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문화

이주의 화두 - 짝 사랑(상사화)

  • 입력 2011.10.04
  • 수정 2024.11.23

그대(Buddha)를 죽도록 사랑합니다.


 

 

아주 오랜 태초부터 부처님 성전에 숨겨진 꽃 대궐이었을 꺼다.

아지랑이 피는 이른 봄, 는개비 흩날리자 진분홍 진달래, 철쭉 발갛게 피어

벌 나비 숨겨 줄 때에도 아마, 너는 가까이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을 텐데,

나는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 가장 따사로운 그림자 길게 늘어지던 나른한 오후,

긴 하품을 하고 골방으로만 처박히던 흐린 날들_.

 

페가소스 별빛 찾아 남녘, 기차 내려 암자를 오르던 고샅길 가

거긴 들풀 너그러이 자라 아이 키 비웃듯 춤을 추는 자작나무, 물푸레,

산 언저리 언저리마다 달맞이꽃, 마타리, 개망초가 지천으로 피고

연지처럼 곤지처럼 비를 내리던 칡 꽃, 산 싸리 꽃잎들...

내가 친해지려 애쓰던 것들이 거기 그렇게 살고 있었건만,

지척이 더 멀어 있었나 보다.

 

볼그족족 예쁜 싹 피우고 누가 밟을까, 행여 지나칠까, 바람에 넘어질까,

마디 매듭지어 기둥하나 겨우 세워 촘촘히 정성을 쌓아 가기 시작했다.

 

모래땅에 넘어지지 않게 주춧돌 올려 아늑한 이불로 바닥을 덮고,

휑한 바람 잘 지나도록 여백도 두고, 그늘 다 가리지 않게 햇볕 좀 흘려 주고,

한 층 더 올려 금단, 은단, 망울 달고 몇 일 쯤은 살아 보다,

붉은 색실 수를 놓아 귓 볼에다 꽃술 달고 앙큼하게 새침 떨면,

그대 내게 달려오다 토라져서 돌아갈까, 홍등 몇 개 밝혀 두고,

까치발로 돋움하고 빼꼼이 하늘을 훔쳐본다.

 

벌 나비 하나 오면 쓰러질까, 밤이슬 짙게 깔리면 뒤뚱뒤뚱, 꽁당 꽁당, 안절부절.

 

보고픔       구름 한 폭

안타까움    햇볕 한 줌

미움          바람 한 줄

증오          그늘 반 섬

그리움       모레 억 개

이별          찬비 점 점

 

작은 품에 나를 안고 어느새 혼자서 사랑을 태우고 있다.

 

 

 

2011.10.1 선운사에서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