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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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명절과 불교이야기 ⑫ - 팔관(八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은 대개 음력 10월경으로 겨울절기인 입동(立冬), 소설(小雪)이 드는 달로 오늘날에는 특별히 기리는 명절절기도 없어 이때 즈음의 날씨처럼 스산하게 느껴지는 달입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음력 10월을 상달이라 하여 크게 반겼는데 상달맞이 고사도 지내고 조상님들을 기리는 시제(時祭)도 지내는 등 우리 조상님들은 여느 달과 달리 중요하게 여긴 달이었습니다. 상달이란 말도 일 년 중 가장 윗달(上月)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고, 고대에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舞?), 부여의 영고(迎鼓) 등 제천행사(祭?行事)를 지낸 역사적 사실 등에서 10월 상달을 중요하게 여겼던 선조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최남선이「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에서,
"상달은 10월을 말하며, 이 시기는 일 년 내 농사가 마무리되고 신곡신과(新穀新果)를 수확하여 하늘과 조상께 감사의 예를 올리는 기간이다. 따라서 10월은 풍성한 수확과 더불어 신과 인간이 함께 즐기게 되는 달로서 열두 달 가운데 으뜸가는 달로 생각하여 상달이라 하였다."라고 풀이한 것에서도 이런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달에는 예로부터 무수한 종교적 행사가 전승되어 왔는데 앞서 말한 고대 제천의식이 이어져 고려 때에는 팔관회(八關會), 조선시대 민가의 고사 혹은 안택의식, 그리고 오늘날의 상달고사로 이어지지 않았나 짐작됩니다.
이 중 팔관회는 오늘날에는 전승되고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에는 10월 상달을 대표하는 가장 성대한 행사였다고 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팔관회는 서기 551년(진흥왕 12) 처음 시행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미 신라시대 때부터 행해져 왔음을 알 수 있는데 국가의례로서 가장 성행한 것은 고려시대였습니다. 팔관회에 관한 고려의 관심이 얼마나 컸는지는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의 훈요십조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지극한 관심은 연등(燃燈)과 팔관(八關)에 있다. 연등은 부처를 섬기는 것이요, 팔관은 천령(?靈) 및 오악(五嶽) 명산(名山) 대천(?川) 용신(龍神)을 섬기는 것이다. 후세의 간신들이 건의하여 증감하려는 것을 일체 금지하라. 나 역시 당초에 맹세하기를 이 행사날을 국가 기일(忌日)과 상치되지 않게 하고 군신이 함께 즐기기로 하였으니, 마땅히 조심하여 이대로 시행할 것이다.” - 『고려사』권2, 세가2, 태조 26년 4월 태조 훈요 십조 중 6조
아울러 고려시대에 행해진 팔관회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고려사에 나타난 기록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태조 원년 11월에 유사(有司)가 말하기를, ‘전주(前主)는 매해 중동(仲冬)에 크게 팔관회를 설하여 복을 빌었사오니 빌건대 그 제도를 따르소서.’하니, 왕이 이를 받아들여 드디어 구정(毬庭)에 윤등 일좌를 두고 향등을 사방에 나열하였다. 또 채붕 둘을 맺었는데 각각 높이가 5장(丈)이 넘고, 가무백희를 앞에서 보였는데 그 사선악부(四仙樂府)와 용, 봉, 상(象), 마(馬), 거(車), 선(船)은 모두 신라의 고사(故事)였다. 백관이 포홀(抱笏)로 행례하니 보는 자가 도성을 기울였고, 왕이 위봉루에서 이를 보았다. 해마다 상례로 하였다.”
라고 한데서 알 수 있듯이 상당히 화려하고 성대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례로 행사를 위해 임시로 지은 커다란 누마루인 채붕의 높이가 20m나 되었다고 하니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이었음을 생각할 때 그 규모와 성대함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팔관회는 조선시대로 오면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상달 고사로나마 그 흔적을 헤아릴 뿐이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한편 팔관회가 사라진 10월 상달에 조선시대에는 재미있는 풍속이 있었는데 우유로 만든 타락죽(駝酪粥)을 임금님과 70세 이상의 늙은 정승들에게 올렸다고 하는 ‘타락진상’이 그것입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紀)에 보면“내의원에서는 10월 삭일부터 정월에 이르기까지 우유락을 만들어 국왕에게 진상하고, 또 기로소(耆老所)에 보내 기신(耆臣)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궁중의 내의원에서 매년 10월 상달이면 이듬해 정월까지 지금의 서울 종로구 창신동지역인 낙산에 있었던 목장에서 우유를 채취하여 이것으로 죽을 만든 후 임금님께 올렸는데 임금님만 드신게 아니라 정 2품 이상의 벼슬을 했던 늙은 신하들에게도 나누어 먹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로소(耆老所)에서 기(耆)는 70세 이상의 노인을, 로(老)는 80세 이상의 노인을 말하는데, 장유유서의 유교적 질서를 강조했던 조선시대에는 건국초기부터 이를 설치하여 운영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10월부터일까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데 음력 10월을 겨울의 시작으로 여겼기에 기력이 부족한 노인들이 춥고 힘든 겨울 계절을 잘 이겨내시라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고려시대에는 팔관회가 열렸고, 조선시대에는 타락진상의 노인공경이 시작된 10월 상달은 여러 가지 뜻깊은 의미가 깃든 달인데 특히 불가에서는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입니다.
동안거가 시작되면 스님들을 비롯해서 신심 깊은 재가불자들도 각처의 선방에 들어가 3개월 동안 깨달음을 향한 용맹정진을 시작하는데 동안거 수행의 뜨거운 열기는 추운 겨울날씨도 비켜갈 정도라고 합니다.
아울러 10월하면 예로부터 김장 등 겨울준비를 빼놓을 수 없는데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에서 옛 풍속의 정취를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시월은 초겨울이니 입동 소설 절기로다
나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사일 끝났구나
남의 일 생각하여 집안 일 먼저 하세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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