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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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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회행사

‘성도재일 맞이 철야정진 법회’ 봉행

  • 입력 2018.01.23
  • 수정 2024.11.25

▲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인 성도재일을 맞아 조계사는 23일 저녁 9시 대웅전에서 ‘성도재일 맞이 철야정진 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성도재일 의미를 되짚으며 부처님의 15가지 깨달음을 주제로 법문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날인 성도재일을 맞아 조계사는 23일 저녁 9시 대웅전에서 ‘성도재일 맞이 철야정진 법회’를 봉행했다. 매서운 강추위에도 400여 명의 신도님이 동참하여,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정진하며 부처님이 이룬 성도의 의미를 되새겼다.

법회는 삼귀의례, 신묘장구대다라니 3독, 석가모니불 정근, 법문, 108배, 금강경 독경, 참선, 유미죽 공양, 촛불 참선 등으로 진행됐다. 사부대중은 나를 깨우는 108배를 통해 참회하고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참선하며 부처님처럼 선정에 빠져들었다. 자정에는 따뜻한 유미죽으로 몸을 녹였다.

 

이날 총무원장 설정 스님은 성도재일 의미를 되짚으며 부처님의 15가지 깨달음을 주제로 다음과 같이 법문했다.

 

부처님은 새벽에 떠오르는 샛별을 보며 성불하셨습니다. 샛별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진을 하다보면 정진의 힘이 성숙되었을 때 어떤 경계가 나타나도 깨달음은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부처님께서 깨달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부처님은 이 사바세계에 모든 생명이 겪고 있는 인연법칙을 따라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을까하고 왕궁을 떠나서 출가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잘 살기 위해, 행복하기 위해, 진실로 행복한 것을 찾기 위해, 왕국을 떠나 수도의 길에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바세계가 어떠한 곳이기에 그렇게 부처님도 힘들었고 사바세계가 무엇이기에 고해라고 했을까요?

 

우선 이 세계를 애욕의 세계라고 합니다. 애욕이라는 것이 잘못 빠져 들어가면 마치 수렁과 같아서 고통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사는 것이 불만스러워집니다. 무엇인가 모자라고 어떤 것을 해도 마음에 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더운 날에 물을 찾듯이 목마른 욕구가 항상 있습니다. 돈에 대한 목마름, 명예에 대한 목마름, 친구에 대한 목마름, 애정에 대한 목마름, 부모에 대한 목마름, 사회에 대한 목마름 등이 항상 나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우울증과 조울증은 여의치 못한 갈망에서 오는 겁니다. 그 다음에는 공포심입니다. 의구심도 엄습해옵니다. 항상 엄습합니다. 저것이 가짠가, 진짠가. 맞는가, 안 맞는가.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나, 싫어하나 하는 의구심이 항상 찾아옵니다.

 

그리고 시기심과 질투심이 또 일어납니다. 남이 잘하는 걸 못 봅니다. 항상 무언가, 누군가 없어서 헤매고 허덕이고 삽니다. 이것이 사바세계에 사는 보통사람들의 현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를 차안(此岸)이라고 합니다. 차안은 괴롭고 부자연스럽습니다. 괴롭고 어둡고 치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싶은 피안(彼岸)은 어떻습니까? 그곳은 고요하고 맑고 깨끗합니다. 자연스러우며 더 구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사바세계와 피안과 차안의 차이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것일까요?

 

잘 산다고 이야기 하려면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이런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선 구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항상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합니다. 구할 것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써도 써도 다함이 없는 것.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다함이 없고 근심과 걱정이 없는 겁니다. 원망과 분함이 없는 것입니다. 원망과 분함이 없이 인생을 살아간다면 행복하지요. 공포와 비애가 하나도 없으면 행복합니다. 시기와 질투 미움이 하나도 없는 사람 속에는 강제와 구속이 없습니다. 누가 나를 강제하고 구속하는 것이 없고 모든 것을 벗어나서 항상 자유스러운 것,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열반의 세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에 바로 이것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설산에 들어가 턱 앉아서 6년 동안 고행을 하셨습니다. 납월 아침에 별을 보고 우주의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보통 중생들은 언어로 표현을 합니다. 표정으로 표현합니다. 마음으로 생각으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생각 이전에 표현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생각 이전에 말로, 말 이전의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견성해야 알 수 있습니다. 말 이전에 소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그것을 언전소식(言前消息)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부처님은 깨달은 후에 우리에게 어떻게 표현하셨을까요? 깨달은 경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앞의 언전소식에 이은 두번째 깨달음은 일체승자(一切勝者)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깨달은 자라는 겁니다. 우주의 근본실상을 다 아는 것입니다.

 

이어 부처님의 세 번째 깨달음은 무염(無染)입니다.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은 어디든 걸리고 물들어버린 것입니다. 돈에 물들고 병에 물들고 애정에 물들고 오만 것에 물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일체의 것에 물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보살과 역대의 모든 조사와 선지식들 역시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았습니다.

 

네 번째 깨달음은 이사(離私)입니다. 모든 것을 떠나고 버렸다. 모든 것을 놔버렸다는 것입니다. 윤회의 근본은 집착입니다. 그것도 착각으로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 착각 때문에 노루가 무지개의 아지랑이를 보고 물인 줄 알고 쫓아가지만 물이 아니죠. 벌 나비가 여름에 환한 불빛을 보고 화려함에 달려갔는데 결국 불이 붙어서 다 타죽죠. 마치 중생들이 무엇인가 집착해 달려들었다가 결국은 그로인해 죽는 것처럼. 그런데 그것을 다 놔버리고 아주 떠나버리고 이사했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는 갈애가 없어졌다는 진갈애(盡渴愛)입니다. 중생이 가지고 있는 애정을 갈애, 목마른 애정이라고 합니다. 소금 먹은 놈이 물을 찾듯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만족이 없습니다. 결국 스스로 제 풀에 죽습니다. 그런 갈애가 다 없어지셨죠.

 

득해탈(得解脫)이 여섯 번째 입니다. 일체 구속에서 다 벗어나버린 것이 득해탈입니다. 명예·돈·애정·슬픔·미움·시기·질투에서도 다 떠나버렸습니다. 그런 일체의 것이 없는 가운데 밝음과 자비와 지혜, 열반이 주는 기쁨,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일체의 것에서 벗어나 버립니다. 어떤 공포나 아쉬움, 어떤 부족함에도 완전히 떠나버립니다.

 

일곱 번째로 원만자각(圓滿自覺)이라 합니다. 원만히 스스로 모든 것을 깨달음입니다. 전체를 다 원만하게 깨달은 것입니다. 여덟 번째를 무사(無師)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누구에게 배워서가 아니라 스스로 얻으신 깨달음입니다. 지도를 받고 깨달은 것이 아니라 스승이 없이 깨달은 것입니다. 아홉 번째를 무비(無比)라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누구에게도 어떤 것에도 비유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시방 세계의 어떤 것에도 부처님의 그 원만하고 밝고 지혜스러운 것을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열 번째는 세보(世寶)라 합니다. 나는 이 우주 속에 가장 보배스런 존재입니다. 보배가 아닐 수가 없겠지요. 열한 번째는 무상사(無上師)입니다. 나 이상의 스승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처님 같은 스승이 없습니다. 열두 번째는 정자각(正自覺)이라 합니다. 바르고 진실한 깨달음입니다. 열세 번째는 청량(淸凉)이라 합니다. 상쾌함이죠. 그 열반에 든 그 경계가 상쾌하고 진실하고 아름답고 원만하고 그 시원한 그 경계가 말로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열네 번째가 법륜(法輪)입니다. 법의 수레바퀴를 굴려서 일체중생을 다 구제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열다섯 번째가 감로고(甘露鼓)입니다. 감로의 그 북을 쳐서 괴롭고 슬프고 억울하고 분하고 고통 받는 중생을 그 고통에서 다 건져주리라. 이것이 부처님의 깨달음입니다.

 

비슷한 것 같아도 부처님이 깨달은 열다섯 경계는 분명하고 확실하고 아름답고 원만합니다. 이것을 찾기 위해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고 행복한 것입니다. 마음공부를 하게 되면 삼악도가 멀어집니다. 축생의 세계가 나로부터 멀어집니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如佛)─하늘 아래나 하늘 위나 부처님 같은 분이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를 다 보고 시방세계를 다 뒤져도 부처님 같은 분은 없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다해 부처님에게 의지하고 귀의하겠다면, 그 진실한 마음 하나만으로도 모두 다 성불할 것입니다.

 

이 마음에서 우리는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불퇴전이라고 합니다. 근기가 약한 분은 뭘 하려고 하다가 뒤로 나자빠지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정각이라고 하는 산을 올라가려했다면 쉬지 않고 뚜벅뚜벅 올라가야 합니다. ‘아 힘들겠네’ 하면 안 됩니다. 한 걸음씩 가는 순간순간이 불퇴전의 신심입니다. 불퇴전의 신심으로 꼭 정진해서 대각을 성취하기 바랍니다.

 

 

▲ 사부대중은 나를 깨우는 108배를 통해 참회하고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참선하며 부처님처럼 선정에 빠져들었다.

 

▲ 사부대중은 나를 깨우는 108배를 통해 참회하고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참선하며 부처님처럼 선정에 빠져들었다.

 

▲ 사부대중은 나를 깨우는 108배를 통해 참회하고 정진할 것을 다짐하고, 참선하며 부처님처럼 선정에 빠져들었다.

 

▲ 자정에는 따뜻한 유미죽으로 몸을 녹였다.

 

 

▲ 깊은 새벽 대웅전에서 촛불 참선을 하고 있다.

 

조계사 글과 사진 :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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