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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불교 문화재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청룡사

  • 입력 2012.02.05
  • 수정 2024.11.23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각성을 촉구한다.

▲ 삼각산 청룡사 정문

서울시 창신동에 있는 청룡사 동망봉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가 아침저녁으로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곳이다. 영조 47년, 영조가 친히 '동망봉'이라는 글을 써 바위에 새기게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채석장이 되면서 바위가 깨져나가 글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청룡사는 고려 태조 때 도선국사의 유언으로 창건되었으며, 비구니 사찰로 ‘비보사찰(裨補寺刹)’이다. 비보사찰이란 고려시대, 이름난 곳이나 명산에 절을 세우면 국운을 돕는다는 도참설과 불교 신앙에 따라 세운 절을 일컫는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비보사찰이 약 3,800개나 있었다 한다.

▲ 청룡사 대웅전

청룡사는 한때 그 이름을 빼앗기고 ‘정업원’이라 불렸다고 한다. 정업원이란 왕실이나 권력가의 여인들이 출가하여 사는 도량이다. 훗날 수인스님에 의해 중창된 이후 영조가 어명을 내려 청룡사란 이름을 되찾았다.

청룡사의 보물은 명부전과 명부전 안에 모셔진 ‘석조불좌상’, ‘청룡사석지장시왕상’, ‘청룡사탱화’들이다. 모두 서울시 유형문화재들이다. 그런데 홀대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 명부전 지붕에 비닐을 씌워 놓은 모습

청룡사의 규모나 선방을 보면 작은 절이 아닌 것 같은데, 한켠이 허물어져 아파트 출입구가 되어있다. 대웅전과 명부전 옆에는 개인주택이 붙어 있다. 명부전은 지붕이 허물어진 것을 복구하지 않고 비닐로 덮어 놓았다.

청룡사의 스님들이 명부전에 있는 보물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시에 명부전을 수리하자고 요청했으나, “보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느냐.”라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새삼 오늘날의 불교 문화재의 현주소를 느낀다.

▲ 절 뒤쪽에 아파트 정문이 보인다. 절터 반쪽이 날아갔다.

그나마 이렇게 청룡사를 살릴 수 있었던 것도 청룡사 비구니 스님이 종로구청 등 사방으로 뛰어다닌 덕분이다. (원래 공사 계획에는 청룡사 터를 아파트 공원으로 만들 생각이었다고 한다. 정업원이 통째로 날아가는 것을 막은 것이다.)

청룡사 옆의 낙산공원은 깨끗이 단장을 해놓고, 정작 중요한 문화재는 이렇게 방치하는 모습에 울분을 느낀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의 각성을 촉구한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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