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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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인연의 끈, 그리고 가피
▲ 박향선 보살(가운데)과 든든한 도반인 자매들
1월, 또 하나의 출발선 앞이다. 365일을 한 해로 묶어 놓은 그 이치를 헤아려본 적 없는 사람이라 해도 한 해의 끝이나 시작 즈음에는 새삼 자기 삶에 진지해지거나 철학적이 된 다. 무심코 흘려보내던 시간에 잠시 쉼표를 찍고 지난 삶을 되돌아보거나 새로운 꿈을 품 기도 한다. 이번 호부터 조계사 도량에서 가족 또는 친구와 도반이 되어 함께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불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 박향선 보살이 자매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미소짓고 있다
국어사전에서는 ‘도반(道伴)’이란 말을 ‘함께 도를 닦는 벗’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도반, 참 좋은 말이다. 수행하는 이에게 같은 목적지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길동 무, 즉 도반은 스승 못지않게 중요한 존재다. 함께 기도하고 수행하는 벗이나 자신을 불교로 이끈 벗이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박향선(55) 보살은 그런 의미에서 도반이 많은 사람이다. 부모 형제들이 그이를 부처님께로 향하게 한 도반이고, 혼인을 하고 나서는 아들과 남편의 어려움이 그 의 신심을 단단하게 해주는 도반이 되었다. 하지만 그이가 손꼽는 가장 큰 도반은 특이하게도 부처님의 ‘가피’다.
“1988년 불교를 알게 되고부터 제게 부처님의 가피가 내리지 않은 순간은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닫게 되지만요. 어려울 때 간절히 기도하 면 없던 힘도 생기고 명예도 돈도 부러워하지 않을 신심도 생겼어요. 그러니 굽이 굽이 만나는 어려움이 제게는 도반이고, 가피였던 것이지요.”
▲ 탑돌이를 하는 박향선 보살과 두 동생들
어려움을 만나면 더 단단해지니
어려움 또한 도반
다섯 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박향선 보살은 어린 시절을 진주에서 보냈다. 그리고 대 학을 졸업할 때까지 부산에서 살다가 혼인과 함께 1986년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까 지 그에게 불교는 풋풋한 대학 새내기 시절에 밤새 읽었던 한 권의 책에 들어 있었다. 당시 수필가로 유명했던 한 스님의 《옷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이라는 수필집이다.
마침 그 스님이 서울의 한 절에서 ‘생활불교’ 강의를 하고 있었 다. 그는 다섯 살짜리 아들 손을 잡고 낯선 길을 물어물어 그 절을 찾아갔고 6개월 넘게 강의를 들었다. 그해가 1988년이다.
“제가 가피라는 도반을 처음 만난 건 남편 덕분(?)이에요. 건강 하던 사람이 스트레스 때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후두에 이상 이 생겨 음식을 못 넘겼어요. 아들은 어리고 눈앞이 캄캄했죠. 서울대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치료하러 다니던 중에 대기실에 서 한 비구니 스님을 만났어요. 당시 학인이었던 그 스님께 크 게 위로받고, 탐진치 삼독에 빠져 바쁘게 사는 저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당시 동네 인근에서 영어와 수학 분야의 실력 있는 과외 선생 으로 통했던 그는 바쁜 만큼 절을 찾는 횟수가 뜸하던 차였는 데, 그 일을 계기로 다시 부처님을 찾게 되었다. 매달릴 분은 오직 부처님뿐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기도했고, 여섯 달쯤 지 나자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다.
“그때부터 남편은 직장에서 힘든 일이 생기면 제게 상의해요. 그러면 제가 ‘마음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기다려보세요’라 고 말해 주는데, 얼마 지나면 ‘우리 마누라님 말씀대로 되었네’ 라는 답이 돌아오지요. 금전적으로 유혹이 많은 공기업이라 ‘원리원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제가 매번 못을 박아요. 제 기도 덕분에 진급도 하고 무탈하게 잘 다닌다며 무척 고마워하죠.”
세상을 달리 보게 하는 힘,
‘의법(依法)’
가지 많은 나무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고 했던가? 7년 전 어 느 날, 국내 최고 기업으로 손꼽히는 직장을 그만두고 독립해서 벤처기업을 차린 남동생의 사업이 망했다는 소식을 들 었다. 조계사 마당에서 만난 동생은 보기에 딱할 정도로 초 췌한 차림이었다. 텅 빈 동생 지갑에 5만 원을 채워 주면서 “이 회사에 입사 원서 넣어 봐라. 누나가 어떡하든 취직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며, 신문에 난 대기업 사원 모집 공고문을 들려서 보냈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겼는지 자신도 모를 일이었다. 당시 남동생 나이로는 재취업이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 었다. 스님을 찾아가 사정 얘기를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그 런데 정말 믿기지 않을 일이 일어났다. 남동생이 그 회사에 취직이 된 것이다.
아무 연줄도 없이 정식 입사 과정을 거쳤던 그 일이 있고 나 서 명문 대학 출신으로서 평소에 상이 높았던 그 동생이 큰 누나 앞에서는 겸손해졌단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동생 손에 염주가 들려 있게 된 것도 그때부터일 것으로 그는 짐작한다. 여동생도 억울한 일을 겪으면서 그의 권유로 불자가 되는 등, 친정 부모님을 비롯해서 동생 넷 모두 부처님 법을 믿고 따 르는 그의 도반이 되었다.
▲ 초공양을 올리는 박향선 보살과 동생들
“삼독에서 벗어나면 가피가 와요. 돈이나 명예가 허망하고 헛 된 것인 줄 알면 조금도 부럽지 않지요. 그것이 지혜가 아니 겠어요. 우리도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도와주고 싶고 잘되 기를 바라는데, 삼독을 벗어난 사람에게 왜 가피가 없겠어 요. 부처님 법에 의지하면 세상의 이치가 바르게 보여요.”
그 의법(依法)의 힘을 그는 여러 번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저만큼 가피를 많이 입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 술술 나온다. 미국에서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있는 외동아들 얘 기를 꺼내는 그의 얼굴이 또 한 번 환하게 빛난다.
“사실 아들 입시기도보다 더 간절한 기도가 있겠어요. 그만큼 제게는 큰 공부가 되었고요. 하나뿐인 자식도 부처님 법을 깨닫게 해주는 소 중한 도반인 셈이지요. 사시기도에 맞춰 매일 2시간씩 《법화삼부경》(총 9권)을 사경하고 있는데, 손가락에 못이 박혔어요.(웃음) 물론 아들 생각을 간절하게 하 죠. 며칠 전 사경을 마치고 아들 사진을 보면서 ‘공부 마치고 와서 나라 위해 큰일 을 하세요!’라고 기도하는 도중에 아들이 전화해서 ‘학위 따고 돌아가면 공직에서 나랏일하고 싶어요’ 하는 거예요. 참 신통하죠?(웃음)”
▲ 박향선 보살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밝게 웃고 있다
원을 세우면
이루지 못할 일 없어
요즘 남동생이 병석에 누워 있다. 그 동생을 어떻게 구제해야 할까, 고민이 깊다. 병실에서 염주를 돌리고 있는 동생의 뒷모습을 보면서 ‘부처님밖에 없다’는 생각 을 또 하고 있다. 조금 방심하면 느닷없이 덮치는 너울성 파도처럼 중생의 삶은 고통의 바다임을 이렇게 또 깨닫는구나 싶다. 깨쳐야 할 큰 화두에 눈앞이 탁 가 로막힌 심정이다.
하지만 박향선 보살에게는 도반이 있다. 부모님과 네 명의 동생, 그리고 머나먼 미국 땅에서 손목에 찬 염주를 보며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는 아들도 있다. 그 도 반들에게서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이겨낼 힘을 얻는다. 원을 세우면 이 루지 못할 일이 없음을 그는 이미 알고 있다.
“불교를 몰랐다면 제 삶이 어땠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요. 작은 어려움에도 많이 흔들리겠죠. 자신감도 없고 세상일에 물들면서 흘러가고 있을 거예요. 바르게 살 게 하는 원동력이 제게는 불교예요. 불교로 인해 제 삶이 풍요로워졌고 평화로우 니까요.”
사람들은 대부분 좋으면 ‘거머쥐려(탐욕)’하고, 싫으면 ‘밀쳐내려(성냄)’고 한다. 그 런데 그런 원인에 따른 결과에는 항상 고통이 뒤따른다. 이 이치를 몰라 욕심내고 성을 내므로 이것을 어리석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좋은 것에도 나쁜 것에도 집착하지 말고 그대로 바라보라고 하셨다. 혹여 너무 넘친다고 느끼는 가피가 그 에게 집착이 되는 건 아닐까?
“집착하지 않아요.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는 말씀, 불교의 지혜가 함 축된 말씀이잖아요. 가피는 제 자력신앙의 확인일 뿐이죠. 수행 잘하고 있구나 하는 확인이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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