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계사 뉴스

조계사 뉴스

문화

백제의 미소를 따라

  • 입력 2011.12.28
  • 수정 2024.11.24

불교성지 서산 아라메길 순례① 서산마애삼존불~보원사지


▲ 서산마애삼존불 오름길 계단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가 문제라 한다.
사랑은 낡을수록 멋지고 시간은 살아 있을 때만 흘러간다.

길 나그네는 카메라에 의지한 채 지난여름 방생법회 때 만났던 그 살아 있는 천 년의 미소가 그리워 잔설 깔린 백제의 옛길을 더듬어 우리 불교문화의 특구 내포 가야산자락을 다시금 오른다.

싱그러운 초록의 색깔로 그늘 짙던 그 여름 나무들은 어느새 가지만 남긴 채로 스스로 몸을 낮춰 겨울을 준비하는 듯 움츠리고 섰다.

반김도 반가움도 허례인 줄 아는 양 도열해 선 채로 묵언이다.
절간의 나무쯤 되면 초목도 세상을 통달한 듯 마음 편하게 한다.

잡념을 쓸어가며 돌계단 된비알을 한걸음씩 숨 고르며 오른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힐 즈음 머리에 닿을 듯한 나지막한 문 앞에 당도한다.

▲ 서산마애삼존불 불이문

절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중 마지막 문이라는 불이문이다.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상태를 초월하여 절대적이고 평등한 진리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상징하는 문- 이라는데…….

언젠가 들은, 구도 여정은 삶에 대한 무상과 덧없음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출발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니 집착할 거리가 못 된다는 선각자의 불교적 인생관이 떠오른다.

글쎄다, 아직은 그 심오한 깊은 뜻을 알 길이 없지만, 진리의 세계로 향한 둘이 아니라는 좁은 문은 수문장인 양 땀 밴 이마를 닦아줄 듯 허공 향해 활짝 길을 연다.

▲ 서산마애삼존불

 

그 허공 틈으로 절벽을 등지고 천여 년의 세월을 지켜온 정겨운 세분의 불상이 그리움으로 찾은 길손을 환한 미소로 맞아준다.


▲ 여래입상은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설명에 따르면, 가운데 연꽃잎을 새긴 대좌 위에 서 있는 여래입상은 살이 오른 얼굴에 반원형의 눈썹, 살구씨 모양의 눈, 얕고 넓은 코, 미소를 띤 입 등을 표현하였는데, 전체 얼굴 윤곽이 둥글고 풍만하여 백제 불상 특유의 자비로운 인상을 보여주며, 햇빛의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과 표정이 달라 보인다고 한다.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있으며,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서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으로 우수함은 물론 과학적 치밀함에도 감탄을 자아낸다고 한다.

반가상이 조각된 이례적인 이 삼존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현재의 석가, 미래의 미륵, 과거를 표현한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로 추정된다 하는데, 동지 때를 맞춰 일부러 찾아온 발걸음이건만 초불자여선지 오늘도 그런 미학적인 행운은 햇살이 도와주지 않아 그늘진 미륵반가사유상의 그늘진 얼굴로만 만족해야 했다.

발견 당시 큰 마누라 작은 마누라라고 표현했다는 시골 농부의 순박한 말처럼 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쪽의 보살입상, 왼쪽의 반가사유상의 조각이 돌부처도 등을 돌린다는 시앗(?)이건만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한 시공을 초월한 탓인지 너무도 친근하게 다가선다.

아쉬운 미소를 뒤로하고 다시 비탈 돌계단을 내려와 길을 더듬는다.

▲ 아라메길

 

백제 불교가 중국으로부터 도래될 때 거쳤을 법한 가야산 아래 내포 길을, 최근 서산시에서‘아라 메’라는 이름으로 둘레 길로 개발하여 트래킹 코스로 각광 받고 있다는 길을 따른다. 바다의 고유어인‘아라’와 산의 우리말인‘메’를 합친 말로서 바다와 산이 만나는 서산지역의 특색을 갖춘 자연을 나타내는 친환경 길 이름이다.


지난여름 숲 터널을 이뤘던 용현 계곡을 따라 거슬러 오르자 우리 조계사에서 마애삼존불 성역화와 더불어 복원사업을 추진 중인 사적 제316호로 지정된 보원사지가 나타난다.

 

보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창건, 고려 초에 이르러 중창된 웅장한 규모의 사찰이었으나, 고려 말 이후 억불 정책에 의해 조선 초에 폐사되어 창건연대와 소멸 시기는 기록된 문헌이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 발굴 중인 보원사지

폐허 된 절터는 모두 경작지로 변하였으나 기왓조각 등이 넓게 산재해 있어, 많은 건물들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최치원(崔致遠)이 쓴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에 따르면, 화엄사·해인사 등과 더불어 신라 10산의 10사찰의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단다.

▲ 보원사지 5층 석탑

널따란 대가람의 터전 위에, 5층 석탑을 비롯해 당간지주, 법인국사 보승탑비 등 고려 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석조물만이 영광을 잃어버린 채 황량하게 현존하고 있다.

2006년부터 12년 계획으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라니 제대로 된 문화유산의 보존과 역사적 진실에 접근하는 자료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 가야산 내포 숲길 안내 이정표

갑자기 차가운 바람 한 점이 잃어버린 역사를 깨우려는 듯 계곡을 타고 흐른다.
황량한 마음 한구석 텅 빈 허전함을 서둘러 채우고자 개심사 길로 발을 재촉해본다.
 
* 참고 : 서산 아라메길
바다와 산 그리고 백제의 미소, 아라메 길
서산 아라메길은 현재 조성 중에 있습니다. 많은 길 중에서 개통된 길은 1코스 랍니다. 총 13km에 이르는 오솔 길로 약 4시간 정도가 소요 되는 길입니다.

 

* 온화한 백제의 미소와 함께 걷는 길, 서산 아라메 길 1코스 이정표
: 마애여래삼존불상(0) → 방선암(0.2㎞) → 보원사지(1.5㎞) → 임도(3.3㎞)→ 개심사입구(4.8㎞) → 개심사(5.6㎞) →개심사주차장(6.1㎞) → 해미향교(11.6㎞) → 해미읍성 동헌앞(13.0㎞)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저작권자 © 미디어조계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