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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큰 가피가 있을까

  • 입력 2014.11.01
  • 수정 2024.12.20

다섯 시누이와 외올케, 여섯 도반의 이야기

 

▲ 다섯 시누이와 외올케, 우리는 도반사이 

 

“얘들아! 오늘 조계사로 모여라.”

여섯 형제의 맏이인 문명옥(75, 광덕화) 보살이 전화 메시지를 보낸다. 나머지 다섯 도반 즉, 둘째 문명순(67, 광덕행, 신도회 부회장) 보살을 비롯해서 셋째 문명애(63, 정명월), 올케 김춘미(57, 성심화), 다섯째 문명희(58, 금련화), 그리고 막내 문명숙(55, 다보행) 보살이 수신자들이다. 한 번 명령(?)이 하달되면 별일이 없는 한 여섯 명 모두 출동해서 합체合體하는 게 이 도반들의 불문율이다.

형제들 사이에 어쩌다 서로 조금 섭섭한 일이 있었더라도 절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화해를 해야 한다. 그렇지 못했을 때는 절에서 만나 같이 기도하고 밖에 나와 점심 먹고 차 마시다 보면 꼬인 감정이 자연스레 풀린다. 다섯 형제들 사이에서는 벌써 32년째 이어져온 일이고, 올케 성심화 보살에게도 이제 익숙해진 일이다.

 

 

▲ (왼쪽부터)첫째 문명옥 광덕화 보살, 둘째 문명순 광덕행 보살, 셋째 문명애 정명월 보살

 

▲ (왼쪽부터)다섯째 문명희 금련화 보살, 막내 문명숙 다보행 보살, 올케 김춘미 성심화 보살(넷째)

 

명쾌, 상쾌, 유쾌한 여섯 도반,

기도도 불사도 뭉치면 안 되는 일 없어!

 

다섯 시누이와 외올케, 여섯 도반을 함께 만난 불교대 회의실에는 거의 5~6분 간격으로 와르르 웃음꽃이 흐드러졌다. 작은 어둠도 격의도 없는 그들 사이에서는 핏줄보다 진한, 따사롭고 익숙한 그 무엇이 느껴졌다. 한핏줄도 형제가 여럿이면 아롱이다롱이라는데, 이 여섯 도반은, 깊은 불심은 물론 유복한 생활 형편과 쾌활한 성격, 후덕한 마음 씀씀이까지 정말 하나같이 많이도 닮았다. 어느 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크게 처지거나 많이 넘치지도 않으니, 그 또한 형제들의 큰 복이라면 복이다.  

이처럼 명쾌, 상쾌, 유쾌한 여섯 도반이 한 번 마음먹고 합체하면 아무리 큰 불사도 척척, 손발이 맞아 이루지 못한 불사가 없단다. 절에서 함께 기도하다가 무언가 부족한 게 눈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저 불사는 제가 하겠습니다” 하고 운을 떼는 건 늘 둘째 광덕행 보살이다. 그러고는 본인이 불사금 반 정도를 통 크게 보시하고, 나머지를 다른 형제들에게 맡긴다. 그러면 누구도 토를 달지 않고 딱 나누어서 불사를 마무리하는 게 그들 나름의 불사 방식이다.

 

“저희 형제들 모두 큰 굴곡 없이 평생 살아온 것이 각자 ‘내 힘이 아니었음’을 조금 일찍 깨달은 덕분이죠. 인생 사난득四難得, 만나기 어려운 네 가지 가운데 하나인 부처님 정법을 만났고, 또한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 바르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 그 큰 복덕을 어찌 회향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여섯 형제는 다섯 째 금련화 보살이 캐나다로 이민 가 있었던 10년2008년 귀국 정도를 빼고는 늘 같은 절에서 같은 스님의 지도를 받으면서 한 몸처럼 수행하고 기도하며 도반으로 살아 왔다. 

 

 


큰 스승 정일 스님에 이어

가을 국화 향처럼 찾아온 인연, 조계사

 

덕숭산 정혜사 벽초 경선碧超 鏡禪, 1899~1986 스님이 어머니를 비롯해서 가족을 불교로 이끈 첫 스승이라면, 남산 정일南山 正日, 1932~2004 스님은 부처님 말씀을 공부시키고 실천하게 이끌어준 스승이다. 만공 스님의 제자 벽초 스님은 ‘선농일여禪農一如’를 평생 실천하면서 수덕사를 중창해서 오늘의 규모로 일구었고, 행으로써 후학들을 가르쳐 보현보살의 화신으로 칭송받은 분이다.

1979년부터 우이동 보광사에 주석했던 정일 스님 또한 상좌들에게 ‘중단 없는 수행’을 강조하면서 칠십 대까지 회초리를 든 엄격한 스승이었고, 재가자들에게는 경전을 수백 번씩 읽히고 화두를 참구하게 하는 등, 신도교육을 체계화한 자상한 스승이었다.

 

“13년 간 벽초 스님께 공부하러 먼 길을 다녔는데 어느 날 ‘내게 더 머물면 해태해지기 쉽다’ 하시면서, 저희들에게 보광사 정일 스님을 찾아가라고 하셨어요. 그 큰 뜻을 다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정일 스님을 뵙고는 첫눈에 이끌려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했지요.”

 

정일 큰스님의 신도 교육은 어지간한 각오 없이는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21일 동안 하루 1천 번씩 광명진언 외우는 것을 시작으로, 지장경 300독, 금강경 100독, 관세음보살보문품 50독, 선가귀감 50독, 원각경 300독, 법화경 30독 등을 차례로 다 마쳐야 하는데, 단계별로 점검해주고 천도재도 올리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선가귀감 50독을 마치면 비로소  ‘이뭣고’ 화두를 주셨다. 여섯 도반은 이 과정을 모두 통과해 큰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일생에 스승 한 분을 만나기도 힘든데 두 분의 큰 스승을 만났으니, 복 중의 홍복이었죠. 17년 간 정일 큰스님께 공부했는데, 2004년 입적하시자 빈자리가 어찌나 허전한지 7~8년간 많이 힘들었어요.”

 

이런 마음은 맏언니 광덕화 보살뿐 아니라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호불호를 여의지 못한 중생인지라 그들에게 정일 스님이라는 큰 산이 떠난 자리는 너무도 컸다. 하지만 부처님 법을 공부하면서부터 늘 그랬듯, 시절인연이 그들을 조계사로 이끌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정일 큰스님이 1956년 금오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곳이 조계사였고, 캐나다 서광사 태응 스님이 귀국하는 금련화 보살에게 서울에 가면 다니라고 추천해준 곳도 조계사였다.

우연히 친구 권유로 조계사에 오게 된 광덕화 보살은 조상 황금 위패를 모시면서 흩어졌던 마음이 안정되자, 다른 형제들에게도 권해 모두 위패 봉안에 동참했다.

 

그렇게 4년 전부터 여섯 도반의 유쾌한 합체가 조계사에서 다시 시작되었다. 초하루, 보름,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한 달에 서너 번 이상, 조계사에서 만나 함께 기도하고 가까운 인사동에서 외식을 즐긴다. 이때 자발적으로 한턱 쓰는 건 형제들 사이에서 ‘억보살’로 불리는 둘째 광덕행 보살이다. 운영하는 회사가 잘 되어서 재력도 있지만 워낙 통이 커서 형제들이 붙여준 별명이란다. 

 

 

 

봉정암 가던 길, 그 신기한 가피

 

인생의 고비가 이 형제들만 피해 간 것은 물론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 무슨 복을 많이 지어서 저렇게 모든 형제들이 고루 평온할까?’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에게도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있었다. 광덕행 부회장은 아들이 열흘 간 원인 모를 병으로 의식을 잃어 그의 기도를 깊어지게 했고, 3년 걸려서 지장경 1천 번을 독송한 신심 깊은 셋째 정명월 보살은 위암 수술 후 광명진언의 위신력으로 위험한 순간을 넘겼다. 

‘열심히 형님들만 따라 다닌다’며, 내세에도 형님들을 만나 지금처럼 기도하고 보시하면서 살고 싶다는, 4대 독자 남편을 둔 올케 성심화 보살은 바이러스에 감염돼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다. 

한 번은 온 가족이 봉고차를 타고 봉정암에 가던 중, 대형 버스에 받혀 뒷좌석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린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모두 큰 부상 없이 무사한 일도 있었다.

 

“다섯 째 언니가 뒷좌석에 타고 있었는데, 사고 10분 전쯤 둘째 언니가 갑자기 앞좌석으로 넘어오라고 하는 거예요. 둘째 언니가 앞자리로 넘어와 보조석에 앉은 지 십 분쯤 되었나, 꽝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안에 연기가 자욱하고 뒷좌석은 아예 사라지고 없더군요. 연기 속에서 ‘지장보살!’ 하는 둘째 언니 목소리만 들렸어요.”

 

이 도반들이 멀리 출동할 때마다 운전대를 잡는 막내 문명숙 다보행 보살은 그때를 떠올리면서 아찔해 한다. 평소 어려운 사람을 보면 앞뒤 없이 돕고, 사찰 불사에 성심을 다하는 그들의 행에 따른 과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은 지장기도와 광명진언의 힘이라고 믿는다. 형제들은 광명진언을 입에 달고 살아서 화가 나거나 미운 맘이 생길 때 얼른 외우게 되고, 그러면 마음이 금세 가라앉는다고 한다. 마음 다스리는 법까지 통하는 도반들이다.

어려울 때마다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여섯 도반의 신심은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낙천적인 성격과 건강한 몸을 물려준 부모님과, 그들이 어릴 적 고향인 평남 강서군에서 초하루와 보름, 칠성 기도를 한 번도 빠뜨리지 않던 불심 깊은 할머니께 그 공덕을 돌린다.

 

중생의 삶에서 가족이 건강하고 물질이 풍요롭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나, 그 평온한 삶을 얻으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배운 대로 행하고 가진 만큼 보시하는 이 도반들의 행이야말로 그 이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진정 바라는 게 있으면 먼저 베풀어야 하는 게 만고의 진리이듯, 가을 국화의 진한 향기에는 며칠 후 시들어 떨어질 푸른 잎들의 마지막 노래가 담겨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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