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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명절과 불교이야기 ⑥ - 부처님 오신날

  • 입력 2007.05.21
  • 수정 2024.11.23

우리 불가(佛家)의 가장 큰 명절로는 ‘부처님오신날’을 들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어머니 마야부인의 몸을 빌어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신 이 날이야 말로 우리 불자들에게는 가장 기쁜 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부터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의례와 풍속이 전해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연등회(燃燈會)’를 들 수가 있습니다.

 

연등회는 본시 불교이전부터 전승되어 왔던 놀이문화였는데 불교가 전래된 이후 불교의 등공양(燈供養) 전통과 접목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불교적인 의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시대부터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성격이 더해져서 더욱 성대하게 치러졌으나 조선시대로 오면서 국가적 차원에서는 기념하지 않았고 ‘사월초파일'이라 하여 민간의 대표적인 전통명절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월초파일’의 대표적인 풍속으로는 ‘연등(燃燈)’과 ‘관등(觀燈)놀이’,‘호기(呼旗)놀이’등을 들 수 있고 불교의례로는 ‘관불(灌佛)의식’과 ‘육법공양(六法供養)’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지면성격상 의례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생략하기로 하겠습니다.

 

연등(燃燈)은 말 그대로 다양한 모양의 등(燈)을 만들어 불을 밝히는 것으로 오늘날 연꽃모양의 등(燈)을 지칭하는 ‘연등(蓮燈)’이란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연등과 관련된 풍속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나 「열양세시기」 등 각종 세시기(歲時記)에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오늘날 모습과 비교해볼 때 독특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절에서만 등을 달지만 옛날에는 사월 초파일이 되면 절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등을 달았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관청이나 시장의 상가들도 모두 등을 달았는데 모두가 등간(燈竿: 등을 다는 장대)을 세우고 그 위에는 비단이나 면포를 잘라서 꽂았고 깃발 밑에는 갈고리가 달린 막대기를 가로 대고 또 갈고리에는 줄을 얹어서 줄의 좌우 끝은 땅 위에까지 내려오게 하였다고 합니다. 밤이 되면 등에다 불을 켜는데 많이 달 때는 십여 개의 등을 달고 적게 달 때는 3, 4개의 등을 매달았다고 하며 일반 민가에서는 아이들 수대로 매다는 것이 관례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매단 등에 불이 켜지면 온 시가지가 환히 밝혀지고 축제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이런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것이 ‘관등놀이’입니다.

 

서울에서는 특히 남산(南山) 잠두봉(蠶頭峯)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일색이라 하여 효심 깊은 자식들이 늙은 부모를 업고 잠두봉에 올라 관등놀이를 했다는 설화들이 상당히 많이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남산 잠두봉은 오늘날 남산케이블카를 타는 승강장 부근으로 마치 누에고치 머리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이 날만은 나라에서도 야간에 통행금지하는 것을 해제하여 밤새도록 사람들이 오가는데 악기를 연주하거나 등을 들고 제등행렬(提燈行列)을 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종로와 조계사 일원에서 벌어지는 ‘연등축제’는 바로 이런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초파일이 되면 만드는 등(燈)의 종류도 오늘날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다양했는데 자손번창을 빌면서 씨앗이 많은 수박, 참외 모양의 등(燈)을, 자식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잉어등을 만드는 등 각자 소원하는 바에 따라 등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연화· 목단(牧丹)등과 같은 꽃등, 종· 북· 누각(樓閣)· 화분· 가마· 병· 항아리 등의 기물(器物) 모양의 등(燈), 용·봉황·학·잉어·거북·자라·오리·닭 등의 동물(動物) 모양의 등(燈)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등을 만들어 달았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민요로도 등을 노래하였는데 ‘등타령’이 그것입니다. 일부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요모조모 만화등은 채전밭을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둥글둥글 수박등은 채전밭을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오그라졌다 자라등은 짚은(깊은)한강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목 짧다 자라등은 백사지(白沙地)를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얼쑹달쑹 호랑등은 첩첩산중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꼬부랑 꼽작 새우등은 얼렁이(어레미) 구녕 왜마다고

저리나 껑충 걸리셨나

목 길다 황새등은 논틀 밭틀 왜마다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팔팔 뛰는 숭어등은 서해바다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넓적하다 붕어등은 둠벙강을 엇다두고

저리나 높이 걸리셨나

 

(* 어레미 : 구멍이 큰 체)

 

 

다음으로는 ‘호기(呼旗)놀이’를 들 수 있는데 이는 초파일이 다가오면 어린 아이들이 등을 다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장대에다가 종이를 잘라 기를 매달고 거리를 누비면서 쌀이나 돈, 면포를 염출한 풍속을 말합니다.

 

「고려사」<공민왕 13년 조>에 보면 ‘우리나라 풍속에 4월8일이 석가모니 탄신일이므로 집집마다 연등을 다는데 이 날이 되기 수십일 전부터 여러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대에 작대기를 매달아 기를 만들고 두루 장안의 거리를 누비면서 쌀이나 돈을 요구하여 그 비용으로 삼으니 이를 호기(呼旗)라고 한다’고 하였고 공민왕도 베를 내주었다는 기록이 있어 매우 오래된 전통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 와서도 여전히 널리 행해졌다고 합니다.

 

한편 초파일을 전후로 사찰부근에는 참배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임시 장터가 열리고 이곳에서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이나 군것질거리를 팔았는데 부모를 따라 나온 어린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초파일이 어린이날이었던 셈이지요. 오늘날에도 어린이날과 ‘부처님오신날’이 같은 달에 있는 것을 보면 우연치고는 전통의 계승이 절묘하다고 하겠습니다.

 

아울러 초파일이 되면 아기부처님을 목욕시켜드리는 의식을 행했는데 이를 ‘관불(灌佛)’이라 합니다. 관불은 부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하늘위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향기로운 물을 입에 머금고 나타나 아기부처님을 목욕시켜드렸다는 경전 근거에서 비롯된 의식인데 전하는 기록에 보면 이렇게 관불할 때 사용한 물을 의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골고루 나눠 마셨고 집에 환자가 있을 경우 이를 가져다 마시게 하는 풍속이 있었다고 합니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어린이의 마음이 곧 부처님 마음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우리 모두 어린 시절의 동심으로 돌아가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이해타산에 젖은 어른들의 마음을 버리고 순진무구한 어린이의 마음을 지닐 때 우리 모두의 마음마다 부처님이 태어나신 것은 아닐까요?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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