭넓은 지지는 받을 수 있었으나 신돈에 의해 개혁의 대상으로 몰린 권문세족의 불만은 날로 심화되고 정치적 기반이 얕은 신돈을 모함하여 숙청시킨다. 결국 신돈이 죽으면서 공민왕마저 권문세족을 견제할 힘을 잃고 그 역시 권문세족에 의해 독살이 되는 비극에 처하게 된다.

 

신돈은 분명히 권문세족에 맞서 개혁을 펼치던 개혁 정치가이지 고려의 멸망을 가져온 요승이 아니다. 오히려 고려의 멸망은 신돈을 제거한 권문세족으로부터 나온것은 아닐까? 후일 조선 건국의 주도세력들도 신돈이 추구했던 개혁에서 그 방향성을 찾았다고 하니 그의 개혁은 당시 너무나 획기적이였던 것 같다.

 

방영 : MBC 매주 토요일, 일요일 밤 9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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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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